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30 10:54
수정 : 2014.12.30 10:54
빈곤층의 겨울나기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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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각장애 노인 집에 난방 텐트를 설치한 모습. 바이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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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살 동원이네(가명·울산시 남구) 집 보일러 기름통은 담벼락에 녹슬어 방치돼 있다. 7년 동안 단 한번도 보일러를 가동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동원이 어머니는 치매에 걸린 남편이 요양병원에 입원한 뒤로 혼자서 동원이와 일곱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 어머니는 겨울이 오면 전기장판을 켠다. 하지만 한겨울이면 한파가 미닫이문을 뚫고 들이쳐 집안은 얼음장이 된다.
동원이 어머니는 청소 일을 하는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다. 전기요금 감면 혜택은 받지만 난방용 기름값은 지원받지 못한다. 다세대·다가구 주택촌인 동원이네 동네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대부분 기름보일러를 쓴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는 온라인 모금 사이트 ‘드림풀’을 통해 동원이네 같은 빈곤 가정과 아동복지시설의 난방비를 지난달 26일부터 모금하고 있다. 지난 12일까지 56만3000원이 모였다. 목표인 990만원에는 아직 크게 못 미친다.
비수급 빈곤가구 3곳 중 1곳 난방 못해
진짜 돈 없는 집 가난은 몸이 느낀다고 한다. 자신이 가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는 다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저생계비 이하 400가구를 조사해 지난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4가구 중 1가구(25.3%)는 ‘추운 겨울에 난방을 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난방을 못한 경험은 수급자가 아닌 ‘비수급 빈곤가구’가 더 많다. 3가구 중 1가구(36.8%) 이상이다.
정부는 내년 12월부터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취약계층의 겨울나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에너지 바우처는 가스와 등유, 연탄, 전기, 열 등 5대 에너지원을 살 수 있는 쿠폰이다. 중위 소득 40% 이하 등 일정 조건을 갖춘 노인과 아동, 장애인 등 98만가구가 매년 겨울철 석달 동안 가구당 10만원 안팎의 바우처를 지원받는다. 월평균 3만원 남짓한 금액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월 3만원’ 지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시민연대가 지난해 12월 전국 8개 도시의 빈곤층 148가구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기요금은 가구당 평균 2만1000원, 난방요금은 평균 8만1000원이 든다. 합치면 10만2000원이다. 조사 가구 중 80%가 월평균 소득이 60만원 이하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소득의 17%를 난방비로 쓰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집의 난방비 부담이 큰 것은 단지 소득이 낮기 때문만은 아니다. 동원이네처럼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은 어쩔 수 없이 기름 등 비싼 연료를 써야 하고 노후한 아파트나 주택은 단열 또한 잘 안되기 때문이다. 에너지시민연대는 조사보고서에서 빈곤가구 62.5%가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에서 거주하고, 39.2%는 기름보일러를 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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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내년 봄부터 에너지복지사 양성
해법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2년 동안 에너지설계사 245명을 양성했다. ‘서울에너지설계사’ 중 117명은 서울에너지닥터, 에너지복지 사회적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을 설립해 에너지 빈곤층 실태조사와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서울시는 에너지 빈곤가구 지원을 위해 올해 처음 에너지복지사 12명을 시범 양성했다. 내년 봄부터 본격 양성할 예정이다. 정희정 서울시 에너지시민협력반장은 “서울시에는 소득 대비 에너지 비용 부담이 10% 이상인 에너지 빈곤가구가 전체 가구의 10.3%”라며 “이런 집에 에너지복지사가 찾아가 단열 에어캡이나 단열 시트, 문풍지, 윈드커버 등을 설치해 외풍을 차단하는 지원만 해줘도 큰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빈곤층 에너지 효율 개선에 정부 나서야
다른 지역에서도 여러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빈곤가구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지원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다솜건축인테리어, 바이맘을 비롯해 자활기업 두레건축, 따뜻한집만들기, 모두건축, 푸른내일건설, 포그니건축이 그러한 기업들이다. 강원주거복지조합의 이상규 사무국장은 “공사하러 가면 대부분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발이 시리다. 전기요금 아끼느라 난방을 하지 않는 집들이라 단열 공사로 난방비를 더 줄여주긴 어렵지만 좀 더 따뜻하게 지내게 해줄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열 공사만 해줘도 집안 온도가 섭씨 3도 정도는 올라가는 효과가 난다”고 설명했다. 이 조합은 올해 한국에너지재단 지원을 받아 저소득 가구 150곳에 에너지 효율 개선 공사를 했다.
부산시 예비 사회적기업 바이맘의 김민욱 대표는 “빈곤층엔 연료 등 에너지 바우처 지급과 함께 난방 텐트나 단열 공사 등 반영구적인 설비를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정부가 빈곤층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투자로 보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맘은 기업 사회공헌과 연계해 지난 2년간 3200여 빈곤가구에 난방 텐트를 지원했다. 이경숙 이로운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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