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12.30 10:41 수정 : 2014.12.30 10:41

협동조합과 생활정치

한은영 울주아이쿱생협 모임지원팀장
지난 10월 반년 가까이 끌어왔던 ‘쌍용하나빌리지 마을도서관 설치의 건’이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동안 왜 이렇게 실랑이를 했나 싶을 정도로 신속한 결정이었다. 우리 동네 ‘마을도서관 만들기’의 시작은 올 3월 울주아이쿱생협에서 구역별 마을모임을 하면서부터였다. 아파트 단지 내 3개 마을모임 참가자들이 모이자 아줌마들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맛집 이야기에서부터 아이들 이야기 등이 오가던 중 ‘우리 아파트엔 왜 도서관 하나 없노?’라는 질문이 던져지자 누구랄 것 없이 봇물처럼 민원을 쏟아냈다.

내가 살고 있는 울산시 울주군 쌍용하나빌리지는 1800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임에도 흔한 마을도서관 하나 없다. 제일 가까운 도서관이 차량으로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다. 올해 울주아이쿱생협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우리 동네 관심갖기’였던 터라 잘됐다 싶었다. ‘그럼 우리가 도서관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했더니 다들 자기 일처럼 같이 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하여 도서관 준비팀(이하 준비팀)을 생협 조합원과 도서관에 관심있는 입주민 등 12명으로 구성했다.

우선 도서관 설치에 필요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 해당 군의원을 만나고 울주군청에도 전화를 했다. 군청에서는 ‘작은도서관 지원조례’와 ‘공동주택 지원조례’ 등을 통해 공간만 있으면 리모델링 비용과 초기 도서 및 집기 구입 비용 등이 지원된다고 했다. 도서관 공간 마련이야 뭐 어렵겠느냐는 생각에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를 만나러 우르르 달려갔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공간이 없다’, ‘운영비는 어디서 갖고 올 거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힘들다는 것이다. 한껏 꿈에 부풀어 달려간 준비팀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7월에 입주자대표회의에 처음으로 마을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해 동대표들에게 설명을 했다. 눈을 감고 듣거나 아예 돌아앉아 버리는 등 반응이 냉담했다. 대부분의 동대표가 연세가 있다 보니 도서관은 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가구수의 절반이 초등학교 이하 자녀를 두었음에도 우리의 요구를 대변해줄 동대표는 없었다. 울분에 찬 준비팀은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우리가 너무 동네에 관심이 없었다, 차기 동대표나 부녀회에 들어가자고 다짐했다. 입주자회의의 반응이 실망스러웠지만 난데없이 젊은 엄마들이 몰려와 도서관을 들이대니 거부감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천천히 가더라도 입주민들에게 다양한 행사를 통해 도서관의 필요성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어린이 벼룩시장, 쌍용 책잔치, 월례 기획강좌 등을 개최하며 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해 계속 알려나갔다. 특히 지난 8월엔 복지관과 함께 마을영화제를 열어 유기농 솜사탕과 팝콘, 공정무역 커피를 나눠주며 도서관의 필요성을 설명한 뒤 주민들의 서명을 받고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입주민은 ‘당연히 도서관은 있어야지’라며 적극 동참해 주었다. 이날 행사엔 주민 400여명이 참여했다. 우리 아파트에 이렇게 많은 주민들, 특히 젊은 엄마들이 참여한 행사는 없었다며 관리소장과 동대표들도 좋아했다.

준비팀에서 진행한 행사들이 성황리에 치러지는 걸 보면서 동대표들의 시선도 서서히 바뀌었다. 수고 많다는 말도 해주고 도서관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도 했다. 마침내 10월 입주자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돼 통과가 되었고, 울주군청에 예산을 요청한 상태다.

‘도서관 하나 없노?’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겁없는 아줌마들의 도서관 만들기. 갈 길은 멀지만 동네에 관심을 갖고 함께 움직일 때 바꿔낼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준비팀 카톡방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줌마 통신원발 아파트 관련 현안이 올라오고 부녀회에 가입했다는 얘기와 응원 댓글이 무수히 달리고 있다. 요즘은 도서관이 생기면 뭘 할까라는 행복한 고민과 함께 ‘마을 카페도 만들어보자’며 상가를 기웃거리고 있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