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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31 17:08 수정 : 2015.03.31 17:08

아름다운가게는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사고 후 현지의 비영리단체 보이스(Voice)와 손잡고 피해자 심리치료와 자활, 일자리 마련을 지원하고 있다. 피해자 직업자활 사회적기업 ‘뷰티풀웍스’ 직원들이 자신이 생산한 제품의 모델로 포즈를 잡았다. 아름다운가게 제공

의류 공정무역이 실현하는 사회적경제

공정무역 라벨
2013년 4월23일, 당시 22살이던 로지나 베굼은 자욱한 먼지 속에서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켜 빠져나오려 했지만 무언가 왼팔을 잡아당겼다. 철근이었다. 사람들이 로지나의 왼팔을 함께 당겼지만 빼지 못했다. 누군가가 칼을 건넸다. 스스로 팔을 끊고 나와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로지나는 일곱살 난 딸을 떠올렸다. 몇 번씩 까무러쳤다 깨길 반복하며 그는 자기 팔을 잘라냈다. 이날 또다른 로지나는 허리가 부러졌다. 당시 24살의 로지나 악터다. 척추와 다리가 부러지고 신장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그는 심리적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그는 그룹 치료를 통해 다른 피해자들과 아픔을 나누면서 말문을 열었다. 한국의 사회적기업 아름다운가게가 지원하는 심리치료 덕분이었다.

아름다운가게의 도움으로 재활중인 두명의 로지나는 2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사고의 피해자들이다. 의류공장이 밀집한 라나플라자 붕괴로 당시 1134명이 죽고 2500여명이 다쳤다. 원래 4층짜리 건물을 9층으로 무리하게 증축해 일어난 사고였다. 1993년부터 의류공장의 착취를 없애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깨끗한 옷’(cleanclothes.org)에 따르면, 이 공장은 세계 유명 브랜드 29곳에 납품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로 왼팔을 잃은 로지나 베굼.

착취 실태 일깨워준 의류공장 붕괴 사고

사고 뒤 방글라데시 최저임금은 월 3000타카(약 4만3000원)에서 월 5300타카(약 7만7000원)로 77%가량 올랐다. 월마트와 갭은 자격 있는 감독관 2명 이상의 점검을 받도록 하는 등 공장 안전점검 지침을 강화했다. 자라와 프라이마크 등 100여개 글로벌 의류 브랜드는 공장 보수 비용을 분담한다는 협약에 서명했고, 에이치앤엠(H&M) 등 20여곳은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금 조성에 참여했다.

방글라데시 노동단체와 국제기구는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국제노동기구(ILO) 방글라데시 코디네이터인 알렉시우스 치참은 아름다운가게와의 인터뷰에서 “2013년 생긴 법 기준에 맞춰 오후 5시까지만 일하면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하는데, 이걸로는 한달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어 야근을 해야 한다”며 “방글라데시의 노동조합들은 최저임금을 월 10만타카(약 145만원)로 올려야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요구한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의 사회 복귀 지원도 부족하다. 왼팔을 잃은 로지나 베굼은 사고보상금 100만타카(약 1450만원)를 받았지만 정부의 인출 제한으로 매달 9000타카까지만 쓸 수 있다. 월세 3500타카와 두 딸의 양육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자신의 재활에는 쓸 돈이 없다. 베굼의 남편은 팔을 잃은 아내를 돌보고 집안일까지 하느라 직장을 그만뒀다. 베굼은 “사고로 인한 고통도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가게 에코파티메아리팀 김태은 디자이너가 방글라데시 다카의 뷰티풀웍스 공장에서 현지 근로자들에게 봉제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 제공

노동자 권리 위해선 생산구조 변화 필요

영국의 소비자단체 ‘윤리적 소비자’(ethical consumer.org)는 “1911년 뉴욕의 의류공장 화재로 50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노동자들은 무자비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저임금을 받고 있었다”며 “100년 동안 상황이 개선되어 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은 노동 착취에 여전히 취약한 상태”라고 밝힌다. 이 단체는 노동자 권리를 침해하는 항목으로 △부적절하고 위험한 작업 환경 △적절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조합 결성과 단체협상, 단체들간 연합의 권리에 대한 부정 등 17가지를 정했다.

노동자 권리 확보엔 법과 제도뿐 아니라 생산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적기업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의 이미영 대표는 “방글라데시뿐 아니라 아시아의 의류 공장들이 대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대규모 납품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와 소비자단체가 요구하는 공정한 노동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며 “작은 제조 기반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을 통한 공정무역은 그 대안 중 하나다. 아름다운가게가 라나플라자 피해자와 가족의 직업교육과 일자리를 위해 설립한 ‘뷰티풀웍스’는 피해자 50여명에게 심리치료 등 재활을 지원하면서 이 가운데 20명은 고용했다. 기본급은 월 7000타카로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다. 알렉시우스 치참은 “뷰티풀웍스처럼 기본급을 올리고 적정 근무시간을 보장하면 노동자들이 건강해지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며 “다른 방글라데시 기업에 좋은 모델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뷰티풀웍스의 직업교육, 차별 없는 직장문화를 높게 평가했다.

“내가 사는 제품은 생산자의 꿈과 희망” 현지 직원들을 교육한 아름다운가게 에코파티메아리팀의 김태은 디자이너는 “소비자들이 친환경 소재 등 환경을 위한 착한 소비를 넘어 누가 어떤 사연으로 만들었는지 생산자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며 “우리가 사는 건 그저 하나의 제품이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에겐 그게 꿈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가게는 뷰티풀웍스 생산품을 4월 중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국내에선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 오르그닷, ‘참 신나는 옷’, 동천모자, 리틀파머스 등 사회적기업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생산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 공정무역 운동 1세대인 이미영 대표는 “국내 윤리적 패션 업체들은 아직 일부 마니아 등 작은 소비시장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했다”며 “시장 욕구와 함께 소비자 인식이 맞물려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등 윤리적 소비자층이 두터운 나라에서도 처음엔 자국 제조업 기반 붕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해외 생산지 노동자들의 권리로 관심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옷에 붙은 딱지(라벨)을 확인하는 아주 작은 습관이 변화의 희망”이라며 “메이드 인 코리아, 더 나아가 공정무역 라벨이 붙은 제품을 사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제안했다.

이경숙 이로운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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