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30 15:21
수정 : 2013.12.30 16:38
[헤리리뷰] CSR 내재화하는 사회책임경영
포털에서 ‘시에스아르’(CSR·사회책임경영)를 검색해보면 아직도 ‘사회공헌’으로 번역한 글을 볼 수 있다. 사회책임경영을 넘어 ‘공유가치창조’(CSV)로 가야 한다는 글도 적지 않다. 이 역시 사회책임경영을 사회공헌 정도로 좁게 봤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사회책임경영은 기업 경영에 내재화하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그 범위가 사회공헌보다 훨씬 넓다.
국내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가이드라인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는 올해 5월 네번째 개정안인 ‘G4’를 선보였다. 개정안의 특징 중 하나는 거버넌스 관련 공개 지표의 보완이다. 경제·사회·환경을 다루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와 전략 수립 과정 등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성과를 평가하는 체계와 이것이 최고 의사기구의 보수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즉,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서 사회책임경영을 다루고 그 체제를 갖추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경영에 사회책임경영이 내재돼야 함을 뜻한다.
임원·이사회서 사회책임경영 성과 논의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경영에 사회책임경영을 체질화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에서도 일고 있다. 엘지(LG)전자는 2012년 4월 이사회의 공식 업무를 추가했다. 이사회가 재무제표를 보고받듯 사회책임경영 성과를 보고받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3월 관련 정관을 개정하고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었다. 엘지전자는 이사회에서 사회책임경영의 기회와 위험 요소를 판단하고 방향을 논의하는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이사회 내 소위원회에서 사회책임경영이나 윤리경영을 다루는 기업도 있다. 코스피 100 편입기업과 코스닥 스타지수 기업 30곳 등 130곳의 기업 가운데 에스케이텔레콤(SKT) 기업시민위원회를 비롯해 3곳의 기업이 사회책임경영 전반을 다루는 소위원회를, 9곳의 기업이 윤리위원회와 투명경영위원회·사회공헌위원회 등 관련 위원회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윤리경영 및 반부패 노력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우리 기업이 연루된 사건·사고들이 연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제 부패 스캔들은 기업의 위험 요소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협약,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에 따라 조사 및 처벌 수위가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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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제3회 인권경영포럼에는 기업, 학계 및 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인권경영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화여대 글로벌사회적책임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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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선 ‘반부패 문화’ 표준 발표하기도
현재 가장 엄격한 법으로 여겨지는 영국의 뇌물수수법(The bribery act)은 자국 기업뿐 아니라 영국 기업의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뇌물 수수 등의 부패 문제는 기업 내부에서부터 협력업체와 지역사회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영국표준협회(BSI)는 기업이 경영의 모든 단계에서 반부패 문화를 확립할 수 있는 표준(BS 10500)을 발표하였다. 표준을 통해 부패 예방 및 반부패 관리 체제를 구축하고 지속적인 개선을 꾀하기 위함이다.
한편 환경 관련 국제 표준인 ‘아이에스오(ISO) 14001’ 인증 현황을 살펴보면, 국내 많은 기업이 이미 환경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정원 누리집에 따르면, 인증이 처음 발표된 1996년에는 사업장 48곳에서 인증을 받았는데 이후 2000년에는 405곳, 2006년에는 5985곳, 2013년(6월 기준)에는 7444곳에서 인증을 받고 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 표준은 보통 사업장 단위로 인증을 받고 갱신한다.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인증 현황을 보면,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많은 기업에서 환경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환경경영 체제 구축은 국내외 원청 기업들의 공급망 관리와 연계된 것이 많다. 에코디자인연구소 양인목 소장은 “원청 기업들이 협력업체에 환경경영 관련 인증을 요구하거나 입찰 자격을 요건으로 내거는 등 (중소 하청기업이 느끼기에) 외부 압력이 높다. 수출 과정에서 해외 바이어가 공급망의 환경경영 관리 수준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급망 관리는 원청 기업의 명성은 물론 제품의 품질과 납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양 소장은 “제품 품질에 한해 진행되었던 원청 기업의 심사가 점차 협력업체의 환경·사회적 영역까지 넓어지고 있다. 독립적인 제3자 심사와 더불어 진행하는 것이다. 공급망의 문제가 결국 자사에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책임경영의 내재화는 사회 분야에서도 중요하다.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여러 영향력을 인지하고 측정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기에 많은 기업이 사회공헌활동으로 사회책임경영을 대신하려 한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고 측정이 비교적 쉬웠기 때문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고, 기본에 얼마나 충실한지에 관심을 갖는 추세이다.
유엔, 기업 인권 프레임워크지침 결의
기업과 인권에 대한 이슈도 그중 하나다. 인권은 모든 사람, 즉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책임경영의 기본이다. 이에 유엔은 2011년 ‘기업과 인권에 관한 프레임워크 이행지침서’를 결의하고 매년 워킹그룹을 구성해 포럼을 개최하는 등 인권경영을 전파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인권 분야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업과 인권에 대한 연구와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에는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인권 현황과 개선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출간해 해외시장에서 인권경영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경제·사회·환경 측면서 성과 종합측정
사회책임경영과 관련하여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통합보고이다. 통합보고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기업의 비전, 전략, 재무제표, 리스크 관리 같은 기업경영의 모든 과정을 한 문서로 기록하는 것이다. 통합보고의 목적은 서로 성질이 다른 성과를 연계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다. 즉, 사회환경적인 비재무 요소의 기회와 위험, 투자와 성과를 경영에 반영하여 하나의 결과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업의 주요 생산자원인 물과 에너지의 절약은 환경적 측면에서는 기업의 성과로 측정되나, 생산량 저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경제적 성과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통합보고는 하나의 분야에서 측정되기 어려운 경영 성과를 경제·사회·환경 측면에서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해 이해관계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업의 가치체계 안에서 성과를 통합적으로 점검하고 보고하기 위해서는 사회책임경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통합보고의 확산은 의미가 크다.
양은영 박은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y.y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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