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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1 16:28 수정 : 2013.10.01 16:28

테크노폴 앵귀스 단지 안에 있는 직원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

퀘벡 지역사회 되살린 사회적 경제

한때는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쇠락해가는 도시는 쓸쓸하다. 하지만 모두들 떠나려는 도시와 마을에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활력을 다시 불어넣은 사례가 적지 않다. 캐나다 몬트리올 테크노폴 앵귀스와 생카밀 마을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곳에서는 현재 2000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1995년 앵귀스 개발회사(SDA)가 출발할 때 계획했던 목표를 두 배나 초과 달성한 셈이지요.” SDA 부동산 컨설팅 및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인 캐서린 메이어의 답변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몬트리올에서 가장 오래된 공업지역 중 한곳에 자리잡은 ‘테크노폴 앵귀스’는 퀘벡을 대표하는 사회적 경제 방식의 도시재개발 사례로 손꼽히는 곳이다. 100년 전에 지어진 거대한 철도공장의 뼈대를 그대로 둔 채 내부를 개조하여 수십개의 중소 규모 사회경제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성공적인 기술산업단지 모델로 평가된다.

◇ 테크노폴 앵귀스

개발 놓고 주민·회사쪽 2년간 대립

현재 전체 면적의 52%가 개발된 테크노폴 앵귀스에는 내년에 완공될 예정으로 퀘벡간호사협회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SDA는 산업단지의 개발 자금 조달과 운영을 맡고 있는 회사로서 입주기업들에 대한 공간 임대료 수입과 일부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며, 각 건물의 15% 정도를 자산으로 가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대도시 낙후지역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두 개의 모델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갈등한 결과로 탄생했다. 1992년, 캐나다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인 ‘캐나디안 퍼시픽’ 철도회사의 몬트리올 공장이 완전히 문을 닫기로 결정했을 때 남은 노동자는 1000명 남짓이었다. 전성기에는 최대 1만2000명까지 고용하던 회사였지만 1970년대 이후 철도가 사양산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회사 쪽은 50만㎡에 이르는 땅을 1200가구 규모의 주택단지로 개발할 참이었다.

하지만 ‘지역사회경제개발센터’는 주민들의 일자리를 보존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재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을 끈 싸움 끝에 양쪽은 땅을 절반으로 나누어 한쪽은 주택단지로, 다른 쪽은 사회경제 및 첨단기술회사들이 수렴되는 산업단지 방식으로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산업단지 개발의 초기 자본조달에는 퀘벡에서 둘째로 큰 노조인 CSN이 조성한 사회연대기금 ‘퐁닥시옹’(행동기금)이 참여했다.

‘개발과 공동체’ 두마리 토끼 잡아

현재 테크노폴 앵귀스에는 산악장비협동조합(MEC)과 데자르댕 비즈니스센터 등 2개의 협동조합과 11개의 사회적기업을 비롯해 모두 40개가 넘는 기업이 입주해 있다. 하지만 이곳은 회사 사무실만 모여 있는 건조한 공간이 아니다. 거대한 건물의 철제 골조와는 달리 이 공간의 안팎에는 일터와 여가, 그리고 주거의 균형을 추구하는 부드러운 시설들이 자리잡고 있다.

몬트리올시에 기부한 넓은 공원과 자전거도로가 있고,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와 커피숍은 물론 스파와 진료소까지 갖추었다. 회사 직원 자녀들을 위한 두 개의 어린이집과, 바로 그 앞에서 유기농 채소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 작은 농장이 있다. 산업단지 전체의 청소와 관리는 사회적기업 방식으로 운영된다. 테크노폴 앵귀스는 혁신적인 도시개발과 공동체적 산업단지 운영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른 지역의 모범이 되고 있다.

◇ 생카밀 마을

“나는 행복해요.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노년을 보낼 수 있어서….”

이디스 할머니가 우아한 표정으로 손님들을 배웅하면서 건넨 마지막 한마디에, 나는 울컥했다.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로 둘러싸인 공동주택 ‘메종 아르몽니’에는 모두 9명이 산다. 본채에 6명, 뒤채에 3명이 사는데, 1층에는 주로 60~70대가, 2층에는 좀더 활동적인 젊은층이 둥지를 틀고 있다. 공동진료소와 작은 기념품가게까지 두고 있다. 방 두 개와 거실 겸 부엌, 화장실이 딸린, 아담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이디스의 집. 비록 혼자라고 해도 품위있는 노년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그녀는 2001년 이 협동조합 주택에 입주했다.

9명이 입주해 사는 생카밀의 협동조합 공동주택 '메종 아르몽니'

주민 합심해 주택협동조합 설립

몬트리올에서 남동쪽으로 두 시간 반을 달려 찾아간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생카밀 마을. 2006년 프랑스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월드 빌리지’라고 소개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곳이다. 아이들 네댓이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동네 놀이터에서 깔깔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퀘벡의 농촌재생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이곳은 약 500명의 주민이 합심하여 협동조합 방식으로 쇠락해가는 시골 동네를 살려냈다.

퀘벡의 여느 전형적인 농촌처럼 마을 복판에 커다란 교회 건물이 서 있고, 그 주변에 이 동네 사람들의 자부심의 상징인 작은 우체국과 데자르댕신협이 자리하고 있다. 사라질 뻔했던 학교에도 95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예전에는 인근 셔브룩이라는 도시로 마을 주민들이 떠났는데, 이제는 그 도시에서 사람들이 생카밀로 이사를 오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5개 단체 나서 마을공동체 복원

한때 1000명이 넘었던 인구가 1980년대 이후 절반 가까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자 주민들은 마을살리기를 궁리하다 협동조합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주택협동조합인 ‘라코르베’(품앗이)와 채소판매협동조합인 ‘라클레데샹’(자유)이 만들어지고, 옛 잡화점 건물에는 ‘프티 보뇌르’(작은 행복)라는 문화센터 겸 단체 사무실이 들어섰다. 고령자와 학생들을 위한 음식배달 서비스인 ‘포포트 룰랑트’를 비롯하여 무려 25개의 각종 단체가 힘을 합쳐 지속가능한 농촌마을을 이끌었다.

마을 지도자들은 ‘퀘벡농촌연대’와 셔브룩대학 등 외부 기관들로부터 다양한 금융자원 및 지원 집단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로는 마을 인구는 줄어들지 않고, 대신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지인이 늘고 있다.

몬트리올/글·사진 김창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및 엔지오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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