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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킹스크로스 재생사업 공사 현장과 인공연못. 스프레드아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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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영국 사회혁신 현장을 가다 / 킹스크로스 재생사업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킹스크로스역은 교통의 요충지다. 런던시를 관통하는 6개 노선이 교차하는 지하철역이자, 런던과 영국 북동쪽을 연결하는 기차의 시작점이다. 산업혁명시대인 1850년에 건립된 이곳은 영국 북부 광산과 공장지대에서 생산된 공산품을 실어 나르는 증기기관차들의 정류장이었다. 하지만 교통 요충지로서의 오랜 명성과는 달리 역 주변은 장기간 방치되어 왔다. 산업시대 주요 물류 수송 수단이었던 기차와 운하가 대형 트럭과 고속도로에 자리를 내주었고, 역 주변의 물류 하적장과 대형 창고들은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는 버려진 공간이 되었다. 역 주변엔 홍등가가 성행했고, 마약상의 주요 활동무대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킹스크로스를 재생하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교통 요충지에서 버려진 공간으로 그러던 차에, 1996년 영국 정부는 유럽 대륙으로 연결되는 해저 초고속기차 선로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킹스크로스역 바로 옆에 위치한 세인트 팬크러스역이 출발역으로 선정됐다. 영국 정부는 해저 초고속기차 선로 및 역사 건설과 운영을 책임지는 국영기업인 ‘런던&콘티넨털 철도회사’(London and Continental Railway·LCR)에 킹스크로스 주변 지역의 토지와 개발권을 양도했다. 런던&콘티넨털 철도회사가 양도받은 재생 대상지는 킹스크로스역을 시작으로 뒤편 리젠트 운하까지 연결되는 약 1㎞를 포함한 전체 67에이커(약 27만㎡)의 토지와 낙후된 건물들이었다. 최종 선정된 계획서는 단 한 페이지 재생 결정이 내려지자 토지소유권을 갖게 된 런던&콘티넨털 철도회사와 건축허가권 및 관리 감독권을 소유한 관할 구청인 캠던구, 이즐링턴구는 재생 사업에 소요되는 복잡성과 자금 유치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사업기간을 20년으로 결정했다. 2001년 개발사를 공모하자 수많은 사업체가 두툼한 개발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들을 따돌리고 전담사로 선정된 곳은 재생사업의 원칙과 과정을 단 한 페이지에 담아 계획서를 제출한 부동산 전문개발사 아전트(Argent)였다. 아전트가 제출한 계획서엔 “그 어느 누구도 이렇게 장기간 동안 진행될 복잡성이 높은 사업에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계획 대신 모든 이해관계자가 재생사업 계획에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적인 프로세스를 어떻게 진행할지 원칙과 과정을 제시”한다는 짧은 원칙만이 담겨 있었다. 아전트는 사업을 공모한 땅 소유주, 관할 감독구인 캠던구와 이즐링턴구 및 지역 정치인 등 사업 관련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은 해저 초고속 선로의 1차 공사가 완료되는 2007년까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해관계자가 합의하는 사업의 비전과 원칙을 만들고, 그에 따른 사업의 마스터플랜을 함께 계획하기로 합의했다. 비전과 원칙을 만들기 위해 이들이 함께 던진 첫 질문은 “런던이 경쟁력을 갖춘 세계 일류도시로 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동시에, 지역주민들에게 변화의 혜택이 직접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재생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특히 이 사업의 과정과 결과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기 삶과 그 이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답을 할 수 없다면, 사업의 결과가 어떠한 경제적 효과를 만든다 해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합의가 이뤄졌다. 6년간 353회 미팅…3만여명 참여 사업의 중심 방향이 정해지자 구체적인 원칙이 필요해졌다. 원칙의 수립은 어떠한 건물과 공간을 만들고 어떠한 투자를 받을 것인가 같은 기술적인 상세 내용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사업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관계자들(땅 소유주, 개발사, 관할구청, 주민)이 동의하고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위한 지난한 소통과 협상이 시작됐다. 개발사와 관할구는 마스터플랜을 만들어나가는 6년의 기간 동안 언제 어디서라도 재생사업에 대한 우려와 이의를 제기하는 어떤 사람, 단체, 기관 등과도 만날 것임을 주요 미디어를 통해 공고했다. 이후 6년간 진행된 소통 과정에는 353회 이상의 미팅이 열렸고 약 3만여명이 참여하였다. 이 기간 동안 열린 모든 종류의 공청회, 워크숍, 길거리 미팅, 이벤트 등의 내용은 개발사와 관할구가 각자 문서화해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저렴한 임대주택 공급 등 6가지 합의 대부분의 대형 재개발 사업 관련 공청회의 경우 이미 결정된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그 내용을 주민들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킹스크로스 재생사업의 경우 개발사와 관할구는 사업의 비전과 원칙만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데만 6년여를 보냈다. 이들이 제시한 비전과 원칙도 이미 결정된 사안이 아닌 소통과 협상을 통해 최종 결정되어야 할 사안이었다. 특히 관할구가 진행하는 공청회에서 개발사는 자신들의 원칙 준수가 마스터플랜 수립 과정에 주요한 협상 근거로 사용될 것을 약속했고, 많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요청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민을 비롯한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최종 합의된 재생사업의 원칙은 6가지로 요약된다. 저소득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임대주택 공급, 지역주민을 위한 일자리 창출, 런던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충분한 공공 공간 확보, 산업유산 건물의 보존, 지속가능한 환경 보존 및 지역주민을 위한 충분한 여가 및 교육시설의 공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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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현장에서 버려진 폐기물을 모아 만든 커뮤니티 가든(Skip Garden) 모습. 킹스크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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