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24 16:00
수정 : 2013.06.24 19:03
한·중·일 6년 변화 비교 결과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 영향 뚜렷
6년 전 한겨레경제연구소는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세 나라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를 발판으로 한·중·일 사회책임경영 우수기업을 선정하는 ‘동아시아(East Asia) 30’ 평가를 2010년부터 매년 해오고 있다. 또한 중국과 일본의 사회책임경영 전문기관과 협력해 사회영역의 우수사례를 개발했다.
현재 한·중·일 사회책임경영을 둘러싼 상황은 첫 비교연구 때와 사뭇 다르다. 변화의 요인 중에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의 영향이 크다. 세 나라 모두 최근 정치지도자가 바뀌었다. 새로운 리더를 맞은 세 나라의 사회책임경영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간 기업 자율에 맡겨두던 데서 정부의 가이드라인 또는 민관의 협치가 강조되는 쪽으로 이행하고 있다. 연성법에서 경성법 체제로 이행하는 것이다.
중 시진핑 정부, 오위일체 발전틀 제시
가장 가시적인 변화가 있는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사회책임경영을 추동하는 힘이 주로 정부에서 나오다 보니 정치적 리더십이 변화할 때 큰 영향을 받는다. 시진핑 정부 정책의 내용은 이전에 견줘 눈에 띄게 변했다. 2007년 무렵 중국 정부는 수출국가로서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회책임경영을 강조했다. ‘중국 기업의 CSR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회사법을 개정해 CSR 조항을 명시했다.
2013년 중국의 새 지도부는 ‘오위일체’를 발전 틀로 제시했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 및 환경을 모두 포괄해 발전, 성장하자는 뜻이다. 그간의 맹목적인 경제성장 중심에서 벗어나 다른 부문들과의 균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정책 변화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를 낮추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특히 환경오염방지와 식품안전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이런 쪽에서 법을 어기는 기업은 한층 엄격하게 처벌할 것으로 보여,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법과 윤리를 지키고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강화를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 기업들 변화 더디자 정부가 나서
한국은 기업의 변화가 더뎌 정부가 발벗고 나서는 형국이다. 2007년 이미 사회책임경영이 글로벌경제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 공유는 이뤄졌다. 그간 많은 대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하게 했지만 그 성과는 긍정적이지 않다. 이는 불공정거래, 비자금 조성, 세금포탈, 작업장 사고 등 사회책임경영과 거리가 먼 행태와 관련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주요 국정과제로 삼아 경제적 자유와 그에 비례하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대기업 지배주주의 사익편취행위 근절, 기업지배구조 개선, 공정거래법 집행체계 개선 등의 세부 과제를 보면 잘못을 저지른 기업은 법적으로 강력히 제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 기업들은 자발성을 갖고 사회책임경영을 기업 활동에 내재화하기보다는 여전히 새 정부의 의중이 뭔지 눈치만 보고 있다.
일, 여성 노동시장 참여 확대 화두 제시
일찍부터 환경책임을 자각하면서 시작된 일본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은 정부와 크게 관련 없이 이뤄져왔다. 본격적인 사회책임경영 개념이 나오기 전부터 일본 기업 나름의 환경사회책임경영을 시행해온 셈이다. 일본의 대기업과 경제단체는 여전히 사회책임경영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회책임경영과 관련된 법률 및 규제 등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베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새 정부는 성장전략의 하나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를 꺼내들었다. 일본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에서 인권 및 노동 쪽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주목되는 정책변화이다.
국제표준과 다소 동떨어진 듯 보이는 일본 나름의 사회책임경영 문화도 변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글로벌 보고 기준인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와 ISO26000에 따라 작성하는 기업이 많아졌다. 그리고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기업 내 제도화도 상당히 진전됐다. 사회책임경영 담당 부서와 임원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제정한 기업들도 크게 늘었다. ISO26000 발효 등 국제적으로도 사회책임경영과 관련해 경성법화되어 가는 추세다. 일본 기업들도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높아진 사회 요구 비해 기업 인식 낮아
6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중·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는 더 강화되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수준은 여전히 규제에 순응하거나 홍보에 활용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기업전략에 반영하거나 기업의 목표로 삼는 단계로 간 기업은 찾아내기 힘들다. 가장 큰 원인은 기업의 목표를 여전히 주주 이익에 두는 데 있다. 이윤창출 자체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경영자들이 적지 않다. 건전한 기업활동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세금을 내는 것 이상의 사회적 책임은 무리라는 목소리도 여전히 나온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기업에게 수익은 인간에게 숨쉬기와 같은데, 아무도 숨쉬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익을 내기 위한 활동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게 기업의 당연한 모습이다. “훌륭한 경영자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이윤을 추구하는데, 그것이 바로 훌륭한 비즈니스”라는 드러커의 주장처럼 한·중·일 기업은 경영활동에서 스스로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써 가야 한다.
글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디자인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