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리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10년째…사회책임경영 어떻게 달라졌나
국내 기업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한 지 10년째가 되었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그사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선두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살펴봤다. 삼성SDI,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포스코는 2003~2004년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처음 발간한 뒤 꾸준히 내고 있다. 이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하고, 담당자를 인터뷰해 그 성과를 뽑았다.
“미국과 한국 공장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비교 가능해지고, 조직 내에 여성 임원 수가 적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네요.” “꾸중 듣던 기업이 어느새 상 받는 기업으로 바뀌었어요.” “장사꾼으로 불리던 기업이 좋은 기업이란 소리도 듣게 되었어요.” “조직 내에 없었던 목표가 생겼어요.”
10년 남짓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펴내며 사회책임경영을 해온 기업의 담당자들이 자신있게 말한 내용들이다. 선두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얻은 사회책임경영 성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초기 의견 청취에서 이젠 협력·참여
첫째,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폭이 넓어졌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을 위해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이 청취에서 참여로 바뀌면서 이해관계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또한 이해관계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이슈 중심으로 보고서가 작성되면서 그들과의 공식적인 소통 자료가 생겼다.
삼성SDI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처음 작성할 때의 주된 대화 상대는 한정되어 있었다. 이제는 투자자, 평가자, 엔지오, 협력회사, 학계, 고객, 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삼성SDI의 사회책임경영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해관계자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검토한 뒤 ‘부문별 목표와 성과의 연계보고가 필요하다’, ‘다양성과 관련된 활동 및 성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 ‘고객만족에 대한 활동이 궁금하다’ 등의 구체적 활동에 대한 결과보고를 요구해오고 있다. 삼성SDI 지속가능경영팀은 해당 질문에 대한 응답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온라인 홈페이지에 담아 공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체코 공장을 설립할 때 환경단체들과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여주며 그들에게 기업을 설명해준 뒤 상황은 바뀌었다고 한다. 체코 공장에서 현대자동차의 활동 결과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넣어달라는 요청과 함께 합의를 해준 것이다.
또한 해외투자기관들이 방문했을 때 제일 먼저 내놓고 토론을 가능하게 한 자료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다.
특정 사업장서 그룹 전체로 번져
둘째, 전사적 관리체계를 마련했다.
초창기 사회책임경영의 성과를 담으려는 노력은 국내 특정 사업장, 한정된 기업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제는 그 범위를 넓혀 국외 사업장 혹은 계열사를 포함한 그룹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따라서 전사적으로 데이터 수집 시스템이 구축되고, 데이터 모니터링이 가능해지면서 사회책임경영을 위한 전사적 목표 설정과 전략 수립까지 가능해졌다.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 중심으로 사회책임경영을 실천했던 기아·현대차그룹은 2008년 4월 그룹 차원에서 사회책임헌장을 선포하고, 그해 5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하이스코 등 5개 자회사별로 사회책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그룹 차원의 ‘2020 사회책임경영 중·장기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또한 구심점 없이 수행하던 사회공헌활동, 환경경영활동을 한곳에 모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필요한 활동과 불필요한 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되고 각 활동의 우선순위 도출이 쉬워졌다. 삼성SDI의 경우 환경보고서, 사회공헌백서, 연차보고서를 통합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로 발간하고 있다.
셋째, 글로벌 사회책임경영 기준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사용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글로벌 기준과 현실의 차이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차이를 보완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이 해를 거듭해 포스코는 세계 최대 금융정보회사인 미국의 다우존스와 세계적 자산관리회사인 스위스 샘(SAM)이 기업의 경제·환경·사회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사회책임경영평가지수인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에 7년째 글로벌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어, 철강산업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삼성SDI 역시 2004년 국내 기업 최초로 선정된 뒤 8년 연속 회원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책임경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이들 기업이 꾸준히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최고경영자 강한 실천의지가 중요
무엇보다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강한 실천 의지가 있었다. 포스코의 경우 1996년부터 가져왔던 환경 방침을 2002년 지속가능 방침으로 바꾸었다. 이후 최고경영자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을 제안하였으며, 그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결성했다. 이 팀은 현재 CR(Corporate Relations)본부로 진화한 상태다.
2003년 당시 삼성SDI 김순택(현 삼성미래전략실장) 사장은 삼성SDI가 선도적으로 사회책임경영을 받아들일 것을 지시했다. 그 첫걸음으로 김순택 사장은 사회책임경영 전문가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조직 내 지속가능경영철학의 도입을 준비했다. 그리고 같은 해 시이오 직속 지속가능성위원회와 실행조직인 에스엠(SM, Sustainability Management)추진국이 신설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시이오의 의지가 실행조직의 구축으로 바로 연결되며 지속할 수 있는 근간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보고서 작성지표 자체 개발 활용을
경영전략실, 경영기획실 등과 같은 핵심부서에서 지속가능경영 태스크포스팀이 발족되어 보고서 작성에 힘을 실어준 것도 한몫을 했다. 포스코는 경영기획실 내 CSM(Corporate Sustainability Management)팀, 삼성SDI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산하 경영지원실 내 에스엠 추진국, 현대자동차는 경영전략실 내 환경전략팀, 기아자동차는 기획실 내 환경경영팀이 사회책임경영의 시작을 맡았다. 즉, 기업 내에 사회책임경영을 정착시키려면 업무 조직의 위치가 기업의 전체 활동을 알 수 있고, 협조 요청이 손쉬운 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맞춤형 보고서 작성 프레임워크를 개발한 것도 꾸준히 보고서를 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포스코, 삼성SDI, 현대자동차는 자체 보고서 작성 프레임워크를, 기아자동차는 사회책임경영성과 지표를 개발하여 활용하고 있다.
국내 대부분 기업의 보고서 작성은 컨설팅회사의 참여로 이뤄진다. 이런 경로를 통하면 손쉽게 보고서를 발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회사 안에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레임워크를 구축하지 못해 컨설팅 없이는 계속 보고서를 내기 어렵다. 또한 보고 내용을 해당 기업이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고서를 활용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지속적으로 보고서를 발간했던 선두 기업들은 보고서 작성 때 자신만의 프레임워크를 가지고 스스로 작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활용하되, 기업의 상황에 맞는 자체 프레임워크를 개발하여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보고서 작성 업무가 가능하도록 시스템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realmirr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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