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과 생활정치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감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무력감과 수치심이 밀려올 때가 있다. 쓰러져가는 세월호 안에서 마지막까지 애타게 불렀을 ‘엄마’라는 아이들의 절규에 아무런 답도 해주지 못한 무력한 엄마의 모습에 자책했다. 하지만 더욱 큰 절망은 이러한 사회문제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철저하게 선을 긋는 정치 풍토다. 특히 지난 광주 광산을 보궐선거 투표율 22.3%는 단순히 분노를 넘어 수치심까지 일게 했다. 일반 시민들에게 과연 정치란 무엇일까?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선거 정도에서 인식 수준은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것마저도 나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에 초대받은 한 사람의 ‘외부인’ 정도가 아닐까 싶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옷을 입고, 심지어 연애를 하는 것까지도 정치적 행위이자 활동이라고 여기는 내 입장에선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더군다나 시민단체나 생협에서조차도 정치적 행동이나 발언을 금기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협동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협동조합은 이미 그 자체로 정치성을 띤 조직이다. 정관에 기재한 명확한 설립 목적에 따라 활동을 허가해 준 정부가 돌연 그 기능과 존재 이유를 외면하고 통제하려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우리 사회의 정치 행태가 중앙 집권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크다. 1990년대 중반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됐지만 주요 의사결정은 늘 국회와 특정 기득권 세력들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우리 정치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급변하는 시대상은 외면한 채 역주행 중이다.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아이쿱광주권생협은 중앙이 아닌 시민들의 일상생활 안으로 정치를 돌려 달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정치야, 동네에서 놀자’라는 주제로 조합원 대상 생활정치학교를 열었다. 목적은 분명했다. 주민 참여를 통해 지역을 바꾸고 생활을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지방자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부터 예산 감시, 의회 모니터까지 ‘시민의 눈’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에서 진행한 일본 연수 프로그램은 생협 조합원들이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리인을 지방의회에 진출시킨 일본의 생활정치 실현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생협도 정치 참여가 금지돼 있어 이들이 택한 방식은 지역 조합원이 참여하는 시민네트워크를 구성해 대표자를 지방의회로 진출시키는 것이었다. 우리가 찾은 지바현 생협은 1986년 첫 현의원을 당선시켰고, 이후 생협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했다고 한다. 지금은 2명의 현의원과 14명의 시의원이 시민네트워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의원 임기제를 도입하고, 선거 비용과 자원봉사자를 지원하고 있다. 의원 개인이 아닌 시민네트워크 입장에서 의회 역할을 수행하도록 돕고 있다. 이들은 임기가 끝나면 다시 시민네트워크로 돌아와 지역 활동가로 일한다. 일본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조합원들이 느낀 소감은 협동조합의 본질과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이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이고 조합원의 민주적인 참여와 운영을 통해 성장하는 만큼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과 실행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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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선 아이쿱광주협의회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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