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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이동통신망 사업(MVNO) 개념도·MVNO 추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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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대가’ 높게 책정되자
예비 사업자들 불만 커져
일단 도입뒤 ‘부양책’ 예상
“싼 요금체계 생겼지 않냐”
정부 ‘빠져나갈 구멍’ 생겨
요금인하 경쟁의 촉매제 구실을 해야 할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가 이동통신 요금인하 경쟁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가상이통망사업을 준비중인 업체들과 방송통신위원회의 태도로 볼 때, 이용자들이 먹여살릴 이동통신 사업자 수를 늘리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란 통신망을 구축하지 않고 기존 이동통신 업체의 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말한다.
방통위는 8일 에스케이텔레콤(SKT)을 가상이통망사업자에게 이동통신망을 빌려줘야 하는 ‘통신망 의무 제공’ 업체로 지정하고, 가상이통망사업자가 통신망을 빌리는 가격 계산 때 적용할 ‘도매 대가 산정 기준’을 마련했다. 오는 23일 발효되는 기준에 따르면, 에스케이텔레콤은 가상이통망사업자의 설비 보유 정도에 따라 소매가격의 56~69% 가격에 이동통신망을 제공해야 한다. 최영진 방통위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시장 상황에 따라 볼륨디스카운트 방법 등을 통해 도매 대가를 더 낮출 수 있다”며 “음성통화료를 기준으로 20% 가량 요금이 싼 이동통신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케이블텔레콤(KCT)과 온세통신 등 가상이통망사업을 준비중인 업체들은 방통위 결정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한 업체 사장은 “가상이통망사업의 사업성이 보장되지 않는 수준”이라며 “가이드라인을 통한 추가 할인이 없으면, 가상이통망사업자를 통한 요금인하 경쟁 활성화로 이동통신 요금이 떨어지게 하겠다는 방통위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가상이통망사업을 준비중인 업체들과 에스케이텔레콤은 통신망을 얼마에 빌려줄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다. 가상이통망사업을 준비중인 업체들은 설비 보유 정도에 따라 도매 대가를 45~60%까지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에스케이텔레콤 쪽은 “특혜를 달라는 것”이라고 반박해왔다. 방통위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신요금 20% 인하 공약 실천 방안 가운데 하나로 가상이통망사업자 제도 도입을 추진해왔다. 이를 앞세워 이동통신 요금인하 요구를 잠재우기도 했다.
이에 시민단체와 정치권 쪽은 벌써부터 가상이통망사업자 도입을 통한 이동통신 요금인하 경쟁 활성화 정책에 회의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방통위가 지금은 대통령 보고 내용을 뒤집을 수 없어 인위적으로 가상이통망사업자를 등장시키고, 나중에는 ‘정책 실패’ 지적을 피하기 위해 소비자 몫을 떼어 가상이통망사업자 지원에 나서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전에도 번호이동 제도를 도입하면서 사업자 간에 시차를 두고, 통신망 이용 대가(접속료) 차별화와 ‘과열 경쟁 방지’ 정책까지 펴며 후발 이동통신 업체들을 지원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줄었다.
방통위와 이동통신 업체들이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를 들러리로 앞세워 이용자와 시민단체의 이동통신 요금인하 요구에 물타기를 하는 상황도 예상된다. 서비스를 싸게 제공하는 사업자가 있는데 왜 그리로 옮겨가지 않고 요금을 내리라고 하느냐고 큰소리를 칠 수 있다. 실제로 장윤식 한국케이블텔레콤 사장은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가 등장하면, 기존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소량 통화 가입자 200만~300여만명을 내놓는 대신 요금인하 요구에서 벗어나고, 방통위는 이동통신 요금인하를 위해 애썼다고 생색을 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정부가 진정으로 이동통신 요금을 내릴 생각을 한다면, ‘관리경쟁’ 정책부터 철회하는 게 더 효과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청소년·어르신·장애인·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등 소외계층의 통신비 부담 완화에 주력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완전히 맡기는 게 낫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그동안 이동통신 3사의 경쟁상황을 관리해,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은 관리경쟁 체제이고, 소비자와 시장을 보호해야 할 방통위의 유효경쟁 정책이 ‘주자’(사업자) 보호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가상이통망사업자에 대해서도 요금인하에 더해, 차별화된 부가서비스를 발굴해 틈새시장을 키우는 쪽으로 정책 목표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도매 대가 산정 기준을 원가 방식으로 바꾸고, 에스케이텔레콤만을 통신망 의무 제공 사업자로 지정한 것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지금대로라면 대선 공약용, 특혜 규제, 보복 규제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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