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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꽝남성 자라마을 꺼뚜민족은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사진은 꺼뚜민족 조합원들이 면직수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모습. 주이선2협동조합은 베트남 신협동조합법이 낳은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성공회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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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 리뷰] 베트남 협동조합 어제와 오늘
베트남 다낭에서 차로 두 시간 떨어진 꽝남성 남장현엔 꺼뚜(Co Tu) 소수민족이 모여 산다. 베트남 50여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이들은 화전경작으로 쌀, 옥수수, 콩, 고구마, 카사바, 멜론, 그리고 채소와 바나나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조용한 산골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협동조합 설립이 본격화되면서부터다.
꺼뚜 소수민족 200여명이 모여 사는 자라마을은 2001년 면직수공예협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10여년 만에 조합원 규모가 20명에서 80명으로 늘었다. 일본 엔지오(NGO)인 국제개발구호재단(FIDR: Foundation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Relief)과 꽝남성 지방정부가 협력해 직물 디자인, 직조, 경영 관련 교육 및 훈련을 지원한 것이 성장을 견인했다. 협동조합 생산품은 베트남 자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호주에서도 판매 중이다. 마을 내 주민 소득도 증가했다. 2008년 1인당 22만동(약 1만3000원)에서, 3년이 지난 2011년엔 42만동(약 2만5000원)으로 두 배쯤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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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선2 협동조합의 수력발전소 모습. 성공회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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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오, 지방정부 손잡고 교육·훈련
꽝남성 주이쑤옌현 지역도 협동조합을 동력 삼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사례다. 이곳의 ‘주이선2협동조합’(Duy Son 2 Cooperative)은 오늘날 베트남 협동조합을 말할 때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주이선2협동조합은 농업, 임업, 수공예부터 생수, 수력발전을 통한 전기 생산 및 판매까지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부문은 농업이다. 1983년 설립 당시 약 1000톤에 그쳤던 곡물 생산량이 2007년 3650톤까지 늘었다. 조림사업도 활발히 진행해 같은 기간 200헥타르가 넘는 산림이 생겼다. 곡물 생산량이 늘어나자 자연스레 가구소득도 증가해 1651가구 중 90%가 콘크리트 집을 갖고 있으며, 마을 주민 1인당 월평균 소득도 크게 늘어 20만동(약 1만2000원) 이상인 중산층 이상 인구가 59%를 넘어섰다. 반면 1인당 월평균 소득이 20만동 미만인 빈곤계층은 10% 이하로 줄었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끼치는 영향도 긍정적이다.
호찌민, 모든 영역에 협동조합 도입
조합 주도로 새로운 도로를 닦아 운송 기능이 향상됐고, 3개의 초등학교, 5개의 유치원, 보건소 등이 설립됐다.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과 근로자들은 사회보험 혜택을 받고 있으며, 의료 및 보건 서비스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비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주이선2협동조합의 고정 자산은 약 300억동(약 15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베트남 지역 공동체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협동조합 개념은 호찌민의 저서 <혁명의 길>(Duong Cach Menh)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찌민은 협동조합이야말로 베트남 경제개발의 유일한 해법으로 보고, 농업뿐 아니라 모든 경제 영역에 협동조합 방식을 도입하도록 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전까진 잦은 전쟁과 내부 혼란 때문에 정책 시행이 지지부진했다. 반면, 베트남 통일 이후엔 협동조합 정책은 실행됐지만, 내부 부패와 협동조합 가치에 기반한 분배시스템 미비로 수많은 협동조합이 폐쇄되는 등 위기를 겪었다.
시장경제 도입 계기로 시스템 개혁
베트남 협동조합 체계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온 것은 1986년 베트남 사회 전반에 도입된 시장경제였다. 이는 중앙정부 중심으로 운영되던 기존 협동조합 체제의 개혁을 요구했다. 협동조합 법제도와 운영 시스템을 개선해 협동조합 원칙과 가치에 충실하자는 내부 반성이 이어졌고 결국, 1996년 ‘신협동조합법’(Cooperative Law)이 제정됐다.
신협동조합법은 오늘날 베트남 협동조합 제도의 근간이다. 최초 법안 제정 후, 2003년 한차례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협동조합의 가입과 권한, 배당금 관련 조항을 개정했다.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 가입을 허가하고, 협동조합 소유권을 조합원 개인에게도 부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노동 시간에 비례해 배당하던 배당금 역시 노동, 출자, 이용고 세 가지로 다양화했다. 또한 과거 협동조합법에선 영업활동을 국가가 허가하는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해야 했지만 법 개정 후엔 행정구역과 영역에 관계없이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게 됐다.
가장 최근인 2013년엔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추가 개정을 단행했다. 협동조합간 협력의 필요성을 법안에 담아낸 것이다. 주요 골자를 살펴보면, 먼저 협동조합연합회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적어도 4개의 협동조합이 모여 협동조합연합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필요할 경우 자회사 설립도 가능하도록 제도화했다. 협동조합에 대한 추가 지원 정책도 명시화했는데, 농림·수산 협동조합에 대한 시설 개발과 금융 지원 정책이 포함됐다. 협동조합 설립을 위한 행정절차도 간소화됐다. 대표적인 예가 등기 수속 처리 기간이다. 명확한 규정이 없어 길어졌던 수속 기간이 5일로 정해졌다. 해산 절차도 과거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변경되어 생태계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외국인들도 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부분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베트남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경우 조합원 가입을 가능하게 해 조합의 개방성을 한층 강화했다.
경제 영향력, 유럽연합 평균보다 높아
이처럼 신협동조합법이 지속적으로 발전해가는 동안 베트남 경제 전반에 끼치는 협동조합의 영향력도 커져갔다. 2011년 기준 베트남 국내총생산(GDP, 미화 약 1200억달러)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은 7%까지 늘었다. 세계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발달한 지역으로 평가받는 이탈리아의 15%엔 미치지 못하지만 유럽연합(EU) 평균치인 5%보다는 높은 수치다.
이러한 베트남 협동조합 발전 현황에 대해 다낭외대 응우옌응옥뚜옌(Nguyen Ngoc Tuyen) 교수는 “베트남 협동조합이 성장하게 된 배경엔 정부와 국제 비정부단체,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있었다. 최근 개발도상국들이 급격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의 성장 모델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지역 국가들한테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꽝남성/장승권 성공회대학원 협동조합경영학과 교수 이웅구 성공회대학원 협동조합경영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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