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3.22 20:13
수정 : 2010.03.22 21:41
‘통신요금 인하’ 반년째 시늉만
사업자 편 드는 방통위에 불만
양쪽의 ‘동문서답’에 정작 속이 터지는 것은 이용자들이다. 이용자 처지에서 보면 양쪽이 ‘짜고 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다. 통신업체들의 마케팅비까지 강제로 제한하는 방통위 위세로 볼 때 수단이 없는 게 아닌데, 유독 이용자들의 권익을 높이는 상황에서는 방통위가 통신업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방통위가 통신업체들의 마케팅비를 제한하면, 소비자들에게 주어지는 휴대전화 보조금 같은 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덩달아 이명박 대통령의 통신요금 20% 인하 공약도 실현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실제로 방통위가 지난해 9월 통신요금 20% 인하 공약을 실현하겠다며 내놓은 통신요금 인하방안 가운데 초 단위 요금제 도입과 가입비 인하 등 상당부분이 반쪽으로 전락했다. 초단위 요금제의 경우, 에스케이텔레콤만 지난 1일 도입했을 뿐, 케이티와 엘지텔레콤은 버티고 있다. 가입비 역시 케이티가 내렸으나, 해지 뒤 재가입 때 면제해주던 것을 없애 거꾸로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
방통위와 이동통신 업체들의 말장난 같은 동문서답은 발신자전화번호표시(CID) 서비스 이용료 무료화를 놓고도 벌어지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해 9월 이동통신 요금인하 방안 가운데 하나로 시아이디 무료화를 앞세웠다. 이동통신 업체들은 한결같이 무료화했단다. 하지만 케이티(KT)·통합엘지텔레콤(LGT) 가입자 가운데 150여만명은 지금도 월 1000~2000원씩의 시아이디 이용료를 내고 있다.
최근 한 이동통신 업체 사장은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시아이디 이용료 무료화 약속은 어떻게 됐나”라는 질문에 “이미 무료화했다”고 답했다. “그런데 왜 받고 있나”고 따지자 그는 “가입자들이 시아이디 이용료 없는 요금제로 옮기지 않아서 부과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무료화는 받던 요금을 안받기로 하는 것이다. 에스케이텔레콤은 2005년 이런 방식으로 무료화했다. 반면 케이티와 통합엘지텔레콤은 시아이디 이용료 항목을 없앤 요금제를 추가한 뒤 무료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동통신 업체들은 시아이디 이용료를 무료화했다고 하는데, 이용자들은 요금을 내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바일 인터넷전화(VoIP) 도입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3세대 이동통신망을 통해서도 모바일 인터넷전화를 이용할 수 있게 하라”는 주문에 “통화량 급증으로 통신망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우려돼 안된다”고 업체들은 주장한다. “통화량 급증이 걱정된다면서 노트북과 전자책 단말기 등에 스마트폰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3세대 이동통신망 통해 인터넷을 이용하게 하는 테더링 서비스는 왜 확대하느냐”는 지적에는 “하여간 3세대 통신망에서의 모바일 인터넷전화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통화량 급증은 핑계일 뿐, 실제로는 비싼 요금을 받는 이동전화 수익이 줄 것을 우려해 모바일 인터넷전화 도입을 꺼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보편적 서비스 축소를 놓고도 벌어진다. 방통위는 보편적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케이티는 공중전화 설치 대수를 해마다 대폭 축소하고, 농어촌 오지 주민이 집전화 설치를 요구하면 많게는 수천만원의 전주 값을 요구한다. 제도상으로는 케이티의 시내전화와 공중전화 등은 보편적 서비스로 지정돼, 수익성 여부에 상관없이 제공한 뒤 손실은 다른 통신업체들과 분담하도록 하고 있다.
이용자들을 더욱 속 터지게 하는 것은 겉으로는 이용자 편익을 외치면서 결과적으로는 사업자 편에 서는 방통위의 태도이다. 요금인하와 통신이용자 개인정보 침해 등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마다 방통위가 나서지만, 결과는 이용자들의 요구로부터 사업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날 때가 더 많다. 이 때문에 이용자들의 불만은 ‘말리는 시누이’ 구실을 하는 방통위 쪽으로 더 쏠리고 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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