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 리뷰] 헤리 비즈
HERI가 만난 사람 / 벵트 요한손 스웨덴 CSR 대사
벵트 요한손은 외교관이다. 국내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을 돌아다니며 스웨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게 일이다. 스웨덴은 기업들의 해외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 세계에서 처음으로 ‘CSR 대사’직을 만들었다. 이런 덕분일까? 스웨덴의 글로벌 기업들은 모범적인 공급망(협력·거래업체) 관리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기업의 최대 이해관계자인 노동자와 시민사회, 그리고 언론이 CSR을 지탱하는 축을 이룬다”며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날’ 행사가 열린 6월3일 오후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벵트 요한손 대사를 만났다.
―CSR 대사라는 직함이 생소하다. 무슨 일을 하는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여러 정부 부처가 연관되어 있는 분야다. 사회부·노동부·환경부 쪽 등이 밀접한데, 스웨덴에서는 이 부처들 간의 업무를 조율하는 주무 부처가 외교부다. 대사라는 직급을 부여한 건 그만큼 CSR을 중시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반테러·인권 등 6개 특정 분야에 대사직을 두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CSR이다. 우리는 대사직을 2002년에 신설했는데 이후에 프랑스와 노르웨이도 CSR 대사직을 만들었다. 스웨덴 기업 매출의 90% 이상이 국외에서 발생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해외에서 기업 활동과 관련한 문제가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국제통상을 담당하는 외교부가 맡는 것이다.”
총리한테 “아는 것 말하라” 밀어붙여
―기업의 CSR에 정부와 노동자, 지역사회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관계하고 소통하는가?
“1900년대 초만 해도 기업의 유일한 이해관계자는 종업원이었고, 노사 관계가 전부였다. 노사는 1930년대까지 파괴적인 대결과 파업을 반복하다 대타협을 통해 협상 관계로 발전했다. 두번째로 부상한 이해관계자는 비정부기구(NGO)인데, 특히 1970년대에 많은 성과가 있었다. 환경 영역에서는 그린피스와 세계자연보호기금(WWF), 인권에서는 앰네스티인터내셔널(국제사면위원회) 등에서 주요 기업의 인권에 대해 경고하기 시작했다. 세번째 이해관계자는 바로 언론이다. 1990년대 이후 신문·라디오·티브이 등 전통매체 외에 새로운 저널리즘이 등장했다. 그 뒤로 보도자료에 대해 예의 바른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해당 기업의 문제를 주도면밀하게 파고드는 저널리즘이 시작되었다. 나라마다 저널리즘 전통은 다르겠지만 스웨덴의 경우 총리라 할지라도 ‘당신이 아는 것을 말해봐’ 하는 식으로 밀어붙인다. 이해관계자로서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정부의 민간기업에 대한 개입은 대부분 입법 활동을 통해 이뤄진다. 정부의 직접적인 권한은 기업으로서 역할을 할 때다. 국영기업 운영자로서, 병원·도로를 지을 때 공공조달처로서 기업들한테 CSR을 독려하는 수단을 갖게 된다. 수출 채권을 발행하거나 개발 지원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문제 해결 못하면 기업가치도 떨어져
―주주와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이해관계자의 요구가 불편할 수 있는데?
“주식가치는 장기적인 기업가치에서 나온다. 만약 해당 기업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문제, 예컨대 환경·인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궁극적으로 기업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기업이 충족해야 한다는 점에 주주들도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스웨덴의 대기업은 대부분 상장기업이다. 연기금·보험 같은 다수 기관투자자들이 있다.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언론이 입장 표명을 요청하고, 이들은 ‘매도하겠다’ 또는 ‘경영진과 면담을 요청하겠다’는 식의 입장을 밝힌다.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다수의 기관투자자들이 이렇게 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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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 사바르에서 의류공장 등이 입주해 있는 8층짜리 건물이 무너졌다. 사진은 현장에서 구조대원이 부상자를 구해 안고 나오는 모습. 사바르/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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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양성균형과 경영진 임금이 현안
―최근 기업과 이해관계자 사이의 주된 이슈는 뭔가?
“이사회의 양성 균형과 경영진의 임금 인상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이슈가 대두되고 있다. 여성 이사 비율을 최소 40%로 늘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 경영진의 임금 인상 폭에 상한선을 둬야 하느냐는 요구다. 이런 요구에 기업들이 관행을 바꾸지 않는다면 국가가 입법을 통해 개입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여러 국가에서 나오고 있다. 유럽의회도 그렇다.”
―스웨덴의 글로벌 기업들은 CSR 우수 사례로 많이 소개되고 있다. 정부의 평가는 어떤가?
“가구업체인 이케아와 의류업체인 에이치앤엠(H&M)이 대표적인데, 둘 다 저임금 국가에서 생산해 제품 가격을 낮추는 유사한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의류를 생산하고 베트남에서 가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복잡성을 해결해야 한다. 해당 국가에서 문제를 발생시키면 성공할 수 없는 사업들이다. 뒤집어 보면, 저임금 국가에서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사업 구조가, 해당 국가와 지역의 상황을 이해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산업적 특성도 있다. 의류와 가구는 고객층이 젊고 정보욕이 강하다. 이 옷이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건지, 이 가구의 원목을 어디에서 채취한 건지 확인한다. 배나 철을 만드는 업체들이 고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겠는가? 두 기업의 경우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고생을 해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아동노동 빈번한 빈곤국 영업 주의해야
―이들 기업은 국외에서 아동 노동과 화재 등의 문제에 연루된 적이 있다.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나?
“방글라데시에서 빌딩 화재와 붕괴 사고가 있었다. 정부는 사고 즉시 방글라데시에서 영업중인 업체들을 소집해 안전 문제를 점검했다. 화재와 건물 안전에 대한 기업들의 사전 확인이 미흡한 점이 확인돼 안전 의무 목록 안에 포함시켰다. 사업장 폐쇄나 수입 금지 등 강력한 규제를 하진 않았다. 아동 노동의 해결은 화재나 건물 안전에 비해 더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많은 국가에 해당되는 문제다. 기업들은 특히 아동 노동이 빈번할 수 있는 빈국에서 영업을 할 경우 특히 주의해야 한다. 지금도 아동 노동이 이뤄지는 산업들이 있다. 카카오나 목화 농장 등이 그렇다. 얼마 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이들이 재배한 목화가, 파키스탄에선 아이들이 수집한 폐지가 문제가 됐다. 파키스탄 폐지는 스웨덴과 핀란드 합작기업의 공급망에서 이뤄졌다. 우즈베키스탄 면화는 한국 업체가 주요 구입처로 드러나기도 했다. 파키스탄 폐지와 연관된 스웨덴 기업은 한 방송사가 문제를 삼아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취재·보도해 업체의 담당 간부가 사퇴했다. 그런 산업에 진출해 있다면 자사의 사업장만을 감독하는 것으론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납품업체뿐 아니라 납품업체와 거래하는 하도급업체까지 신경을 써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지역사회와의 문제도 중요하다. 중국의 지방정부는 해외 투자를 선호한다. 해외 기업이 사업장을 열고자 하면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면서까지 땅을 준비해 넘겨준다. 나중에 주민들이 ‘그건 내 땅’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등 갈등 요인이 된다. 지방정부에 의한 압류와 불법적 전달이 중국에서는 너무나 빈번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충분한 주의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라도 큰 피해 야기 가능
―한국의 경우 중소기업 CSR은 거의 불모지에 가깝다. 스웨덴의 상황은 어떤가?
“스웨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기업은 직원 수가 5~10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CSR에 할애할 자원과 여력이 없다. 정부가 어떤 가이드라인을 내놓아도 그것을 정독할 시간조차 없다. 그래서 정부는 CSR 가이드라인을 간단하고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CSR 요건 자체를 완화할 수는 없지만 이를 충족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최근 사회적 가치와 기업의 수익가치를 일치시킨 사업모델(CSV)이 논의되고 있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되는 개념이다. 현실적인 제약이 많고 아직까지는 이론에 불과하다. 현재 스웨덴에서는 ‘지속가능성’을 선호하는 기업과 기업의 책임(CR)을 강조하는 두 진영의 견해로 나뉘어 있다.”
글 김회승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양은영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honesty@hani.co.kr
사진 신재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인턴연구원
인터뷰 취재 후기
“한국의 부패문제는 어떤가요?”
“당신이 질문하지 않은 중요한 이슈가 있습니다. 묻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인터뷰를 막 마무리하려는데 그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부패 문제였다. “부패는 한국에서는 큰 문제가 아닙니까? 부패가 있다면 모든 게 엉망이 됩니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부패가 심하면 소용이 없다는 입장인데, 한국에서는 부패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고 보는 것인가요?” 당황스러웠다. 사실 그의 발언 취지는 개도국과 빈국의 문제였다. 부패 정도가 심한 나라에서 한국 기업들이 뇌물을 통해 편법으로 인허가를 주고받는 부패 스캔들에 대한 우려다. 세월호 이야기를 했다. 단지 기업만의, 빈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구조적인 부패 고리가 새삼 드러나고 있다고.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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