등록 : 2012.05.08 15:41
수정 : 2012.05.08 15:41
[헤리리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10년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증상이 있다. 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듣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한 그대로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씩 거짓말을 하며 산다. 기업은 더욱 그렇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회계와 재무제표다. 재무실적을 기준에 맞춰 기록하고 공개해야 한다. 거짓을 보고하면 처벌받게 된다.
기업이 투명해지면서 자본주의는 더 발전했다. 정보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된 투자자들은 투자를 늘렸다. 기업은 더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투명화가 지체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보자. 파키스탄에서 열 살짜리 어린이들이 축구공을 꿰매는 일을 하며 푼돈을 버느라 학교를 갈 수 없게 만들던 기업이 나이키다. 그런데 이 기업은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기업’으로 스스로를 치장했다. 제3세계에서 어린이들에게 저임금 노동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나이키는 미국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이었다.
기업이 재무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성과도 솔직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런 사건들로부터 출발했다. 기업과 그 협력업체에서 어떤 사람들을 어떤 조건으로 고용하고 있는지 공개한다면?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기업이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하고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투명하게 보여준다면? 비정규직 비율은, 여성 임원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를 회계장부 내보이듯 샅샅이 공개한다면?
시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은 줄어들 것이다. 여성을 임원으로 과감히 승진시키며, 가능할 때마다 정규직 전환을 해서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다. 나이키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사회책임경영을 잘하는 기업을 선호하는 투자와 소비는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다. 선한 기업에 투자하고 싶은 투자자의 의지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면 실행될 수 없다. 나쁜 기업 제품은 사지 않겠다는 소비자의 의지도 마찬가지다. 정보가 투명해지면 사회책임투자(SRI)와 윤리적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선한 기업이 재무실적도 더 좋아지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기업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이런 꿈이 담겨 있다. 한국 기업이 이 보고서를 발간한 지도 10년째가 됐다. 꾸준히 보고서를 내는 기업도 있지만, 아직 경천동지할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시작한 기업들은 작지만 분명한 효과를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4호는 그 10년여 동안 한국 기업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내면서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를 살펴본다. 선구자는 고달프기 마련이다. 만나본 각 기업의 선구자들은 왜 보고서를 내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어렵게 일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 작업이 기업에 분명하게 도움이 되었다고 입을 모으며 비결을 공개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미래 인간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만 지나치게 솔직하면 질병이지만, 모두가 솔직하면 인류의 진화라는 이야기다.
기업의 경우는 더 분명하다. 사회와 겪은 갈등과 고민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기업이 진화한 기업이다. 그런 기업이 많은 경제가 진화한 경제다. 느리지만 한 걸음씩 세상은 그리로 가고 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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