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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30 15:34 수정 : 2013.12.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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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스페셜 리포트
‘저탄소 녹색마을’ 정책 4년의 현주소

독일 프라이부르크와 윈데, 오스트리아 무레크와 같은 에너지 자립마을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이명박(MB) 정부도 2009년 ‘저탄소 녹색마을’ 정책을 발표했다. 농촌 마을에서 바이오매스 자원을 활용해 에너지 자립도 40%를 달성하도록 10개 마을을 시범으로 조성하고, 이후 2020년까지 600개 마을로 확대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마을당 투입되는 예산은 50억~60억원 규모이다.

주민 반대에 유리온실사업으로 변경

사업이 발표되자 초기에는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안전행정부, 산림청이 서로 주무부처가 되겠다고 경쟁을 했다. 부처별로 시범마을 조성사업이 진행되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마을 단위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돼지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를 발효시켜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방식은 유럽에서도 많은 논란을 일으킨 생산방식이었다. 주민들도 에너지 자립마을을 에너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신청은 했지만 바이오가스 플랜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되면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안전행정부는 처음엔 충남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를 ‘저탄소 녹색마을’ 대상지로 선정했지만 외부에서 가축 분뇨와 음식물 폐기물을 반입하는 문제로 주민 반대가 심해 공주시 계룡면 금대리로 옮겨갔다. 그런데 금대리에서도 주민 사이에 찬반 대립이 일어나 이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사업은 급작스럽게 지열을 이용한 유리온실 사업으로 변경되었다. ‘저탄소 녹색마을’ 사업을 진행하면서 공무원도 주민도 지칠 대로 지쳐 이젠 ‘저탄소’라는 말만 나와도 손사래를 칠 정도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전북 완주군 고산면 덕암마을도 바이오가스 플랜트 활용에서 태양광과 지열을 활용한 녹색마을센터와 게스트하우스 건립으로 전환했다. 에너지 교육과 농촌 관광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환경부도 처음엔 광주시 남구 승촌마을에서 시작했지만 남구청이 포기하는 바람에 사업지를 광주시 광산구로 변경했다. 환경부는 폐자원의 에너지화라는 목적을 유지하기 위해 바이오가스 플랜트 방식을 지키고 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는 산림청이 자랑하는 탄소순환마을이다. 마을 중앙에 대형 목재펠릿 보일러를 설치해 106가구에 난방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대규모 펠릿 보일러를 생산하는 업체가 없어서 농업용 보일러를 개량해 설치했는데, 잦은 고장으로 주민이 고생하고 있다. 펠릿 보일러 설비 기술의 안전성이 떨어지고, 수입 펠릿을 이용해야 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운영에 대한 고민도 부족했다. 마을에서 지역난방설비를 운전하고, 개별 가정이 사용한 만큼 요금으로 징수해 운영할 별도 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잘 활용하면 마을에 에너지 분야에서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지만 준비가 안 되면 마을에 부담이 되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에너지 자립마을도 뉴타운처럼 조성하면 되는 줄로 착각한 모양이다. 인력도, 지원조직도 부실한 농촌에서 에너지 자립마을은 생산설비를 갖춘다고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 에너지원을 공급하고, 설비를 운영하며, 생산한 에너지를 활용하기까지 순환하는 흐름이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멋들어지게 발표했던 저탄소 녹색마을 정책이 마을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에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

주민이 주체가 돼 성공한 유럽마을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에너지 자립마을은 정부가 분산형 에너지 정책을 펼치면서 주민 주도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반면 한국은 원전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중형 에너지 정책을 고수하면서 시설 중심의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어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같은 농촌마을인데 경남 밀양과 경북 청도에서는 765㎸ 송전탑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우고, 한쪽에서는 정부 예산을 쏟아 자립마을을 만드는 극단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세계 최초의 에너지 자립마을인 무레크는 1980년대 후반부터 협동조합을 만들어 바이오디젤, 목질계열병합발전,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운영해 에너지 자립도 190%를 달성했다. 평범한 농부들이 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들기까지 정부와 대학, 재생가능에너지 기업이 협력했다. 그 배경에는 1978년 다 지은 츠벤텐도르프 원전을 국민투표로 폐쇄한 이후로 오스트리아 정부가 지역분산형 에너지 확대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독일은 전체 전력의 22%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하는데, 재생가능에너지 시설 투자자의 40%가 시민이다. 고정가격매입제도를 도입해 시민들이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한 뒤 전력회사에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분산형 에너지 정책을 펼치면서 지역별로 에너지 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제도, 기술, 인력, 중간지원조직들이 자리를 잡고, 그 속에서 에너지 자립마을이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다.

원자력 중심의 중앙공급 사고 못 벗어

반면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서 주인공은 원자력이었다. 2030년 전력 중 원전 비중 59% 달성을 위해 원전 추가증설과 수출산업화 정책을 지원한 반면,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서는 늘 ‘안 된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원전이 기저발전 역할을 하면서 남는 전기를 해결하기 위해 심야전기요금 제도에 양수발전소까지 지었던 정부가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기술 투자와 시장 활성화엔 소극적이었다. 그나마 재생가능에너지가 확산될 수 있었던 발전차액지원제도도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로 바꿔버렸다.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시행되었을 때 강원도 인제군 남면 남전리에서는 주민 주도로 태양광발전 영농조합법인이 만들어졌고, 제주 서귀포 화순과 경남 사천에서도 주민이 직접 투자해서 설립한 태양광발전소가 세워졌다. 태양광을 통한 전력 생산에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주민이 자발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하고 스스로 운영한 사례다. 한두 마을을 에너지 자립마을로 조성하는 것보다 분산형 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틀 속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시범마을 조성보다 ‘분산형’ 전환해야

그렇다고 지금 진행되는 ‘저탄소 녹색마을’ 사업을 완전히 실패로만 규정할 일은 아니다. 애초부터 시범사업이었다. 마을에서 에너지 생산을 시도하면서 겪었던 제도적, 기술적, 인적 장벽들을 꼼꼼히 분석한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덕암마을과 금대리에서 바이오가스를 포기한 것은 한국의 준비 수준이 마을 단위에서 바이오가스를 사용할 만한 기반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단열개선사업, 지열, 태양광, 태양열 온수기와 같은 현실적 대안을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사업이 지지부진하다고 손을 놓아 버린다면 수십억원을 쏟아부은 이 사업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저탄소 녹색마을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주민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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