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26 16:08
수정 : 2014.06.29 16:24
[협동조합 생활정치]
아이쿱생협 방식의 참여
‘정치를 협동조합으로 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협동조합이 정치를 한다’고 해야 할까? 정치를 두고 요즘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안에서 논의가 한창이다. 전자는 정치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협동조합이 정치의 주체로 나서자는 말일 게다. 우선 후자는 성공 여부를 떠나 실천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사례로는 일본의 ‘대리인 운동’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그럼, 전자인 ‘협동조합 방식의 정치’는 어떨까? 쉽지 않다. 물론 사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생활정치라고 뭉뚱그려지는 것들이 유사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활정치 사례라고 하는 걸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발원지가 자못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생활정치라는 건, 큰 담론을 뚝딱 해치우기보다는, 소소한 얘기를 차분히 풀어내는 방식일 것이다. 소소한 얘기라는 건 우리 집이나 옆집이나 너나없이 하는 얘기일 것이고, 차분히 풀어낸다는 것은 좀 더디더라도 상대를 설득해서 결국에는 이해를 얻는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소위 생활정치를 표방하던 기존의 정치세력들이 그런 소소한 얘깃거리에 얼마나 귀 기울였나 짚어보면, 그리 후한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듯싶다. 그나마도 끈질기게 상대를 설득해서 이해까지 얻어낸 것은 더욱 적지 싶다.
얼마 전 끝난 6·4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진보정당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제 진보정당은 그야말로 쇠퇴를 넘어 소멸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사기에 충분한 결과다. ‘왜?’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견해를 내고 있다. 그중 하나로 공감 능력의 부족을 꼽고 있다. 수요자 입장에서 의제를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 입장에서 의제를 제공하는 방식, 보수정당과 그다지 차별되지 않는 방식으로 정치와 운동을 병행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생활정치의 맹아를 터뜨리려는 아이쿱활동연합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지난해 아이쿱활동연합회는 사회공공성운동본부를 공식출범시키면서 사회적 의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국의 모든 조합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철도·의료 민영화 반대운동, 송전탑 반대운동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은 다소 큰 얘기들이다. 올 하반기 아이쿱활동연합회에서는 이런 거대담론 외에 각 조합이 필요로 하는, 각 조합원이 접하기 쉬운 얘깃거리를 찾을 계획이다. 찾는 방식도 조합원에게 직접 묻고 듣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수요자를 중심에 놓는 정치를 하겠다는 거다.
이른바 ‘윤소맘(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조합원을 지칭)의 사회안전망을 만들기 위한 한 줄 제안’이 그것이다. 환경·교육·안전·문화·복지·고용·의료 등에 대해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이쿱활동연합회는 조합원의 제안에 따라 일정액의 활동기금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가령 한명의 제안이 1000원의 기금을 만들고, 1만명의 제안은 1000만원의 기금이 되어, 결국에는 제안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아낌없이 지원할 계획이다. 또 각 지역에 맞는 의제를 선택해 사업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1만개의 의제가 만들어지고, 다시 1만명의 실천이 만들어지는 것. 이것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아이쿱의 방식이고, 협동조합의 정치가 아닐까.
전 조합별 ‘정치수다모임’도 예정되어 있다. 이 모임을 통해 우리 조합원들이 정치를 참여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해야 할 얘기도 만만치 않다. 광주에서의 ‘햇빛발전에너지’ 얘기도, 김해에서의 ‘학교 앞 어린이 안전 사각지대’ 얘기도 빼놓을 수 없고, 울주의 ‘마을도서관 운동’ 얘기도, 진주의 ‘의정감시활동’ 얘기도 잔뜩 기대가 된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저마다의 날개를 달고 힘차게 비상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협동조합이 정치하기를 시작했다. 다만, 협동조합은 정치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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