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24 16:19
수정 : 2013.06.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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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적극적 보육지원으로 여성 인력의 노동시장 참여를 늘리고, 여성이 승진하는 데 따른 차별을 없애려 시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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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아베 정부의 사회책임경영 정책
강한 일본을 꿈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아베노믹스’는 통화 팽창, 재정지출 확대, 새로운 성장전략 등 이른바 ‘3개의 화살’로 이루어져 있다. 눈에 띄는 것은 4월말 성장전략 중 하나로 발표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 방안인데, 아베 총리는 이를 두고 ‘성장전략의 핵심’이라고 표현했다. 그 내용은 2020년까지 사회 여러 분야에서 여성 지도자의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고, 여성 일자리를 확대해 다시금 활기찬 일본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성장전략 중 핵심으로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일본은 1989년에 출산율 1.57명의 저출산 쇼크, 1995년부터 생산연령(15~64살)의 감소를 경험했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는 갖은 노력을 했지만 출산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런 인구구조의 변화는 산업에서 노동력 부족을 낳은 것은 물론이고 정부 수입(세금)과 지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궁리 끝에 일본 정부는 일할 능력이 있는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 때문에 경력단절을 겪는 것을 줄여, 이들이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서 활동하도록 하자는 방안을 낸 것이다.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최소화
구체적인 방안을 들여다보면 우선 정부가 적극 나서서 ‘대기 아동’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대기아동이란 보육원의 정원이 다 차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다. 보육시설이 부족한 일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용어가 바로 대기아동이다.
일본 정부가 파악한 바로는 올해 4월 현재 일본 전역에 2만5천여명의 대기아동이 있다. 다른 말로는 이와 비슷한 인원의 여성 인력이 육아 때문에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가 올해부터 추진할 대기아동 해소 계획 가운데는 정부의 보육원 지원 대상을 넓혀 20명 미만의 소규모 보육 및 유치원을 지원하거나, 더 많은 보육사 양성을 위해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에 육아휴직 3년으로 연장 권고
기업에는 여성들이 출산 및 육아로 경력단절이 이어지지 않도록 육아휴직을 3년으로 연장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는 강제는 아니지만 기업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압박이기도 하다. 정부도 3년의 육아휴직을 마친 여성이 긴 업무공백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복귀 직전에 교육훈련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여성 고용의 질도 높이도록 기업들에 촉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경제단체장들에게 기업이 최소 1명 이상의 여성 임원 및 관리자를 임용하도록 요구했다.
일본 사회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4월 도쿄 증권거래소를 비롯한 일본의 5개 증권거래소는 ‘상장기업의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보고서’ 기재 요령을 개정해 이사회의 성별 구성과 여성 임원 현황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이 역시 의무 공개 사항은 아니지만, 향후 기업의 여성 임직원과 관련된 정보 공개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난해부터 일본의 산업과 통상 등을 다루는 경제산업성에서는 ‘다양성 글로벌 100’을 선정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다양성을 꼽고 있다. 여성과 외국인, 노인 및 장애인 등의 다양한 인재를 고용해 혁신 및 생산성 향상 등의 성과를 올리는 기업에 시상하는 것이다. ‘다양성 글로벌 100’에 포함된 기업들을 살펴보면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인재가 성장할 수 있고, 특수성을 배려받는 경영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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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다양성 글로벌 100’에 선정된 시게마쓰 건설은 여성 기술직 비율이 35.3%이다. 일본 경제산업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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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성 ‘다양성 글로벌 100’ 선정
아베 총리가 내놓은 여성 인력의 적극 활용은 새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미쓰비시, 유에프제이(UFJ) 신탁은행 등 몇몇 기업은 이미 3년 육아휴직제를 시행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정책은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것을 전면에 배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것을 본격적으로 들고나온 것이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휴직은 어쩔 수 없는 업무공백을 가져오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공백과 대체인력 마련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 직원들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수유실이나 어린이집 마련에서부터 출퇴근시간 조정 같은 근무시간 유연화 등 기존의 조직문화까지 변화를 주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성이 출산 및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시대 변화를 읽고 앞서나가는 경영이라 할 수 있다. 요즘에는 결혼 시기가 예전보다 늦어져 보통 여성이 출산하는 시기는 사회 초년생이 아니다. 즉 업무 경력이 어느 정도 있는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 앞에서 퇴사와 경력단절을 선택한다는 것인데, 이는 기업에도 사회에도 큰 손실이다.
가족 넘어 사회 전체에 긍정적 영향
따라서 기업이 주요 이해관계자인 여성과 아동의 삶을 위해 모성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은 어느 나라에서건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육아를 여성의 일로만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바꾸어 나가,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사용했을 때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
20년 넘는 침체에서 빠져나와 일본을 다시금 뛰게 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야심찬 행보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여성이 더 일하기 좋은 기업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핵심을 잘 짚은 것이다. 이는 단지 여성으로 끝나지 않고, 육아와 가족으로 이어져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으로 볼 때는 이런 여성에 대한 배려는 임직원에 대한 사회책임경영의 한 분야이고, 나아가 협력사까지도 지원과 독려를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일본의 핵심 성장동력이 여성 인력이라면 그것이 진가를 발휘하는 데는 진정성 있는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 여성의 경력단절 및 여성 고용의 질 하락 등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이를 극복해내는 것을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는 단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정도는 다르지만 일본과 비슷한 행로를 걷고 있다. 여성과 관련한 사회책임경영 원칙을 세우려는 한국 기업들은 일본의 사례를 탐구해볼 만하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y.y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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