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08 16:10
수정 : 2012.05.08 16:12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위해 존재한다. 연구기능은 교수 개인이 담당하기도 하지만, 대학 내 연구소가 주로 수행한다. 대학은 당장 시장이나 정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의 생산보다는 국가나 사회의 지식을 집약 축적하고, 기초 실태 조사나 연구 작업을 통해 사회의 중심을 잡아주며, 또 독자적인 이론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대학 연구소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근대 대학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만큼, 대학 부설 사회과학연구소의 역할 역시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특히 역사, 문화 등 인문학연구소의 기능에 비해 사회과학연구소의 기능은 더욱 취약하다. 연륜이 있는 몇몇 사회과학연구소가 있으나 대부분 간판을 유지하면서 학술잡지를 발간하는 정도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외부 용역 과제 수행에 허덕대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 당국도 연구를 위한 재정지원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학술지 발간이나 외부용역 수행에 허덕
한국의 사회과학 분야 대학연구소가 국가의 주요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조사나 이론의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학 자체가 선진국 대학의 하청기지 역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이론을 수입해서 주로 학부생들에게 교육할 뿐 스스로 학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 대학은 학부 중심이다. 대학원은 학부에 부속된 기관에 불과하며, 연구소 활동은 더욱 부차적이다.
연구소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연구소에 전임으로 종사하는 연구원과 교수가 충원되어야 하는데 학부에 소속된 어느 교수도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연구소 전임으로 일하려 하지 않는다. 대형 연구과제를 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방침으로 바뀌자 박사급 연구교수들을 충원하고 있지만, 대학의 전임교수가 연구교수로 배치되지 않고서는 이러한 사정이 바뀌기 어렵다.
연구기금도 부족하다. 정부의 연구기금은 분명히 대학 연구소가 자생력을 갖춘 연구소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으나, 당장 정부 기금이 끊어져도 스스로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대학 사회과학연구소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한국의 기업이나 개인이 대학에 기금을 낼 때도 장학금 등 주로 교육 목적으로 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연구활동을 위해 기부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도 마찬가지인데, 당장의 효용성은 약하지만 장기적 국가·사회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기초연구나 이론 연구를 위해 사회적 자원을 투여해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는 연구소 전임 교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명성과 인적 네트워크가 있는 교수들이 학교 연구소 활동을 전담하지 않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기금을 모집할 주체가 없는 실정이다.
정부 의존 벗어나 다양한 후원자 유치를
한국의 대학 사회과학연구소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우선 서구 이론의 하청기지, 전파매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국내 대학원의 활성화, 즉 국내에서 학위를 한 사람이 안정적으로 연구 및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과 대학 연구소의 활성화는 밀접히 연관된 문제다. 학부와 연구소에 이중으로 소속된 교수들을 확대하고, 몇 사람은 아예 연구소 교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연구소 교수 채용 과정에서도 학부의 권력정치가 작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연구소 교수 충원에 국가 예산을 투입하여 대학의 체질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한국 대학 연구소는 정부 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데, 그 경우 유연하고 창의적인 연구를 하기 어렵다. 물론 정부의 지원도 현재보다 늘어야 하지만, 기업이나 개인이 연구활동에 지원할 수 있도록 갖가지 유인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후원자들의 이름을 내건 연구기금을 많이 만들어 국가와 사회의 장기 정책대안 마련을 위한 조사·연구 활동을 수십년 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마련되면 지금처럼 교수 한사람 한사람이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후진적 실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민주주의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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