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08 16:15
수정 : 2012.05.08 16:21
[헤리 리뷰]
국내 대학 연구소들의 현주소
한국의 대학교수는 바쁘다. 국내외 학술지에 꾸준히 논문을 실어야 하고, 강의와 행정업무가 주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거나 언론 기고를 통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 용역도 적지 않다. 정부 부처의 책임자가 되거나 국회의원에 도전하기도 한다. 독재정권을 돕는 ‘어용교수’를 비난하던 목소리는 최근에는 ‘폴리페서’(polifessor)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거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유력 정치인을 돕는 싱크탱크나 자문그룹에 속한 교수들이 적지 않다.
정책을 매개로 한 대학교수의 사회 참여가 정치 참여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한국 시민운동의 높은 정책 역량은 교수와 연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법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행정학 등 여러 분야 교수들이 훌륭한 정책대안을 만들어냈다. 시민단체를 매개로 학과의 장벽을 뛰어넘는 치열한 토론, 교수와 변호사, 운동가의 역동적 협력이 이루어졌다.
정일준 고려대 교수는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 이후 교수도 좁은 전공 영역에 매몰된 전문가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고 했다. 총체적 지식인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대학은 공적 담론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시민단체나 인터넷이 그 역할의 일부를 수행했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교수가 주도하는 위원회가 많이 만들어져 정책 생산에 직접 관여하는 경우가 늘었다.
대학이 공적 담론 소통 공간 역할 못해
하지만 문제는 더 복잡하다. ‘학술 연구’와 ‘정책 연구’ 사이의 간격이 본래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뛰어난 연구 업적을 낸 학자가 정책대안을 더 잘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정치이론가 찰스 린드블롬과 데이비드 코언은 “교수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고, 의사 결정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실망한다”고 양쪽의 불만을 묘사했다. 사실 교수들은 학계 동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법으로 글을 쓰고, 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길 원한다.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연구한 알렉산더 조지 역시 “많은 학술연구들은 나쁜 결과를 피해 원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정책결정자들의 불만을 전한다. 그렇다고 학술 연구와 정책 연구 사이의 협력을 개인의 헌신에 기댈 수만은 없다. 허버트 갠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학계와 대학 당국, 정책결정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며, 업적 평가 방법 개혁 등 제도 보완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업적 평가에서 정책연구는 사실상 제외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교수에 대한 업적 평가가 학술 연구 중심으로 이뤄지고, 정책 연구는 평가와 보상 체계에서 사실상 제외되어 있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중앙 부처 관료들 가운데 높은 학력, 풍부한 자료와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이들이 많다. 교수들과의 논쟁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욱이 현재 학계의 구조와 관행은 학술 연구조차 제대로 못하게 만들고 있다. 김 교수는 특히, 대학 연구소의 실태를 문제 삼았다. “대학 연구소는 학교의 지원이나 개인의 후원이 거의 없어 단기 정책 용역에 매달리게 된다. 학술연구도, 정책연구도 아닌 주문자를 위한 ‘맞춤형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가 전임연구원을 두지 못하는 현실도 문제다. 연구소 조직에 대한 발전 전략을 지속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이가 없다. 교수 개인이 아니라 연구소를 기반으로 학술 및 정책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에도, 인적·물적 자원과 전략적 고민 모두 부족한 상황이다.
전임연구원 없는 사회과학연구소들
실제로 한국연구재단이 2011년 11월 발표한 ‘2011년 대학연구활동 실태조사 분석보고서’를 보면 2010년 한해 동안 전국 411개 대학이 수행한 과제 수는 8만4776건이고, 연구비는 4조5744억원이다. 이 가운데 87.6%가 이공계열이고, 사회과학 분야는 전체 연구비의 7.2%인 3282억원(1만3576건)에 불과했다. 최근 5년간 대학 부설 연구소는 2728곳에서 3421곳으로 25.4%가 늘어났으나 전임연구원 수는 5964명에서 2145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사회과학 분야 연구소가 894곳으로 가장 많았으나 전임연구원은 419명으로 채 한 명의 전임연구원도 두지 못하고 있다.
김병준 교수는 “대학 연구소에 대한 학교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고, 석좌교수나 연구교수 제도를 내실있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대학 바깥에서의 변화도 필요하다. 비판사회학회장을 맡고 있는 조형제 울산대 교수는 “정책 연구를 주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정당(연구소)의 역할 강화, 학계와 싱크탱크의 협력과 경쟁 관계 구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결국 대학과 싱크탱크, 학술 연구와 정책 연구를 함께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과 전략이 필요하다. 둘 간의 불균형은 문제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iphong17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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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 연구소들은
대학과 싱크탱크는 서로 다른 청중과 규칙, 문화를 갖고 있다. 각자의 경기장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두려 노력한다. 하지만 학술연구와 정책연구는 배제적이기보다 보완적이며 ‘균형 잡힌 분화’가 중요하다. 대학과 싱크탱크, 정책생산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전문가들과 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리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미국, 연구소 통해 교수-외부 연결
미국의 대학 연구소들은 지식 생산의 완결조직이기보다 교수와 대학 외부 자원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정책지식의 생산자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회적 분업을 이루고 있다.
우선 대학 외부에도 조직과 인재가 풍부하다. 싱크탱크와 언론이 대표적이며, 학술적 성과를 정책지식으로 번역하는 맬컴 글래드웰, 데이비드 브룩스 등의 작가, 프리크노믹스(Freaknomics) 등의 블로그도 좋은 예가 된다. 연구소를 포함한 대학과 싱크탱크는 서로 다른 청중을 상대로, 다른 규칙에 따라 다른 게임을 하는 다른 ‘장’(field)을 이룬다. 교수들은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싱크탱크의 연구자는 <뉴욕 타임스> 기고가 더 의미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같은 정책대학원 역시 교수와 대학 외부 싱크탱크를 연결하는 제도적 통로이며, 인터넷의 영향으로 둘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임채윤 위스콘신대 사회학과 교수
독일, 장기간 걸쳐 고급담론 생산
독일에는 비대학 연구기관의 수가 많고, 위상도 높다. 이들은 강의에 대한 부담 없이 학술연구나 정책연구를 한다. 정부는 이들에게 충분한 자원을 지원하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대학과 비대학 연구소 기관은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이루고, 대학은 정책지식의 직접생산이라는 부담을 많이 덜 수 있다. 정당과 노동조합 또한 뛰어난 정책역량을 갖추고 있어 더 넓은 범위의 사회적 분업도 이루어진다.
대학이 수행하는 정책연구 프로젝트도 규모가 크고, 기간도 길다. 보통 3년이며, 1년이면 최단기간 연구라 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연구의 질을 높이고, 고급의 정책담론을 만들어낸다. 학자로서의 권위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과 이를 배려하는 제도와 문화가 함께 만든 결과이다. 독일/박명준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전임연구원
영국, 학술·정책컨설팅 분리 전통
영국의 학계와 정책컨설팅 계통은 분리되어 있다. 영국 관료들은 상당한 정책능력을 가지고 있다. 직무순환을 하지 않고 평생 같은 분야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들 또한 정책훈련을 받으며 성장한다. 관료와 정치인이 주도하는 비교적 안정적인 정책생산 구조가 80년대 대처 정권을 거치며 흔들렸다. 정책이념이 급변하면서 싱크탱크들이 정책과정에 깊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한국연구재단처럼 대학에 연구비를 제공하는 연구회들(ESRC, EPSRC 등)이 정책적 함의를 대단히 강조하긴 하지만, 교수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학술논문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한다면 영국의 교수는 만들어진 정책에 논리적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이 크다. 영국/손정원 런던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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