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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2 16:08 수정 : 2018.04.12 16:15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7년째인데도 법원 등기양식 미비
정부 사회적경제 활성화 차원 협동조합의 가치 강조하지만
취약한 제도적 생태계 때문에 협동조합 활동가들 한숨
주식회사와 경쟁에서 협동조합은 오히려 불이익 보는 경우도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jusuwon@daum.net

지난 4월1일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주관으로 열린 ‘협동조합 이슈포럼 상호학습회’에서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모여 등기소 양식 부재 등 제도적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제공
협동조합기본법이 올해로 시행 7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13000여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었고, 한때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협동조합 설립이 붐을 이루기도 했다. 그런데 신규 설립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이다. 협동조합 일부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협동조합은 사업적으로 설립할 유인이 없다“거나 ”협동조합은 우리 사회와 맞지 않는 제도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사회적경제 활성화가 국가적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사회적경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협동조합에 대한 기대가 이처럼 낮아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협동조합은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과 함께 ‘사회적경제의 4총사’로 불린다.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은 각각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안전행정부의 정책 목표에 초점을 맞춘 조직이다. 반면에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와 법인형태가 다를 뿐 주식회사처럼 영리목적으로 설립할 수도 있다. 따라서 협동조합이라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주식회사와 달리 사회적 가치를 생산해낸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의 공동의 필요가 중심이 돼 공동으로 소유하며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법인형태는 사회적 가치에 더 가까이 다가갈 유인을 내재하고 있다.

자료:사회적기업진흥원

하지만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기업형태는 독특한 비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우리에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격언이 있으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란 속담도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논의하며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은 우리 일상에 익숙하지 않다. 직장에서 강조하는 ‘팀워크’는 구성원들의 민주적 논의와 합의를 추구한다기 보다는 일의 효율성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도 민간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과 타협을 강조하는 시대이지만 실상은 일방통행이 더 많다. 요컨대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이라는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아직 척박하다. 낮은 사회적 인식과 짧은 경험 탓이다.

취약한 ‘사회적 자본’ 탓에 협동조합 설립,운영에 들어가는 비용 많아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고 경험을 축적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자본’이 튼실해야 한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 사이의 신뢰관계를 통해 생성, 축적되는 유무형의 자원이다. 사회적 자본을 통해 개인은 각자가 속한 집단의 관계망을 통해 다른 구성원들이 가진 이점을 함께 누리면서 더 넓고, 높은 공동체로 나갈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이 쌓이면 협동조합 설립이나 운영 비용은 줄어든다. 반대로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면 협동조합의 비용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을 하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는 사회적 비용 가운데 제도적 요인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주식회사 중심의 경제활동과 기업구조에서 협동조합은 제도의 미비에 따른 여러가지 차별적 비용을 감수하고 있다. 쉬운 사례로 협동조합의 등기양식을 들 수 있다.

대한민국 법원 인터넷 등기소의 파일양식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협동조합

대법원의 인터넷등기소 자료센터에는 다양한 등기신청서 양식이 올려져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단 2개 양식만 있다. 협동조합 및 협동조합연합회 설립 등기신청서이다. ‘협동조합은 설립시에만 등기신청을 하나보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협동조합기본법 제16조, 61조, 64조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출자 총좌수와 납입한 출자금의 총액의 변경, 임원의 변경, 이사장의 주소 변경, 정관의 목적 변경, 주된 사무소 변경 등이 발생했을 때마다 변경등기를 해야한다. 이 중 출자금 총액은 사실상 매년 변경될 수밖에 없으며 임원의 변경도 2년에 한번 정도는 발생한다. 그렇기에 관련한 협동조합 등기변경 양식이 법원 등기소에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물론 현재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등에서 주식회사의 여러 양식을 참조해서 만든 양식이 있다.그리고 이 양식을 가져갔을 때 등기소에서 받아주기도 한다.그렇더라도 법원 인터넷등기소 양식에 올라와있지 않다는 것은 씁쓸한 느낌을 남긴다. 법원과 등기소조차 아직도 협동조합을 주식회사와 같은 법인격으로 대접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협동조합 설립 또는 변경을 위해 등기소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번쯤 등기소 직원들과 논쟁을 벌였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한참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협동조합을 하려고 하지’란 생각이 절로 든다. 필요한 양식을 빠짐없이 만들어 등기소 직원들에게 협동조합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나 교육을 했더라면 치루지 않을 사회적 비용이다.

작가 은유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에서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협동조합을 하려는 사람이야말로 가진 것도 적지만, 무지한 질문에 계속 답해야 하는 이 사회의 약자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7년차에 협동조합이 처한 씁쓸한 현실이다.

다행히도 최근 기획재정부는 대법원과 협의를 시도해보고 있다.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의 양식을 기재부 협동조합 포털에도 올리고, 이를 정식 양식으로 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등기소 직원에게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과 안내를 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 문제가 풀리면 세무서, 은행 등에서도 협동조합 양식 마련과 교육이 이뤄질 수 있길 희망해본다.

조합원 전원이 여성인 협동조합은 왜 ‘여성기업’이 될 수 없을까?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지 못한 또 다른 사례로, 협동조합은 ‘여성기업’이 될 수 없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에 따른 여성기업은 두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여성이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기업으로, 대표권이 있는 임원으로 등기되어 있는 여성이 최대출자자인 상법상의 회사(회사 대표로 등기되어 있는 여성이 2명 이상인 경우에는 그 합한 출자지분이 최대인 회사 포함)’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이 소득세법 또는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사업자등록을 한 개인사업자’이다. 이런 여성기업은 지원법률에 따른 여러가지 지원과 혜택을 누릴 수 있다.

1999년 공포된 여성기업지원법은 “여성기업의 활동과 여성의 창업을 지원함으로써 경제영역에 있어 남녀의 실질적 평등을 도모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하여 국민경제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한다’는 게 입법 취지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여성기업육성 기본계획 수립 및 추진, 종합적인 지원과 사업기회의 균등보장, 여성기업에 대한 차별적 관행이나 제도의 개선, 여성기업활동촉진위원회 설치 및 운영 등에 나서고 있다. 또 정부와 공공기관은 여성기업 생산제품의 구매를 촉진하고, 여성기업에 대한 정책금융을 제공하며, 여성경제단체의 설립 및 운영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모든 조합원이 여성이고, 당연하게도 모든 임원이 여성이더라도 여성기업에 대한 일체의 지원혜택을 받을 수 없다. 현행 법령상 여성기업은 사실상 주식회사와 개인사업자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여성기업이 될 수 없느냐는 질문을 지난해 관계부처에 신문고로 넣었더니 담당자에게 돌아온 답은 이랬다. “조합원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의 경우 조합원이 출자좌수와 관계없이 1개의 의결권만을 가지므로 여성이 최대출자자의 지위에 있다 하여도 조합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경영할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가입 탈퇴가 자유로움에 따라 협동조합을 여성기업으로 편입할 경우 여성기업 조건 유지를 위한 확인의 추가 문제가 발생한다”는 답변도 덧붙였다. 주식회사는 국세청이나 금융감독원에 신고하는 주식 변동 내역을 주기적으로 확인해 여성기업의 자격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협동조합은 이런 확인시스템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협동조합을 위한 제도적 생태계가 얼마나 엉성한지를 보여주는 한 일화이다. 여성기업지원법 제2조에서는 ‘여성기업이란 여성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협동조합 역시 여성이 소유하고 경영할 수 있는 만큼 법률상으로는 여성기업의 지위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시행령 제2조에서는 상위법의 범위보다 협소하게 ‘상법상의 회사’로 제한을 했다. 시행령이 법률의 취지를 무색케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 셈이다.

협동조합이 뿌리내리면...거창한 구호보다 기본적인 제도와 관행을 갖추는 게 필요

협동조합이 1인1표의 원리로 운영된다고 해서 여성이 조합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경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조합원이 남성조합원 보다 수적으로 우세할 경우 조합 대표는 주식회사에서 최대출자자만큼의 영향력을 충분히 미칠 수 있다. 더욱이 조합원 전원이 여성인 경우에는 최대출자자가 여성인 주식회사보다 여성들의 지배력이 더 강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기업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여성 조합원의 유지 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어서 여성기업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더욱 황당한 논리이다. 정부가 제도적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서 생긴 문제를 협동조합에 떠넘기는, 일종의 직무유기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7년째인데도 협동조합이 자랄 수 있는 제도적 생태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심화된 수준의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제도나 관행조차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협동조합을 하더라도 주식회사로 등록해 활동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해야 할 판이다.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가치나 유용성을 두고 선악과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경제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협동조합이든 주식회사든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협동조합을 위한 특혜를 주문하는 게 아니다. 관공서에서 더이상 무지한 질문을 받지 않고, 주식회사라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혜택조차 받을 수 없는 일이 없도록 하는 정부 각부처의 세심한 관심과 노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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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Weconomy] 주수원의 협동조합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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