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31 15:45
수정 : 2012.12.31 15:45
|
공공조달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투명한 거래를 위한 정부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사진은 대표적인 공공조달 사이트인 나라장터(geb.go.kr).
|
[헤리리뷰] 사회책임조달제도 보완할 점 없나
경기도에서 중증장애인을 고용해 닭고기를 가공하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윤아무개 사장은 사회책임조달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할 때면 씁쓸한 입맛을 다시곤 한다. 최근 자사의 닭고기를 학교급식에 납품하려다 겪은 일들이 새삼 떠올라서다.
현재 학교급식에 제품을 납품하려면 크게 두 단계가 필요하다. 먼저, 제품이 친환경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권역별 친환경유통센터에 등록해야 한다. 이후엔 학교를 발로 뛰며 판로를 확대해 가야 한다.
그런데 윤 사장은 첫 단계인 업체 등록을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담당자로부터 사업의 영세성 등을 이유로 등록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등록서류에 사회적기업으로서 창출한 다양한 사회적 성과를 정리해 설명했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됐다고 한다. 윤 사장은 “공공조달 시장이 겉으로는 공익성을 강조하면서도 원재료 조달부터 생산 및 납품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업체가 창출하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올해 초 조달청은 2012년 조달계획에서 사회책임조달의 하나로 중소기업 제품 70조원어치를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공공조달 시장 규모가 100조원을 조금 웃도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적지 않은 수치다.
자본규모·업무경험 등 큰 기업에 유리
하지만 앞서 이야기처럼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기업이 공공조달 시장의 관문을 뚫어내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낙찰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법적 장치는 때로 사회적기업을 비롯한 영세 사업자들이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조달업체를 선정할 때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구매 지침서’, ‘지방자치단체 낙찰자 선정 기준’만 살펴봐도 그렇다. 이 규정에 따르면, 입찰업체 선정 시 해당 사업의 규모나 성격과 무관하게 업체의 재무 건전성이나 자본의 규모, 그리고 업무 수행 경험을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상대적으로 영세하거나 업력이 짧은 기업들의 시장 접근 자체를 어렵게 하는 규정이다.
기업 신인도 평가는 배점의 5% 불과
반면, ‘신인도’와 같은 기업의 투명성이나, 장애인, 여성 그리고 기타 취약계층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미흡하다. 전체 평가배점 가운데 5%가 채 되지 않는다. 특히, 공사 입찰의 경우 30억원 미만일 때는 평가에서 ‘신인도’ 항목 자체가 제외된다.
다만, 최근 취약계층 고용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중증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여성 기업과 같은 취약계층 고용을 담당하는 곳을 통한 계약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계약의 규모가 작아 수익성이 낮다는 게 문제가 되는 등 보완의 필요성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공공조달 시장에서 ‘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은 없을까? 크게 세 가지 보완책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법규 개선을 통해 공공조달 시장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앞서 서술했듯이 재무적 건전성과 유사 사업 수행 경험 등은 기존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에만 도움이 될 뿐이다. 올해 초에 사회적기업 육성법 제12조가 개정돼 사회적기업도 공공조달에 참여할 때 기존에 있던 ‘중소기업 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의 수혜를 입게 됐다. 하지만 이런 평가 기준 아래서는 사회적기업이 다른 중소기업과 경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관련 법률 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의계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적기업의 현실이다.
환경 등 사회적 책임 범위 확대해야
둘째, 공공조달 시장이 지향하는 사회적 책임의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제도적 손질이 필요하다. 현재 공공조달 시장의 사회책임조달은 지나치게 취약계층 일자리 지원에 한정해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환경’, ‘지역사회’와 같은 분야 역시 공공조달 시장이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가치다. 이들은 상호 균형과 조화를 통해 추진되었을 때 좀더 큰 상승효과를 창출해낼 수 있는 가치들이기도 하다.
셋째, 일선 공공기관의 재량권을 강화해줄 필요가 있다. 기존의 제한입찰과 수의계약 위주의 사회책임조달 방법에서 탈피해 일선 공공기관이 지향하는 구매 목표와 목적에 따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평가 과정에서 일선 공공기관의 운신 폭이 상대적으로 큰 2단계 입찰 방식을 좀더 다양한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관련 법규를 완화하고 확대하는 방식만으론 사회책임조달의 성과를 안정적으로 창출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속가능한 사회책임조달을 위해 공공기관이 던지는 질문에 입찰업체의 성실한 답변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의 제공이다.
라준영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공조달 시장도 결국 공익성이 강조되는 ‘시장’의 영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장이 갖고 있는 문제는 시장의 메커니즘으로 풀어내야 한다. 사회적기업 등 일선 업체들도 다양한 협력과 연계 등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