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12.31 15:42 수정 : 2012.12.31 15:42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헤리리뷰] 사회책임조달 어떤 효과 있나

지난 7월 ‘사회적 경제 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서울 성북구에서는 그 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성북구의 사회적 경제 제품 구매 실적은 지난해 5억9000만원 정도였으나 올해는 약 10억원으로 증가했다. 성북구에 자리한 사회적기업·마을기업 등 20곳의 매출액은 지난해 월 1800만원 수준에서 올해 월 2600만원으로 44.4% 늘어났다. 매출액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 효과도 컸다. 지난해에는 20개 기업이 174명을 새롭게 고용했으나 올해는 276명을 신규 채용했다. 그중 취약계층은 65명에서 116명으로 갑절 가까이 늘어났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만약 취약계층 116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면, 성북구에서 생계비 등을 지급했어야 한다”며 “그들이 가장일 경우 2~4인 가족을 위해 지출했을 복지비까지 감안하면 상당한 예산 절감을 이룬 셈”이라고 설명했다.

일자리 창출로 되레 복지예산 절감

사회책임조달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공공조달의 사회적 책임을 추구하는 것이 납세자의 세금에 대한 최적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적가치는 반드시 최저금액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비용을 포함해 가장 적절한 가격을 발견하고, 품질과 사회적 가치를 포함해 최고의 가치를 성취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비용 개념의 전환이 있었다. 1990년대 이전 영국·미국·일본 등은 대부분 최저가격 경쟁을 붙여 시공업체를 선정했다. 그러나 덤핑 수주 등으로 발주자는 품질에 불만을 갖고, 시공자는 적자를 보는 사례가 빈번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최저가 낙찰제가 명목상의 절약에 불과하다는 반성이 일기 시작하면서 이들 국가는 낙찰 기준을 최적가치로 바꾸기 시작했다. 2006년 유럽연합이 최적가치 낙찰제를 도입하면서 최저가에서 최적가치로의 전환은 대세가 되었다.

품질 유지 위해 최적가치 낙찰로 전환

이종서 한국외대 연구교수는 “노동조건이나 고용 등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달전략을 활용하는 사회책임조달을 통해 조달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함으로써 납세자의 세금에 대한 최고의 투자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고 밝힌다. 이처럼 공공구매를 할 때 환경적·윤리적·사회적 측면을 고려하는 사회책임조달은 가장 효과적인 공공지출을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유익한 제품을 생산하는 시장을 발전시키고, 사회법·노동법에 대한 기업의 준수를 유도하고, 사회적 통합까지 촉진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회책임조달이 시행된다고 해서 사회적 경제 시장이 활짝 열릴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익성에 기반을 두면서 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을 높이는 사회적 경제 조직의 공공시장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복지법인 동천학원이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사회적기업 ‘동천’은 현재 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와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제도, 다수공급자 계약제도(MAS) 등을 이용해 정부 및 공공기관에 모자와 재생카트리지를 납품하고 있다. 카트리지 매출에서 공공구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80%에 이를 정도다.

2007년에는 방위사업청으로부터 군용모자의 개발을 의뢰받아 2000여만원을 투입해 제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개발자로서 우선구매 대상으로 인정받기 위한 몇 가지 절차를 빠뜨리는 바람에 큰 손해를 입었다. 김춘만 사무국장은 “공공시장에 참여하려면 관련 제도에 대한 정확한 파악, 적극적인 홍보·마케팅, 완벽한 품질관리의 3박자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사회적기업의 인건비 지원에 집중했던 기존의 사회적 경제 지원 정책이 사회책임조달에 조응하는 시장 경쟁력 지원 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사회책임조달을 실시하는 유럽에선 중소기업과 사회적기업에 대한 우대와 지원에 그치지 않고 이들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책을 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일랜드의 입찰프로그램 ‘고-텐더 프로그램’(Go-Tender Programme)이 대표적이다. 원래 입찰제도였으나 2003년 입찰기업 교육제도로 확대된 뒤, 기업의 자생력을 유도하는 사전 교육 프로그램과 다양한 후속조처를 시행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 프로그램이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촉진해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공공지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공공기관 사회적 경제 제품 구매 권유

성북구도 현재 관내에 설치된 사회적기업 허브센터,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성북센터의 기능을 통합한 사회적경제 지원센터를 내년 초에 개설할 예정이다. 성북구 사회적경제 지원센터는 관내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의 수익 분석과 경영 진단을 통해 기업에 맞는 판로 개척을 지원하게 된다. 특히 관내 모든 공공기관의 예산서를 분석해 적합한 사회적 경제 제품이 있으면 공공기관에 구매를 권유할 예정이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경제 분야에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시장을 조성해주는 것”이라며 “사회적 경제가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조달시장뿐만 아니라 경영지원, 사회적 경제 금융, 감사와 회계 등 다양한 영역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조직과 법률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toyanni@gmail.com


“초등학생에게 배려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죠”

인터뷰 / 사회책임조달 조례 만든 김영배 성북구청장

김영배 성북구청장
서울 성북구는 7월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의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사회적 경제 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설립에도 앞장서고 있는 김영배 성북구청장(사진)은 “사회적 경제는 경제적 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웃과 이웃을 연결해 공동체를 강화하는 사회적 역할까지 수행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경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궁핍한 사람이 늘어나고 지역 경제가 멍들고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효율성과 경쟁만 내세우는 기존 경제 패러다임으론 승자독식의 폐해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이번 금융위기가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나. 그래서 전세계가 사회적 균형과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하고, 그것이 사회통합과 소득 재분배 효과가 높은 사회적 경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가치를 더 중시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소비하는 걸 지향하는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되어야만 이 사회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동시에 경제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가 커가는 과정에 우리 사회의 통합적 역량과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경쟁만으론 승자독식 폐해 못막아

-사회적 경제 제품은 가격 경쟁력과 제품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거라는 우려가 있다.

“올해 성북구 사회적경제박람회를 두 번 진행하면서 공무원들이 관내 사회적기업 20여곳과 함께 기업·대학·교육청 등 주요 기관들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적기업 한 곳이 고려대병원에 친환경 환자복을 납품할 수 있었다. 계약할 때만 하더라도 가격과 품질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직접 입어본 환자들의 만족도가 무척 높다고 하더라. 병원으로서는 사회책임경영을 할 수 있고, 환자 처지에선 사회적 가치까지 함께 소비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은 것이다. 경제라는 것이 단순히 효율성만 따질 게 아니라 만족도와 행복감도 대단히 중요하다. 사회적 경제가 가지는 새로운 경제적 효용이라는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조례에 대해 ‘일반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초등학생에게 대학생과 달리기 시합을 해 자기 힘으로 승리하라는 요구나 마찬가지다. 대학생은 성장할 때까지 온 가족이 지원해줬는데, 초등학생에겐 가족이 도와주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닌가? 정부는 산업정책을 통해 수출기업에 엄청난 지원을 해왔고, 소비자도 국가적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초등학생은 나이에 맞는 사회적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듯이, 사회적 경제도 그에 맞는 공적인 지원과 체계적 육성책이 필요하다.”

-사회책임조달을 위해 중앙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이제는 사회적 경제 제품을 어떤 기준으로 구매할 것인지에 대해 체계적·조직적 논의와 지원을 해나가야 한다. 상위 법령이 없는 가운데 지역 조례만으론 여러 한계가 있다. 관련 법률을 하루빨리 제정해 국가 조달체계에 반영해야 한다. 입법 과정에서 구매 지표·기준을 사회적으로 논의, 합의해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성북구는 ●사회적 경제 조직이 지역 주민과 얼마나 관계가 있나 ●지역 자원을 얼마나 사용하며 그 결과가 지역에 순환하나 ●사회적 약자의 자립과 일자리에 얼마나 기여하나 ●사회공헌에 얼마나 노력하나 등의 구매 기준을 갖고 있다. 이런 기준은 앞으로 일반 기업에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1월중 지방정부협의회 정식 발족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9월부터 전국 230개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에 협조 공문을 발송했는데, 30개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기로 했다. 지난달 준비모임에 참석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성북구의 조례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사회적기업의 판로 개척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또한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 사회적 경제 조직까지 4자가 모이는 틀을 구성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각자 의회의 동의를 구한 뒤에 내년 1월 중순께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를 정식 발족할 예정이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공공조달, 경제 비중 막대
전세계 GDP의 15% 차지

2004년 유럽연합이 공공조달에 관한 지침을 마련한 것은 사회책임조달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공공조달을 순수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노동·복지·환경 정책 등과 결합해 사회적 결속과 경제적 격차를 완화하는 사회정책 수단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사회책임조달 전략은 규제보다는 조달 계약이라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활용하여 시장이 사회에 책임있게 움직이도록 유도한다. 공공조달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사용한 것인데, 정부 정책의 영역 및 수단의 지평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연합이 공공조달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공공조달이 국가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공공조달은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에 이르고, 한국에서도 지디피의 8%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지자체와 사회적기업, 사회적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은 공공서비스라는 공통의 목표를 지향한다. 정부의 조달시장과 공공서비스의 혁신적 공급체로 떠오르는 사회적 경제의 재화와 서비스를 연결하면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사회통합을 이루면서 사회적 경제의 동반 성장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사회책임조달에 대해 “품질보다 정의를 앞세워 시장을 왜곡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조달시장의 성격을 오해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성기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공공조달은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공성을 가져야 함에도 지금까지 영리 지향적 기업에 의존하는 비공공적 정책을 펼쳐왔다”며 “조달시장은 공동체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의 생산력을 높여 경쟁력 강화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