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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30 11:12 수정 : 2014.12.30 11:12

확산되는 ‘크리에이티브 코먼스 라이선스’

지난 5월 열린 서울디지털포럼에는 유독 눈에 띄는 연사가 있었다. 올해 18살 소년 잭 안드라카였다. 그는 15살이던 2011년, 췌장암 진단에 필요한 단백질 검출 종이 센서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98%에 이르는 높은 정확도를 자랑할 뿐 아니라 검사 비용을 무려 2만6000분의 1로 줄이는 혁신을 이뤄냈다. 잭이 단백질 검출 종이 센서 개발에 매달린 이유는 췌장암 선고를 받은 지 6개월 만에 숨진 삼촌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왜 췌장암은 조기 진단을 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 구글 검색을 통해 여러 논문을 읽으면서 췌장암 조기 진단 방법을 스스로 고안해 냈다. 존스홉킨스대 연구실에서 여러 박사들과 함께 7개월 동안 수많은 실험을 거쳐 진단 센서를 만들었다. 잭이 센서를 개발하면서 가장 큰 난관으로 꼽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개발에 드는 막대한 자금이나 기술이 아니라 “유료 학술논문에 접근하는 것”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인류의 자산인 지식 정보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사회에서 정보에 대한 동등한 접근은 기본권이 돼야 한다”고 일갈했다.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공유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저작권법이다. 현재 90%가 넘는 학술논문이 저작권법에 따라 유료로 묶여 있다. 글이나 사진, 영화나 논문 같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이용하려면 저작자의 허락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이게 과연 합리적인 제도일까?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분에 누구나 손쉽게 사진을 찍고 공유할 수 있게 됐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고 다른 이와 나누는 것도 어렵지 않다. 잭처럼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는 기회와 환경도 갖춰져 있다. 그렇지만 이런 공유 과정을 거치려면 저작권자의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 공유를 통한 혁신의 기회를 저작권법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이런 디지털 시대의 불합리함을 없애기 위해 연구자들은 자신의 논문을 공유할 때 이용 허락 범위를 미리 밝힌다. 그 선언의 방법이 ‘크리에이티브 코먼스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 CCL)다. 시시엘은 한마디로 ‘저작물 사전 이용 허락 표시’다. 몇가지 약속된 기호로 저작물 이용 조건을 표시해둔, 일종의 ‘라이선스 규약’이다. 예컨대, 내가 내건 조건만 지키면 굳이 이용 허락을 받지 않아도 내 저작물을 마음대로 쓰도록 미리 밝혀두는 것이다. 물론, 조건을 내거는 이는 해당 저작물의 저작자다.

강현숙 크리에이티브커먼즈코리아(CCK) 사무국장
시시엘은 여러 저작물에 두루 적용할 수 있다. 논문뿐만 아니라 간단한 글부터 사진, 음악, 동영상 등 내가 원하는 이용 허락 조건만 표시하면 된다. 시시엘은 비영리 국제 조직인 ‘크리에이티브 코먼스’(CC)가 보급한다. 2002년에 시작된 이 운동은 현재 80개 나라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시시엘의 조건은 픽토그램과 같은 이미지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언어가 달라도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플리커, 유튜브, 빌게이츠재단 등 교육, 학술, 예술, 정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시엘을 적용하여 공유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의 발달 덕분에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모르는 사람과 협업을 하는 일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음악을 들을 때 시디를 사지 않고 인터넷 음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에 더 익숙하듯,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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