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30 15:29
수정 : 2013.12.30 15:29
[헤리리뷰] 포커스
인터뷰 / 공익법센터 ‘어필’ 대표 김종철 변호사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해 조국을 떠나는 사람은 타국에서도 환영받는 일이 드물다. 공익법센터 어필(APIL)은 이들을 도와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변호사 단체이다. 2011년 김종철(42) 변호사가 설립해 혼자 활동하다 이후 3명의 변호사를 더 영입했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 서울 안국동 어필 사무실에서 김종철 변호사를 만났다.
어필은 국내에서 난민을 비롯하여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구금된 이주자 등을 지원하고, 해외에서는 한국 기업으로부터 인권을 침해받은 피해자를 위해 소송과 연구·홍보·연대활동을 한다. 누군가 난민이 되는 배경에는 거대자본과 다국적기업이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나이지리아 니제르델타 지역이 있다. 엄청난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이곳은 지역주민들이 기업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하는 곳 중 하나다. 셸 등의 석유회사들은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대항하는 주민들을 몰아내기도 했다. 기업들이 부패한 정권에 돈을 주면서 압박을 가하자 국가가 생존권을 주장하는 주민들을 박해하여 난민이 된 경우도 많다.
법정 최저임금만 주는 한국 기업들
최근 공익법센터 어필은 국가인권위원회 주관으로 공감, 국제민주연대, 좋은기업센터, 희망을 만드는 법 등과 함께 국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현지인 인권을 침해한 현황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김종철 변호사는 국외로 진출한 한국 기업의 인권침해 중 공통적인 것으로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환경오염 등을 꼽았다.
“보통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개발도상국들은 최저임금이 현실성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법정 최저임금에 딱 맞춰 임금을 줍니다. 물가 상승률에 따라가지 못하고, 기본적인 생활에도 어려움이 많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서는 최저임금이 실질적인 최저임금인지를 묻는다. 임금도 현실적인 수준에 맞추지 못하는데 노동환경 수준이나 오염물질 처리를 잘할지는 의문이다.
지역사회 무시한 사업추진방식 문제
그는 한국 기업의 사업 추진 방식을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기업이 지역사회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해당 국가 주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사회와 마찰을 빚을 때가 많습니다. 인도 오리사주에 제철소를 지으려 한 포스코가 이런 경우입니다.”
1990년대 나이키의 아동노동 이슈는 전세계에 불매운동을 불러왔고 기업 명성은 추락했다. 지속적인 개선 노력으로 지금의 나이키는 공급망 관리를 가장 잘하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나이키의 공급망은 독립적인 제3기관이 조사하는데, 이때 심사원은 나이키 내부의 시험을 통과하여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 할 수 있다.
나이키는 지난해 대우인터내셔널이 우즈베키스탄 아동노동 문제에 연루되자 거래 중지를 통보했다. 이로 인해 대우인터내셔널은 매출의 40% 이상을 나이키와 거래하던 부산공장을 다른 곳에 매각하게 됐다. 김 변호사는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공급망에서 어떤 종류의 인권침해가 일어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합니다”라며 “3차, 4차 이하 공급망에서의 인권침해도 기업에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인식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기업과 정부 관계자가 인권 규범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오이시디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의 주무부처인 연락사무소(NCP)에서 기업들이 어떤 규범을 지켜야 하는지 알려주고 연성법임에도 지켜야 한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업 규모 클수록 모니터링 힘써야
올해 9월 영국 정부는 기업 경영과 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선보였다. 인권보호를 위한 국가의 의무와 인권존중에 대한 영국 기업의 책임, 경영활동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해결하는 접근 등을 담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 기본계획에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기존의 ‘유엔 기업과 인권이행 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등을 강화하는 방식에서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나왔다는 점입니다. 둘째로는 영국의 맥락을 반영한 사례, 즉 영국 기업들이 기존에 많이 연루되었던 인권문제에 대한 내용이 풍부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재외 공관들이 기업의 인권침해에 대해 모니터링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코트라 같은 기관에서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 미리 알려주고 모니터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김 변호사는 기업의 영향력과 인권에 대해 언급했다. “다국적기업이 한 국가의 영향력에 비견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기업은 인권을 증진할 수 있는 잠재력도 있지만 침해할 수도 있습니다. 법과 제도, 사회의 인식이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y.yang@hani.co.kr
사진 김효진 한겨레경제연구소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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