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08 16:15
수정 : 2012.05.08 16:25
[헤리리뷰]
활발해지는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 공개
2009년 6월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는 상장사들이 재무제표 등 재무적 정보뿐만 아니라 환경, 사회, 거버넌스(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정보를 공시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가시적인 성과는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뒤에 나타났다.
2011년 11월 금융위원회는 녹색공시 도입을 뼈대로 한 ‘증권 발행·공시 규정 개정안’을 예고했다. 개정안은 온실가스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녹색기술·산업 인증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는 안을 담고 있다. 또한 시행 시기도 ‘2011회계연도’로 못박았다. 기존 안에서 사회와 거버넌스 영역이 누락되긴 했지만,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 공시 제도화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적지 않다.
해외투자기관 압박이 관심 촉발 계기
이처럼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 공시는 국내에선 최근에야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국외 선진 시장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이슈다. 기업 비재무적 정보 공시에 가장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나라는 유럽 국가들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경우, 2001년부터 상장기업들의 재무·환경·사회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며, ‘신경제규제법’은 연차재무보고서에 반드시 사회·환경적 영향을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도 호주는 1999년 ‘회사법’에서 환경고시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고, 2005년부터는 상장회사의 경우 비재무적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 공시 제도화는 해외 투자자, 기업 내부,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노력 속에 진행되어 왔다. 해외 투자자 그룹 가운데서는 2007년 미국의 세계적인 투자기관인 캘버트(Calvert)가 제안한 신흥시장공개프로젝트(EMDP·Emerging Market Disclosure Project)가 대표적인 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된 EMDP 1단계 프로젝트에서 우리나라는 중국, 인도, 남아공, 브라질, 러시아 기업과 함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조사 대상이 됐다.
지난해부터 EMDP는 2011년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분쟁 광물 규제 법안에 주목하고 있다. 상장기업뿐만 아니라, 관련 부품업체까지 대상으로 규정한 이번 법안은 탄탈룸, 텅스텐 등 분쟁 지역의 광물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EMDP는 이를 계기로 국가별로 해당 기업들의 대응책 마련 및 투명한 정보 공개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움직임에 대해 국내 기업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다른 글로벌 기업들처럼 미국 공공 및 민간협의회(PPA)에서 진행하는 광산 인증 프로그램과 세계전자산업시민연대(EICC)에서 인증한 분쟁 광물 미사용 제련소에서 나오는 광물만 사용하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엘지전자도 EICC와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상당수 중소 부품업체들은 여전히 해결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MDP의 향후 전망에 대해 한국CSR평가 박주원 상무는 “세계 투자자들은 신흥시장 기업들에 대한 자신들의 투자 위험을 줄이고자 지역 내 투자 및 리서치기관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은 유엔 산하의 전세계 투자그룹 집합체인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의 활동 강화와 맞물려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100대 기업 중 73곳이 1회 이상 발간
기업 내부의 자발적 노력으로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을 들 수 있다. 2003년 삼성SDI에서부터 시작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은 2011년 12월 기준 매출액 100대 기업 가운데 73곳이 1회 이상 발간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2005년부터 공공기관 및 기관장 경영평가에서 윤리경영 등 사회적 책임 평가 비중이 커지면서 공공기관, 특히 공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비율이 매우 높아졌다. 2011년 기준으로 전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가운데 공공기관이 발행한 비중은 약 32%에 이른다.
이밖에도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 공시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활동도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사단법인 기업시민책임센터는 상장기업 매출액 기준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미발간 기업 27곳을 대상으로 3월부터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 공개를 촉구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업시민책임센터는 2005년 이후 종교기관 투자자들과 개인투자자들의 협력을 바탕으로 기업 226곳을 대상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촉구 주주운동을 전개해 왔으며, 그중 36곳이 보고서 발간에 동참하는 성과를 보여준 바 있다.
중소기업엔 비용 부담 증대 우려도
하지만 상장사의 비재무적 정보 공시 제도화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도 없진 않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 기준에 따라 마련될 수밖에 없는 비재무적 정보 공개 제도가 성과를 강화하기보다 비용부담을 늘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비재무적 정보 분석 기관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 정보 공시 제도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보 공시 제도화는 단기간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사안은 분명 아니다. 단계적 추진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정보 공개 범위는 기업들이 보고하기 용이한 기초 보고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보고 프레임워크는 산업과 기업의 규모를 고려해 제각각 마련해야 하고, 이를 적용할 시장 역시 유통시장에서 시작해 발행시장으로 점차 확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jkse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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