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3.05 08:57
수정 : 2010.03.05 09:49
90년대 디지털 키드였던 20~30대
취업 좌절 등 상황서 가상현실 몰입
가정파괴·살인 등 극단 행동 잇따라
2001년 3월 광주에서 한 중학생이 초등학생 남동생을 흉기로 숨지게 했다. 잔혹한 컴퓨터게임에 빠져, 현실과 가상을 혼동해 벌어졌던 일이다.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는 중학생 박아무개양이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기 위해 소매치기를 했고, 윤아무개양은 피시방 이용료 5만원을 내지 못해 주인에게 성매매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90년대 말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청소년 게임 중독’ 현상들이다.
이때부터 10여년이 흐른 뒤 ‘성인 게임 중독’의 사회적 병리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지난 2일 게임에 몰두하느라 3개월 된 딸을 굶어 죽게 한 혐의로 40대 남편과 20대 아내가 붙잡혔다. 지난달 16일 닷새 동안 쉬지 않고 게임에 몰두하다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이는 30대 남성이었다. 그즈음 한 20대 남성이 게임을 한다고 나무라던 어머니를 살해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는 와중에 자라난 ‘디지털 키드’(Digital Kid)들이 이른바 ‘인터넷 어덜트(adult)’로 성장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김현수 사는 기쁨 신경정신과 원장은 4일 “알코올중독과 마찬가지로 게임 중독도 긴 시간이 흐른 뒤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초기 인터넷게임 세대들이 10여년쯤 지나 본격적으로 중독 증상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게임 중독 문제의 성격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청소년 게임 중독의 경우, 일부 청소년들이 폭력적인 게임에 빠져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면서 극단적인 행동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인의 게임 중독은 이번 ‘영아 아사 사건’처럼 온라인에서 자신의 분신을 키우는 등 상대적으로 ‘얌전한’ 게임에 중독되더라도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형초 심리상담센터 소장은 “성장 과정에서 자기 통제력을 키우지 못한 어른들이 사회적으로 무기력한 상황에 놓이면서 가상현실에 몰입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취업, 복학 등 현실 속에서 게임을 대체할 구체적인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인 게임 중독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게임 중독과 관련해 주로 청소년에 한정된 대책만 내놓고 있다.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iapc.or.kr)가 제공하는 ‘게임 중독 자가진단’ 서비스의 경우, 청소년만 대상으로 삼고 있다. 또 정부는 ‘게임 산업이 문화 수출 분야에 기여도가 높다’는 이유로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피로도 시스템’ 등 예방 장치 마련을 뒤로 미뤄왔다. 업계 역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한 해 3조원대에 이르지만, 업체들은 게임 중독자 치료를 위한 돈을 출연하는 데 소극적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게임 중독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려운 만큼, 성인들도 자신의 ‘게임 생활’을 점검할 것을 권했다. 게임을 얼마나 했는지 기록하는 ‘게임 가계부’도 좋은 방안으로 거론된다. 고영삼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장은 “게임 중독으로 사회·경제적 손실이 연 10조원에 이른다”며 “게임 중독 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게임 업계에서도 기금 조성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권오성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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