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25 11:54
수정 : 2012.09.25 13:49
[HERI Network]
제임스 커런 인터뷰 / 위기시대 경제저널리즘의 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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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커런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루틀리지(Routledge)출판사 ‘커뮤니케이션과 사회’ 총서 시리즈 편집장 최근 발간물 <미디어와 민주주의>(2011),<인터넷에 대한 오해>(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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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언론과 미디어를 연구한 노학자가 던진 화두는 사실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들렸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근본적이었다. 그것은 저널리즘의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였다. 저널리즘의 재건은 이를 기반으로 신뢰 회복과 경제적 토대의 재구축을 시작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자 오랫동안 유럽의 언론학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였던 제임스 커런(James Curran) 교수가 방문객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대답한 내용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지금도 부지런히 전세계의 저널리즘 현상과 새로운 매체에 관한 수많은 ‘사실’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역사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 <한겨레>에서 <오마이뉴스>, 나아가 트위터 활용에 이르는 한국 저널리즘의 실험 정신이 지금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강조한다. 그를 지난 8월 런던에서 만나 우리 시대 저널리즘의 위기와 그 미래에 대해 물었다.
‘한겨레’ 등 한국 언론 실험정신 돋보여
그는 특별히 2008년 경제위기가 저널리즘에 끼친 영향에 대해 주목하라고 말한다. 저널리즘의 갱신이란 더욱 뛰어난 품질을 갖춘 저널리즘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경제적 토대 자체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경제위기는 역설적으로 저널리즘의 갱신을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영국의 주요 신문들 그 누구도 경제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원인과 성격은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서구의 경제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해 늘 감시해야 하는 언론들이 말이죠. 이것만큼 큰 대중적 관심사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오직 비즈니스 저널리즘(경제지)만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말이죠. 그래서 재정위기라면 여기에 정부 재정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주식시장의 폭락에 대해 어떤 공적 개입이 필요한지 등에 논의가 집중됩니다.
이들은 기사든 칼럼이든, 여하튼 여러 가지 형태의 보도를 통해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직접 개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언론’은 이 문제에 어떤 발언을 하고 있는지요? 적어도 비즈니스의 관점을 넘어서, 좀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국민경제 전체를 다루고 사회적으로 또 정책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어떤 진지한 제안을 하였는지요? 제가 보기엔 부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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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커런(왼쪽)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교수와 박진우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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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위기, 언론 경제적 토대 흔들어
이것은 영국의 사례이지만, 우리를 포함한 전세계 언론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영국 언론이 왜 영국의 경제위기를 <뉴욕 타임스>만큼 보도하지 못했는가? 간단한 질문이지만 해야 할 답변은 너무 많다. 그는 영국 언론이 왜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는지, 그리고 대중들에게 이 문제를 논쟁하자고 제안하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명료한 답변을 내놓았다. 저널리스트들이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정한 경제 저널리즘은 왜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왜 정부는 지금껏 이러저러한 정책만을 펴고 있는가, 그것이 경제 전체에 끼칠 영향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경제정책 전반을 둘러싸고 대중이 좀더 밀도 있게 토론하는 재료가 되어야 합니다. 저널리즘의 현재 위기가 대중들의 신뢰도와 직결되어 있다면, 이러한 방향 전환은 어떤 형태로든 미래의 저널리즘을 준비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저널리즘 재건의 첫걸음은 신뢰 회복
그는 현재의 위기가 많은 경우 경제적인 위기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물론 저널리즘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새로운 광고 형태가 일반화되었으며 시장은 동요하지만, 뉴스 제작비용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고 경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저널리스트들이 아주 미숙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재건은 근본적으로 기존의 모든 가치에 대한 재점검을 통한 신뢰의 회복을 전제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현실이 뉴스 수용자들이 바라는 기대 수준에 비추어 지나치게 ‘구식’이 아닌지 자문해 볼 것을 요구한다. 위기가 총체적이라면, 극복 역시 총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가 말하는 ‘저널리즘의 갱신’ 그리고 ‘저널리즘의 재건’이란 저널리즘 고유의 오랜 가치들에 대한 재검토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그는 최근 영국에서 저널리즘의 객관성(objectivity)이나 불편부당성(impartiality)과 같은 직업 규범, 그리고 언론사 간의 건전한 경쟁구조 확립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것을 고무적으로 평가한다.
미디어재벌 아닌 다원화 시스템 필요
그는 특히 여론 형성 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현재의 ‘미디어 재벌’ 시스템을 제어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지금은 좀더 다원화된 미디어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인터넷 저널리즘, 공공 저널리즘, 비영리 저널리즘의 실험들 모두가 이 과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새로운 저널리즘 환경은 스스로를 새롭게 재조직화할 수 있는 제도적 모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와 나눈 대화는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넘어서, 좀더 안정적인 경제적 토대를 갖춘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의 출현에 관한 것으로 모아졌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이제 위기 속에서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러한 실험의 기회는 이미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글·사진 박진우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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