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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30 10:51 수정 : 2014.12.30 10:51

‘협동조합과 교육’ 콘퍼런스가 진행된 맨체스터 민중역사박물관(People’s History Museum) 전경.

영국에 부는 협동조합학교 바람

영국의 협동조합 운동은 1980~9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과 함께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2008년 ‘협동조합학교’가 처음 탄생해 6년 만인 2014년 말 800여개로 확장되면서 영국의 공교육과 협동조합 운동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점점 확장되고 있는 협동조합학교에 고무된 협동조합인과 교육가들이 지난 9일 영국 맨체스터의 민중역사박물관에 모여 ‘협동조합과 교육’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지난 100여년간 정체되었던 영국 협동조합운동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협동조합학교의 성장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사회혁신 싱크탱크인 영파운데이션의 연구원 애나 데이비스는 영국 협동조합학교 확장 이유를 네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자조·평등·협동을 중심에 두는 협동조합의 가치가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철학과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에 많은 학교들이 쉽게 협동조합학교로 전환할 수 있었고, 협동조합학교가 늘어남에 따라 지역별 클러스터가 형성되면서 클러스터 내 학교간 협동으로 교육의 질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둘째, 협동조합학교는 외부인들의 의도적 캠페인이나 정책적 지원이 아닌 학교 교사들의 자발적 네트워크를 통해 확장됐다. 과장된 결과가 아닌 이웃 협동조합학교 과정과 결과를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실제 확인한 것이 빠른 확장에 큰 기여를 했다.

셋째, 협동조합학교로 전환할 때 겪게 되는 기술적인 어려움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처해준 ‘협동조합 칼리지’의 상담과 도움이 주효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학교 운영과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을 채택하는 문제는 교사들의 의지와 열정만으로는 자리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민영화 대응책으로 시작

마지막으로 영국 공교육 정책의 변화로 학교 모델의 전환이 시급해진 점이다. 1990년대 후반 집권한 노동당은 100% 지방정부가 감독하던 국공립학교를 비영리신탁기관이 감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10년에 집권한 보수당·자민당 연정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국공립학교에 대해 영리 및 종교단체들도 신탁운영의 파트너로 참여해 학교 운영을 감독할 수 있게 했다. 학교 재정은 여전히 정부가 지원하지만 신탁운영을 허용함으로써 외부 파트너의 힘과 자율성이 세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학교들이 공교육의 민영화를 우려하게 되었고, 사교육기관이 아닌 협동조합이나 지역단체를 학교 운영을 함께 할 외부 파트너로 삼은 협동조합학교를 선택했다.

협동조합 칼리지 학장 머빈 윌슨 기조발표.
커리큘럼과 교수법도 협동에 기반

영국의 협동조합학교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한다. 우선 학교의 운영 모델을 신탁 모델로 전환해 기존 지방정부가 100% 감독하던 권한을 신탁 파트너에게 이양한다. 둘째는 학교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교직원, 학생, 학부모, 졸업생, 지역사회 대표, 경찰 등 지역공공기관 대표)가 조합원이 되고, 조합원 그룹의 대표로 구성되는 협동조합위원회가 학교운영위원회의 의사결정에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협동조합 가치가 교육 커리큘럼에 적용되도록 많은 과목의 학습과정이 ‘협동’에 기반해 진행되어야 한다. 헐대학교의 웬디 졸리프 교수는 “협동조합학교로의 전환은 교사들의 교수법 변화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교사들이 ‘협동 기반의 교수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은 협동에 기반한 교육 커리큘럼과 교수법을 만들고 진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교사들 간의 협동을 학교장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콘퍼런스에서는 맨체스터의 월리레인지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다섯명과 영어 교사가 함께 실제 협동에 기반한 수업을 시연한 뒤 수업 진행 이후 생겨난 자신들의 변화를 발표했다.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변화는 리더십과 자신감의 획득이었다. 각각이 수행하는 모둠 활동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이 분명해지고 그것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는 것을 학습하게 된 결과다.

브리스틀의 코텀협동조합 아카데미는 학생들이 조합원으로서 교실 안뿐 아니라 교실 밖에서 학교 운영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를 발표했다. 코텀협동조합 아카데미의 협동조합 포럼은 교사, 학부모, 학생, 졸업생, 지역사회 대표들로 구성된다. 학생 대표의 경우 학년별로 14~16명의 대표가 선출되며, 선출된 대표는 5개 분과(커리큘럼과 수업, 급식, 내부공간, 외부공간, 행동과 관계)에 소속돼 학생들의 의견을 수시로 모은다. 학생 대표를 선출할 수 있는 투표권은 학교협동조합 포럼에 조합원으로 가입한 학생들에게만 주어진다. 코텀의 경우 1450명의 재학생 중 1137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콘퍼런스 비주얼 회의록.
학교평가에 ‘협동의 가치’ 반영돼야

영국에서 많은 국공립학교가 협동조합학교로 전환하게 된 동기는 공교육의 민영화를 막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현재 영국 중앙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학업성취도 중심의 학교평가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오지 않는 이상 협동을 기반으로 하는 협동조합학교는 언제라도 공격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협동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영국 공교육의 주류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지향하는 교육 목표와 철학에 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오는 이유다. 단순히 협동조합학교의 숫자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협동의 가치가 국공립 학교 평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도록 현재 학습성취도 중심의 교육평가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사진 김정원 영국 스프레드아이 공동대표

jungwon@spread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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