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26 15:57
수정 : 2014.06.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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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강원모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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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고용 떠받치는 나라경제 뿌리
경영 혁신으로 허약체질 강화
3년 전 이맘때였다. 한 중소기업의 파업이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글로벌 대기업의 납품업체였던 이 기업의 파업은 중소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얼마나 중요한 몫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이 기업의 파업으로 해당 산업 전체가 마비돼 한국 경제가 흔들릴 지경이었다. 이전까지 하청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의존적인 허약한 존재이고 언제나 대체될 수 있다는 게 통념이었다. 하지만 이 기업의 파업을 통해 중소기업이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작아도 탄탄하고 유망한 기업일 수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 근로환경 개선이 얼마나 절실한지도 보여줬다. 이 기업의 공장노동자들은 12시간 주야 맞교대 근무를 주간 2교대제로 바꾸기로 한 약속을 회사가 지킬 것을 요구했다. 이 기업의 파업은 우리 사회에서 중소기업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일본은 인증제, 중국은 가이드라인
정부가 바뀔 때마다 중소기업 육성은 단골메뉴처럼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됐다. 대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최종 생산품에 들어가는 수많은 부품은 대부분 중소기업에서 만든다. 그래서 국가경제의 뿌리이자 산업의 중추인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바로 산업의 경쟁력이자 국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기업의 99%,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 대다수의 체질은 허약하다. 중소기업중앙회 자료를 보면, 중소기업은 2012년 기준으로 자기자본비율 38%, 부채비율 162%, 유동비율 123.8%다. 2006년에 견줘 부채비율은 상승하고 자기자본비율은 떨어졌다. 유동비율은 거의 답보상태다. 그리고 평균 이직률은 16%로 대기업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중소기업 체질이 허약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공정하고 평등한 경쟁을 하기 어려운 ‘기울어진 운동장’이 꼽힌다. 아울러 중소기업 스스로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이 되기 위한 경영혁신 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비단 우리 중소기업만의 과제는 아니다. 일본과 중국의 중소기업들도 국가경제에서의 위상에 견줘 처한 현실은 열악하다.
한국선 책임경영지원센터 문 열어
한·중·일 세 나라는 각기 다른 배경에서 중소기업들이 체질을 강화할 수 있도록 사회책임경영(CSR)을 독려하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은 산업화 과정에서 성숙 단계에 이른 업계의 쇄신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 중소기업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글로벌 기업이 요구하는 책임있는 공급망의 요건을 갖추는 게 급선무다. 한국 중소기업은 일본과 중국 중소기업의 특징이 섞여 있다.
이런 특성이 자연스레 세 나라 중소기업 사회책임경영의 차이점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참여하는 연구자와 지방정부가 중소기업 CSR 인증제를 만들어 위기를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중국은 정부가 업종별 협회 등을 독려해 자체 CSR 지표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범 적용하고 교육을 통해 확산하도록 이끌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국제기구나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이 중소기업 CSR을 돕고 있다. 예컨대 국제노동기구(ILO) 중국·몽골 사무소는 경쟁력과 책임을 갖춘 중소기업이 되도록 교육하고 컨설팅하는 스코어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소기업은 사회책임경영을 하면 비용, 폐기물, 원자재 사용 등을 줄이는 등 기업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중소기업 가운데 글로벌 기업 협력업체의 경우에는 사회책임경영을 적극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 협력업체들은 그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일본, 중국과 달리 한국은 입법기관과 행정기관이 2007년부터 중소기업 사회책임경영의 필요성을 인식해 포럼 등을 꾸준히 열어 2012년 법적 기반 마련의 성과를 일궜다. 올해 4월에는 시행령에 따라 사회책임경영 중소기업 육성 기본계획을 실행할 조직으로 사회적책임경영 중소기업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제도적 틀과 실행조직 마련에도 여전히 중소기업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아 앞으로 더 적극적인 확산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지방정부와 기업 협력생태계 중요
한·중·일 중소기업 사회책임경영에서 다 같이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지방정부다. 세 나라 모두 중소기업들은 대체로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이 지역의 중요한 자원으로 자리매김할 때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고, 나아가 국가경제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지방정부와 지역의 중소기업 관련 기관들이 협력해 건강한 중소기업 생태계를 만든 사례가 적잖이 나오고 있다.
한·중·일 중소기업은 이제 막 사회책임경영에 관심을 갖고 첫걸음을 뗐다. 당연히 여러 차례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야 한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보면 중소기업 스스로 지속가능한 길 위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 대기업, 시민사회는 그 길에 함께해야 한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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