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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6 17:27 수정 : 2013.03.26 17:27

박상금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

사회연대은행 10주년 계기로 본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디트’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는 기술과 경험은 있으나 신용이나 담보가 부족해 일반 금융회사를 이용할 수 없는 취약 계층에게 소액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대출해 자활을 돕는 금융활동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인 사회연대은행이 10주년을 맞았다. 사회연대은행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성과를 평가해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디트의 발전 방향을 짚어본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빈곤 퇴치를 위해 만들어진 대안금융 시스템이다. 1970년대 중반엔 주로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하고 빈곤이 심각한 나라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는 사회보장제도가 비교적 잘 정비된 유럽 국가에서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 생겨나는 등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외환위기 뒤 실업해소책으로 등장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실업 문제가 커지면서 신나는조합과 사회연대은행과 같은 비영리기관에서 도입했다. 신나는조합은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한국지부인데, 그라민 트러스트의 기금 5만달러를 지원받아 2000년에 활동을 시작했다. 사회연대은행은 보건복지부의 설립인가를 받아 2003년 2월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 여성 가장에게 ‘아름다운 세상 기금’을 지원하는 아름다운재단, 새터민 등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열매나눔재단, 창원지역 사회복지은행 등 여러 기관이 등장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그러나 민간 재원으로만 유지되었던 2000년대 초·중반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재원, 열악한 기관 운영 등으로 고전하던 시기였다.

민간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이 빈곤 퇴치와 실업 해결의 유용한 수단으로 입증되면서 공공부문에서도 적극적으로 서민 자활 지원을 위한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7년 7월 ‘휴면예금 관리재단 설립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은행에서 잠자고 있는 휴면예금을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마이크로크레디트 발전에 가장 큰 장애 요소였던 재원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도 기존의 복지 패러다임을 바꿔 능동적·투자적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마이크로크레디트 인프라 구축 사업을 전개했고, 예산도 증액했다.

작년말까지 62개 기관서 3252억 지원

2009년 9월에는 정부가 서민 자활 지원을 위해 향후 10년간 2조원의 자금을 조성하겠다는 마이크로크레디트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소액서민금융재단을 미소금융중앙재단으로 개편하고 미소금융 정책을 실시했다. 공공부문의 마이크로크레디트 확대에 힘입어 2012년 말 현재 62개 기관에서 3252억원의 지원이 이뤄져 양적으로는 급격한 팽창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공공 주도로 전개되면서 오히려 민간기관들의 사업은 위축됐다.

사회연대은행은 10년간 1653개 업체에 320억원을 무담보·무보증으로 대출해줬다. 제도금융권을 통해서는 대출을 받기 힘든 계층한테 10년간 금융접근권을 제공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제도권 금융기관은 돈을 회수하는 것을 염려하고 일정 기간 돈을 갚지 못하면 연체나 채무불이행자로 처리한다.

사업유지율, 일반자영업자보다 월등

하지만 사회연대은행은 같은 상황에서 사업자들이 사업적 어려움을 이겨내거나 가정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도움을 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실제로 2009~2012년 지원업체 789곳을 대상으로 사업유지율을 분석한 결과, 일반 자영업자의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사회연대은행을 통해 자립의 기회를 잡은 사업자 대부분은 재정적 지원 외에 신용, 자신감, 인간관계의 확장, 자존감 등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회연대은행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선도기관으로서 2006년 사회복지은행 등 신생 기관의 설립을 돕고, 2009년 15개 기관에 대해 컨설팅을 지원했으며 2012년에는 인천 사회적은행의 사업 구축을 지원해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07년부터는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성공 요인인 사전·사후관리요원(RM; Relationship Manager), 즉 마이크로크레디트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배출한 인력이 마이크로크레디트·자활 기관 등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은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해 창업을 지원한 업체를 '무지개 가게'라 부른다. 박사금 상임이사(맨 오른쪽)가 한 무지개 가게의 창업을 축하하고 있다.

공공부문 주도로 바뀌며 민간 위축

현재 국내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들은 여러가지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 우선 사업 수행을 위한 기금의 안정성이 미흡하다. 특히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의 전략적인 사회공헌활동 파트너였던 대기업, 금융기관이 이제는 이런 일을 직접 수행하는 쪽으로 가면서 안정적인 재원 조성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졌다. 공공기금의 재원 비중이 높아지면서 정책이 변경되거나 사업이 축소될 경우, 사업의 지속가능성뿐 아니라 기관의 생존가능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또한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제도권 금융회사보다 훨씬 낮은 이자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재정자립도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여기에 창업 전후 밀착지원을 제공하기 때문에 높은 사업운용 비용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경기침체, 자영업 과잉, 신용평가 모형의 불안정성 등으로 부실채권이 증가하고 있어 그대로 방치할 경우 기금이 잠식될 우려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 한국의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전세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역사와 발전 과정과 비교해 보면 이들이 겪었거나 겪는 문제를 함께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공공부문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이 확대되면서 민간이 아닌 공공 주도로 가고 있는 상황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양적 팽창’서 이젠 ‘질적 도약’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저소득층의 자립, 일자리 창출의 유용한 대안으로 인정받고 있다. 실업과 양극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 활성화는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이제는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질적 도약을 위해 민관이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세계은행의 대안금융자문그룹(CGAP)이 마이크로파이낸스의 11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정부의 역할에 대해 ‘환경을 조성할 뿐, 직접 금융서비스를 제공해선 안 된다’고 언급했다. 이는 정부가 직접 운용할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이러한 역할들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 등의 지원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제도를 재정비하라는 의미이다.

아울러 민간기관은 외부 보조금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고, 부실채권과 운용비용을 줄여 운용을 효율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양적 팽창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고 앞으로의 10년은 질적 도약을 이루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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