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25 17:36
수정 : 2014.03.25 17:36
[HERI 리뷰] 현실과 맞지 않는 중소기업 CSR 제도
몇년 전 한 중소기업 대표가 ‘협력사 CSR 진단지표’란 제목의 서류 뭉치를 한숨 쉬며 바라보던 걸 기억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공급망에 대한 사회책임경영 지표들은 이제 협력업체의 비재무적 요소를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11월 한국생산성본부가 7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CSR 인식 및 실태조사’에서 조사 대상의 59%에 이르는 중소기업이 여전히 사회책임경영 요구에 적절히 또는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조사되었다.
그나마 사회책임경영을 추진하고 있다고 응답한 중소기업도 실제 활동 내용은 매우 빈약했다. 환경이나 노동 부문에서 꼭 지켜야 하는 규제적 이슈에 대응하는 수준이거나, 기부활동을 사회책임경영으로 인식하는 정도일 뿐 경쟁력 강화와 사회책임경영을 연결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CSR 법안 85%가 규제 편중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현재 사회책임경영 관련 제도들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조사한 걸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사회책임경영과 연관성이 있는 국내 법령은 125건이다. 자원·에너지·생물다양성·폐기물 등 환경 관련 법령이 전체의 49%를 차지하고, 고용·보건·안전 등 노동 관련 법령이 30%로 이 두 분야가 전체의 79%를 차지한다. 여기에 지배구조 및 정보공개에 관련 법령이 6%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체 사회책임경영 법령의 85%가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기업 경영으로 파생되는 환경·사회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규제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책임경영은 위험관리 측면과 동시에 기회의 측면이 존재한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규제와 동시에 육성 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특히 예산이나 인력, 전문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더욱 그러하다.
환경부가 실시하는 에너지·온실가스 목표관리제를 예로 들어보자. 일정량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 여부를 직접 관리하는 이 제도는 주로 대기업에 적용된다. 중소기업에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를 공개하고, 감축량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직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육성 정책 강화해 균형 맞춰줘야
이런 경우 육성의 관점에서 중소기업에 에너지와 온실가스를 절감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를 고려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온실가스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동기를 제공하고, 이렇게 관리된 정보는 거래처나 소비자, 투자자들에게 제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즉 사회책임경영을 이행하는 기업에 사회와 시장의 신뢰가 쌓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사회책임경영 육성 정책은 중소기업의 사회·환경 비용 감소와 경쟁력 강화의 선순환 고리를 가능하게 할 첫 단추일 것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