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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31 15:58 수정 : 2012.12.31 15:58

카르마 치팀 장관

헤리가 만난 사람 / 카르마 치팀 부탄 행복부 장관

부탄은 히말라야 산중의 작은 나라다. 인구는 60만명으로 서울시 1개 구만한 규모다. 왕국이었는데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아 2008년부터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부탄은 한국, 대만, 중국 같은 신흥국의 발전 모델 대신, 물질적·정신적 만족이 균형을 이루는 대안적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널리 쓰이는 국내총생산(GDP) 대신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 지수를 만들어 정부 정책의 잣대로 삼는 데서 잘 나타난다.

그래서인지 1인당 소득 2000달러 안팎인 이 나라 국민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 수준은 세계 최고다. 영국에 있는 유럽 신경제재단(NEF)이 2010년 나라별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부탄은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국민 100명 중 97명이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카르마 치팀(48·사진) 장관은 2007년부터 부탄의 국민총행복위원회(GNHC)를 맡아 행복지수를 측정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달 초 국제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치팀 장관을 인터뷰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행복해지고 싶으면 경제적 성과 그 너머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엔에이치(GNH)는 지디피(GDP)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

“차이가 아주 크다. 지디피는 오직 경제활동만을, 별로 쓸모가 없는 방식으로 측정한다. 반면 지엔에이치는 발전의 결과가 무엇이어야 할지에 더 관심이 많다. 또 지디피는 직장이나 주거처럼 주로 수단을 얘기한다. 하지만 지엔에이치는 목적을 이야기한다. 그 목적이란 모든 사람이 갈구하는 것, 즉 행복이다. 한 국가와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할 때 어떤 인식틀을 사용하느냐에 큰 영향을 받는다. 지엔에이치는 행복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인식틀이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국민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계속 성장 바라면 지구는 재앙 맞을 것

-그래도 사람들은 경제성장, 즉 지디피의 증가가 행복의 척도라 믿지 않나?

“지디피는 발달(progress)을 측정하는 도구로는 매우 현혹적인 면이 있다. 우리는 일단 지디피가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쓰나미가 덮치면 지디피가 올라가고, 환경파괴가 심해져 이를 복원하는 데 돈을 쓰면 지디피가 성장한다. 사이먼 쿠즈네츠가 지디피를 처음 고안할 때 경제활동을 측정하려 한 것이지, 발전을 측정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지엔에이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모든 나라는 두자릿수 지디피 성장을 바란다. 한데 그렇게 되면 유한한 자원을 가진 지구는 재앙을 맞을 것이다. 당신이 농촌에 살고 있다면 산에서 나무를 많이 베어내면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삶의 터전이 황폐해지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이렇게 늘 지속가능하게 일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원인과 결과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도시에 사는 우리는 돈만 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 우리 행동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볼 수가 없다. 그 결과 우리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된다. 만일 우리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알려주는 인식틀을 갖고 있다면, 좀더 ‘총체적’(holistic)으로 사물을 보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GNH 채택의 걸림돌은 정치인과 기업

지엔에이치는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게 만드는 인식틀이다. 이게 있을 때 한 개인으로서도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며 행동하게 된다. 왜냐하면 종국에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다 연관이 돼 있기 때문이다. 후손이 암울한 미래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지디피만 본다면 이런 전체적인 측면을 볼 수가 없다.”

-지표만 만든다고 전부가 아니지 않나? 지표의 사용에는 늘 권력 관계가 개입하지 않나?

“정확한 지적이다. 지엔에이치 같은 지표를 채택하기 어렵게 하는 두 축이 있다면 하나는 정치인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이다. 이들은 장기보다 단기 업적에 의해 보상받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너무 비난할 것도 없다. 다만 권력 관계는 유권자와 소비자가 요구할 때 변화한다. 세계 곳곳에서 이런 요구가 실현되고 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갖자 기업들은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상품의 재활용을 요구하자 정치인들은 환경을 보전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이런 힘으로 권력의 방정식을 바꾸어야 한다.”

가족과 문화전통이 행복 실현에 중요

-부탄이 행복정책에서 특별히 역점을 두는 것은?

“가족과 문화적 전통, 두가지를 꼽고 싶다. 가족은 사실 매우 중요한 자연적 제도이다. 한 개인에게 가족은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불행히도 경제개발에 나서는 정부는 이를 경시한다. 경제적 현실 앞에 가족은 축소되고 파괴된다. 그러면 인생을 즐기기 위한 상호작용은 차차 줄어든다. 일만 계속하는데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 아마 어떤 기업을 위해서일 것이다. 이게 우리가 근대적 생활방식이라 부르는 것이다.

또 문화적 전통은 수백년 전부터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수된 것이다. 이런 전통에는 시간을 견디며 정제된 가치가 있다. 사랑, 열정, 자애, 부모 공경 같은 가치 말이다. 공동체가 가진 이런 가치가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고, 행복은 자기 정체성이 확고한 사람이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경제가 발달하면 도시화와 핵가족화는 불가피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이는 서구의 발전 모델이다. 핵가족화된 가정에서 부모는 일에 바빠 아이 돌볼 시간이 없고, 대신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이는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체제가 강요한 인위적 선택이다.”

-부탄은 어떠한가? 도시화나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있지 않나?

8시간 일-8시간 잠-8시간 휴식 권장

“꼭 그렇지는 않다. 도시로의 이주나 핵가족화가 진행되긴 하지만 속도가 아주 느리다. 우리는 노력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만나는 것이다. 가족을 지키고 챙기길 원한다면 일을 줄이고 시간을 내야 한다. 사람들이 여유를 갖고 인생을 살도록 하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한 예로 싱가포르 정부는 대가족이 가까운 지역에 함께 모여 살려고 하면 주택 배정에서 우선권을 준다. 부탄은 8시간 일, 8시간 수면, 8시간 유유자적한 생활을 권장한다. 아는 사람과 더 오래 시간을 보내도록 하려는 것이다. 문화적 전통, 가족, 웰빙은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하지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부탄이 작은 나라이기에 가능하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이나 일본도 이런 게 가능할까?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큰 나라라고 왜 안 되겠느냐고 묻고 싶다. 그들도 행복하고 싶은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오직 경제적 성과에만 관심을 쏟을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일본 같은 나라는 소득은 높은데도 삶의 만족도는 아주 낮다. 처음 와본 한국은 인프라 면에서 상당히 발달한 것 같은데, 빠른 성장의 대가로 무언가를 주어버린 듯한 인상을 사람들의 표정에서 받았다.”

-부탄은 경제위기 이후 길을 잃은 세계에 대안적 시각을 제시할 수 있나?

“자신있다고 말하진 않겠다. 다만 우리의 발전은 다른 나라와 좀 다를 것이다. 당신이 50년 뒤 부탄에 온다면 우리의 생활수준은 여전히 개선할 점이 있겠지만, 우리의 삶의 질은 좋을 것이다.” 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카르마 치팀이 장관인 부탄의 국민총행복위원회(GNHC)는 행복이란 비전 아래 국가의 5개년 계획을 수립·관장하는 부서이다. 재정부에서 여러 직책을 맡아온 치팀은 2007년 현직에 취임했다. 모든 수력발전소를 관장하는 부탄 최대기업 드루크 그린 전력공사의 회장이기도 하다.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국민총행복 지수’란

문화·환경 등 33개 지표로 구성

부탄은 1970년대 초부터 국민행복을 측정하는 독자적인 지표 개발을 추진했다. 2008년에는 이렇게 만든 국민총행복(GNH) 지수로 국민의 행복 수준을 측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집행하고 있다.

부탄의 국민총행복지수는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사회 및 경제적 발전, 문화 보존 및 진흥, 환경 보호, 굿 거버넌스(활기찬 민주주의를 말함) 등 네 축을 중심으로 해, 9개 부문 33개 지표로 이루어져 있다. 33개 지표는 구체적으로 삶에 대한 만족도, 여가시간, 가족, 기부, 환경에 대한 책임감 등이 있다.

정부는 2년에 한번 국민총행복지수를 측정하는데, 2010년에는 1점 만점에 0.743이 나왔다. 건강, 생태적 다양성, 공동체, 문화 등의 항목은 우수했으나 교육과 거버넌스는 그렇지 않아 정부는 이 부문을 향상시키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부는 중요 정책을 입안할 때 우리가 환경영향 평가를 하듯 국민총행복 평가를 해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외국 자본이 수력발전소를 짓겠다고 신청해도, 지역사회, 환경, 개인에게 미칠 영향을 평가해 마땅치 않으면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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