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03 10:44
수정 : 2012.07.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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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사회적기업 ‘평화의마을’ 공장에서 직원들이 수제소시지 가공 작업을 하고 있다. 제민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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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사회적기업 ‘평화의 마을’
사업 시작 10년 만의 일이었다. 2002년 소시지 생산을 시작한 장애인 직업재활사회복지법인 평화의마을이 지난해 고대하던 경제적 자립을 이뤄냈다. 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이 된 지 3년여 만이다. 취약계층 가운데서도 노동 여건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중증지적장애인과 함께 2010년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구제역 파동을 넘어 이뤄낸 결실이었다.
올해로 만 5년의 시간을 보낸 사회적기업의 경영성과는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인 취약성은 여전하다. 2011년 영업흑자를 기록한 사회적기업이 10곳 가운데 한두 곳에 불과하다.
이처럼 사회적기업의 열악한 외부 환경과 내부의 취약한 노동 여건에도 불구하고, 평화의마을은 남다른 노력으로 오늘날의 경영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 비결은 뭘까?
첫째,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하나로 묶는 비전과 미션을 세우고 이를 사업 전반에 적용한 평화의마을 이귀경 원장의 리더십을 들 수 있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을 운영하면서 이 원장이 가장 염려한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등이었다. 특히 주문이 한꺼번에 몰리는 명절엔 어쩔 수 없이 비장애인의 희생과 양보가 필요한데, 이때가 평화의마을의 사명을 테스트받는 시기라고 이 원장은 이야기한다.
바쁜 시간을 일부러 쪼개 매년 두 번 비전 공유의 시간을 갖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진행되는 비전 공유 워크숍은 단순한 행사로 그치지 않고, 실제 사업에도 반영된다. 대표적인 예가 판로 개척이다. 사실 평화의마을 소시지 브랜드 ‘제주맘’을 일반 온라인 쇼핑몰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착한’ 쇼핑몰에만 유통시키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제품뿐만 아니라, 이를 생산하는 평화의마을의 비전과 미션까지 소비자와 나누기 위해서다.
종업원간 비전 공유와 리더십의 결합
둘째, 전문 경영인 못지않은 경영역량을 들 수 있다. 사실 이 원장은 제대로 된 경영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회복지 전문가다. 고향인 부산을 떠나 1997년 제주도에 정착해 평화의마을을 맡을 때까지 경영에는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평화의마을 직원들은 하나같이 기업가로서 이 원장의 자질이 대단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적기업가의 조건으로 ‘열정과 의지’는 기본이고, 여기에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성이 보태져야 한다는 것이 이 원장의 경영철학이다. 소시지 생산을 마음먹은 이 원장이 곧바로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것도, ‘국내 최고의 소시지 전문가가 되어 평화의마을을 세계 최고의 직업재활시설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세운 것도 그의 기업가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일에서 귀국한 뒤에도 이 원장의 경영역량 강화 의지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국내 최고 소시지 전문가로 손꼽히는 훔메유통 임성천 대표를 사사하는가 하면, 대다수 전문가들도 외부의 컨설팅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해섭(HACCP) 인증 과정 역시 관련 서적을 독파해 가면서 혼자 힘으로 해냈다.
셋째, 효율적인 자원조달이다. 현재 평화의마을에서 만드는 소시지 원료는 거의 대부분 국산인 제주도산을 쓴다. 소시지 원료육은 물론이고, 반죽에 필요한 채소도 대부분 인근 경작지에서 직접 재배한다. 원재료 값은 경쟁업체에 비해 비싸지만 고급제품 시장에서 충분한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자체 생산 채소로 구제역파동 이겨내
그런데 이러한 자원조달체계는 뜻하지 않은 시기에 평화의마을을 위기에서 지켜줬다. 2010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 파동으로 생산과 주문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의 일이다. 당시 제주도내 여러 식육가공업체들이 주문과 생산을 포기할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소시지 생산에 가장 중요한 원재료인 원료육 가격이 3배 가까이 올랐고 채소 등 농축산물 가격이 함께 올랐다. “원료육 가격 상승은 어쩔 수 없다고 봤어요. 다만, 그밖의 채소를 비롯한 원재료들은 저희 자체적으로 생산과 재배를 하고 있어 타격이 적었어요. 한마디로 운이 좋았던 거죠”라고 이 원장은 설명했다.
최근 평화의마을은 두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구제역 파동으로 잠시 막혀 있었던 수출 길을 다시 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다. 2010년 시작했다가 일시 중단된 일본과 중국 수출은 현지 시장 조사 및 바이어 방문도 마친 상황으로 본격화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한 시도는 현지조사를 마친 상태이고, 현재 투자를 받기 위해 다양한 계획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엔 비교적 생소한 하몬과 살라미 등 이른바 ‘살아있는 햄’을 계획하고 있단다.
“10년 전처럼 주변에서 걱정과 염려를 많이 해주세요. 사실 그래서 더 잘될 것 같기도 하고요”라며 미소를 짓는 이 원장은 “영리기업과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기 위해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품고 있는 사회적기업이 제가 평화의마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약속한 사회적기업이랍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서귀포/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jkse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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