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30 11:05
수정 : 2014.09.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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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엠오(GMO)반대 생명운동연대’회원들이 5월24일 서울 종로구 몬산토코리아 본사 앞에서 유전자 조작 종자 생산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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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지속성 파괴하는 유전자조작작물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조작된 유전자를 먹는다. 9월29일부터 10월17일까지 강원도 평창군에서 열리는 ‘7차 바이오안전성의정서 당사국총회(MOP7)’에 맞춰 MOP7한국시민네트워크는 국내 가공식품들의 원료와 유전자조작작물(GMO) 표시 여부를 조사했다. 이 단체는 지엠오 제도 개선을 위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아이쿱(iCOOP)·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한살림·흙살림 등 21개 시민단체가 모여 5월에 출범했다. 조사 결과, 503종 중 472종, 즉 93.8%에서 옥수수 혹은 대두(콩)가 쓰인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지엠오 여부를 표시한 제품은 단 하나, 독일산 시리얼이었다. 이 제품은 원료 설명에 ‘옥수수-유전자재조합 옥수수 포함 가능성 있음’이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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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판매 주요 가공식품의 GMO 표시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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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법률에 따르면 △유전자변형 성분이 검출되지 않거나 △재배나 유통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섞이는 비의도적 혼입물이 3% 이내로 검출된 제품에는 지엠오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터키는 지엠오 성분이 검출됐다는 이유로 2012년 삼양이 제조한 라면 13톤의 통관을 거부하고 전량 폐기시킨 바 있다. 유럽연합(EU)과 중국은 지엠오 원료를 사용하면 성분 검출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표기하도록 한다. 김은진 원광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지엠오 표시제도는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법은 주원료 혹은 함량이 많은 순서로 5번째 원료까지 지엠오 여부를 표시한다. 6번째 원료에 지엠오가 쓰였다면 표시를 안 해도 된다.
시민단체들은 지엠오 완전표시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완전표시제만으론 소비자가 지엠오 작물을 먹지 않을 권리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올리고당·과당 등 여러 첨가물이 들어가는 가공식품, 청량음료들은 지엠오 성분을 피하기 어렵다.
국내산 작물조차 조작된 유전자로 오염되고 있다. 원료로 수입된 지엠오가 운반, 처리 과정에 떨어져 자란 탓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발표한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자연환경 모니터링 및 사후관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9개 지역 국내산 옥수수·콩·면화·유채 등 4가지 작물에서 조작된 유전자가 발견됐다.
유전자가 오염되지 않은 국내산 작물, 토종 작물은 농업과 농민 지속성의 기반이다. 지엠오 농산물 재배의 승인을 유보했던 브라질 정부가 2003년 지엠오 콩 재배와 시판을 허용하자, 지엠오 종자판매업체인 몬샌토는 첫해에만 1억6000만달러의 특허사용료를 농민들로부터 거둬들였다. 승인 이전에 지엠오가 확산돼 브라질 콩의 30%가 지엠오였던 것이다.
5대 종자기업이 세계시장 57% 차지
원래 농민들은 종자를 받아서 썼다. 다른 농민들과 나눴다. 당연히 무상이었다. 농민이 판매회사들로부터 종자를 사서 쓰게 되면 판매를 위한 종자만 남게 된다. 윤성희 흙살림토종연구소장은 “사서 쓸 수 있는 종자만 남게 되면 돈 없는 사람은 작물을 키울 수 없게 된다”며 “원래 시장에 기대지 않고 발전했던 농업이 종자회사들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몬샌토·듀폰·신젠타 등 5대 종자기업은 이미 세계 종자시장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작물 단순화는 기후, 해충 등 생태계 급변에 대응하는 데 취약하다. 면화의 90%를 지엠오 종자로 키우는 인도에선 토종 면화에는 없던 가루깍지벌레가 나타나 농민들을 괴롭혔다. 또 비싼 종자를 사느라 빚을 진 농민들이 자살을 선택해 사회문제가 됐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69년 교배로 개발된 콩종자 ‘광교’는 수확량을 30%나 끌어올리면서 전국으로 확산됐지만, 괴저 바이러스에 취약해 농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쌀 자급’의 국가 미션으로 개발됐던 통일벼는 1980년 냉해 때 대흉년을 불러 국제 쌀 가격까지 끌어올렸다.
작물의 다양성은 농민뿐 아니라 식량 소비자의 지속성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윤성희 소장은 “종자는 생물자원, 살아 있는 자원이라 사라지면 복원이 안 된다”며 “다양한 종자가 지속되려면 종자 다루는 데에 전문가인 농민이 생업으로 재배할 수 있도록 시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토종이지만 외국산보다 잘 팔리는 한우, 인삼을 사례로 들었다.
토종씨앗으로 키운 작물 상품화 시도
‘의식’하고 먹으면 시장이, 생태계가 달라진다. 국내에선 사회적기업 언니네텃밭과 흙살림이 ‘꾸러미 상품’을 만들어 토종 씨앗으로 키운 작물의 상품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논에서 크는 매화마름의 서식지를 보존하기 위해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쌀을 판다. 언니네텃밭의 윤정원 사무국장은 “농사의 완성은 밥상”이라며 “농사라는 생산의 과정은 밥상에서 누군가 먹어야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농산물을 누군가 짓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 농산물을 먹지 않아 농민이 그걸 지을 수 없게 되면 사라지게 된다”며 “같이 즐겨줘야 지속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세계환경개발위원회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미래 세대가 그들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필요’의 첫번째는 먹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먹을 생물자원을 지키는 일은 우리 밥상에서 시작된다.
이경숙 이로운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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