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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30 10:39 수정 : 2014.09.30 10:39

아이쿱씨앗재단은 유기농 설탕을 생산하는 필리핀 마스코바도 지역 생산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현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아이쿱씨앗재단 제공

협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실체는

지난 2012년 7월,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서울광장 한켠에 대형 스크린이 내걸렸다.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열린 ‘협동조합 난장 한마당’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축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반 총장은 2분여간 짧은 연설을 통해 한국의 협동조합에 두가지를 당부했다. 하나는 조합원 참여 속에 협동조합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경제 활동에 전념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책임에 협동조합이 앞장서 달라는 내용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만든 생채기를 협동조합이 가진 희생과 헌신의 사회적 책임 정신으로 보듬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같은 해 유럽 재정위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때, 1억5천만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유럽협동조합연합’(Cooperatives Europe)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홍보 자료를 내놨다. 20쪽짜리 이 자료는 첫머리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서 ‘C’를 협동조합(Co-operative)으로 표현했다.

경제적 이익 도취되면 어김없이 위기

협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이슈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1980~90년대 이미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1980년대 초까지 성공 가도를 달렸던 ‘코퍼레이티브 유케이’(Cooperative UK)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시장에서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TESCO)와 경쟁 상황에 직면하자 자본 경쟁에 몰두했다. 그 결과 자국 내 시장점유율이 5%까지 곤두박질치는 위기에 직면했다. 노동자 협동조합의 대명사로 통하는 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 역시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직장 내 조합원 비율이 40% 아래로 떨어지는 위기를 겪었다. 장승권 성공회대 대학원 교수(협동조합경영학과)는 “협동조합이 경제적 이익에 도취돼 사회적 책임을 포함한 협동조합의 본질을 외면했을 땐 어김없이 위기 상황에 직면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쿱씨앗재단은 지역 보건의료사회적협동조합과 연계해 건강보험에서 소외된 이주노동자의 진료를 지원하는 협약을 맺었다. 아이쿱씨앗재단 제공
유럽협동조합연합이 꼽는 네가지 원칙

그렇다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시장경제의 대안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협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일까? 유럽협동조합연합은 크게 네가지를 꼽는다. 첫째, 지역 내 고용 창출과 파트너십을 위해 노력하는 ‘지역 경제’(Local Economy)다. 둘째, 조합원 참여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민주적 운영’(Democratic control), 셋째는 협동조합 간 협력과 연대를 강화해 조합원과 지역사회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사회적 공익성’(Social utility)이다. 마지막은 친환경 생산, 공정무역 등을 통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이런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유럽협동조합연합은 친환경 농업, 유기농법 촉진, 신재생에너지의 생산과 확산, 협동조합 이사회 내 여성 지위 강화 등 모두 17가지 세부 계획을 제안하고 있다.

국내선 아이쿱씨앗재단 사례 꼽을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가 설립한 아이쿱씨앗재단(이하 재단)의 활동은 국내 협동조합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재단은 2011년 아이쿱생협이 사회적 책임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조합원 모금을 기반으로 설립한 공익 법인이다. 재단이 지향하는 사회적 책임은 유럽협동조합연합이 내세운 협동조합의 사회적 책임과 매우 흡사하다.

재단은 2012년 필리핀의 마스코바도 지역에 약 2억원을 투자해 유기농 설탕 공장을 설립했다. 60명이 넘는 현지 주민을 고용하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것은 ‘지역 경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 활동의 일환이다. 민주적 운영 방식은 재단의 자금 조달 방식과 운영 원리를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재단은 일부 기업의 공익법인과 달리 조합원 기부를 통해 마련한 ‘보통 재산’을 당해 연도 사업비로 대부분 소진하며, 그 결과는 매년 연차보고서를 통해 기부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조합원의 필요와 협동조합 간 연대를 강조하는 사회적
공익성 영역은 재단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다.

특히 의료서비스 등 공익서비스 강화에 재단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소외 지역과 계층에 대한 의료서비스 지원이 대표적인 예다. 재단은 지난 7월 인구 2만7000여명의 전남 구례에 산부인과 설립을 위해 2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보건소 안에 산부인과를 개설해 임신부와 산모를 돌볼 수 있는 의사와 간호사, 의료 장비를 갖출 계획이다.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있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이 사업은, 지역 보건의료사회적협동조합과 손을 맞잡고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약 1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역의 고령자, 저소득자, 이주노동자들이 보건의료사회적협동조합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재단이 공을 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회책임활동은 공정무역을 통한 지역 커뮤니티 개발이다. 재단의 모법인인 아이쿱생협은 국내 생산이 불가능한 원재료는 모두 공정무역을 통해 수입하는 내부 원칙을 세우고 있다. 지속적으로 공정무역 생산지를 발굴하고 개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정무역 사업에서 재단의 역할은 지속가능한 관계 수립에 필요한 지원과 활동이다. 생산지와 아이쿱생협이 단순히 원재료를 거래하는 생산자와 유통업자 관계에서 탈피해, 생산지 커뮤니티를 활성화시켜 지속가능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 재단의 역점 사업 가운데 하나는 필리핀 마스코바도 지역에 생산시설뿐만 아니라 교육시설과 게스트하우스 등을 아우르는 공정무역센터(AFTC)를 건립하는 것이다. 신복수 아이쿱씨앗재단 이사장은 “기존 사업과 더불어 사회적 경제 인프라 구축에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사회적 경제 현장의 요구가 높은 회계 프로그램의 개발과 생태계 발전을 위한 연구 사업 등 협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jkse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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