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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1 13:54 수정 : 2005.11.11 13:54

사람마다 농담이 통하는 수위가 다 다르다. 그래서 사람 봐가면서 농담해야지 무턱대고 했다가는 낭패를 본다. 내 친구 목사 한 사람은 나보다도 농담을 더 많이 한다. 그가 어느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늘 하던 습관대로 농담을 했는데 그걸 농담으로 받지 못한 교우가 상처를 받은 일이 있다. 물론 나중에는 목사님의 심중을 알아서 무슨 농담을 해도 오해 없는 관계가 되긴 했지만 처음엔 잘 적응하지 못하는 교우들을 봤다.

우리가 하는 농담이 저질 농담도 아니고 대개는 웃자는 얘기 정도다. 농담 없이 거룩하게만, 심각하게만 산다면 얼마나 분위기가 '썰렁'할까. 그래서 농담으로 한바탕 웃고 나서 뭔 일을 하는 건 윤활유와 같다. 사람이 어찌 업무적으로만 살겠는가.

몇 해 전에 우리 교회에서 야유회를 갔다. 장소가 상수원보호구역인데 그 안에 개인소유 시설물이 있어서 사전에 양쪽에 다 허락 받고 그 안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말미에 신입 교인이 보물을 찾았는데 노래 부르고 상을 타 가는 순서가 있었다. 교회에 나온 지가 얼마 안돼서 교회 노래를 모른다고 하기에 그럼 유행가도 괜찮다고 해서 '남행열차'를 한 곡 불렀다.

그랬더니 교회 야유회에서 유행가를 불렀다며 부르고도 멋쩍어 하기에 괜찮다고 부를 수도 있다고 그를 위하는 차원에서 집사 두 명이 역시 건전한 유행가를 한 곡씩 불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날을 즐겁게 보내고 왔다.

다녀온 후 '즐거웠던 야유회'란 제목으로 기독교계 인터넷 신문에 글을 올렸는데 그것이 금방 인기 기사에 올라 가면서 조회수가 4천을 육박하더니 '댓글 전쟁'이 났다. 교회 야유회에서 유행가 부르고, 상수원 보호구역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놀다 왔으니 언제 철이 들 것이냐 둥 얼마나 더 배워야 사람이 될 것이냐는 둥 정말 보기 민망한 댓글들이 올라와서 당황했다. 그래서 그게 아니고 여차여차하여 그랬다고 답글을 올렸더니 한도 끝도 없다.

편은 둘로 나뉘었다. '새 신자를 아우르는 폭넓은 아량이지 그게 무슨 비난받을 일이냐'는 쪽과 '상식 밖의 일을 저질렀다'는 쪽으로 양분되어 서로 싸우는데 누구 말마따나 참 별꼴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편협하게 생각할까. 난 목사지만 그것이 이해가 안 갔다. 아마 안티족이 싸움을 붙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쌍방이 열심히 싸우는데 원인 제공은 내가 했지만 난 슬그머니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냥 웃자고 쓴 글이 그렇게 파장을 불러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 번 혼이 나고 '기자 안 하겠다'고 탈퇴선언까지 했는데 만류해서 다시 일을 하긴 하지만 그 때의 추억은 기분이 별로다.

웬만하면 웃고 말 일이었다. 설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속으로나 생각하고 말 일인데 삐딱한 댓글로 시작해서 거기에 대한 답글 또 답글 그러다가 교묘하게 말꼬리 붙잡고 늘어지면서 싸움은 이상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소위 그건 '악플'이었다. 사이버 공간에 '악플러'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체 할 일이 그렇게도 없는 사람들인가. 서로 칭찬하고 격려해 주고 사랑해 주고 살아도 부족한 세상을 왜 싸우면서 살자는 것인지.

그 후부터는 글 올리기가 조심스럽고 누가 댓글 달면 겁부터 났다. 또 욕을 한 건 아닌가, 내용에 뭔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그래서 한동안은 글을 안 올렸는데 도저히 글을 안 쓰고 안 올리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또 하고 있지만 아직도 조심스러움은 여전하다.

우리나라에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3년 밖에 안됐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은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글쓰기가 취미인 글쟁이들한테는 컴퓨터가 얼마나 고마운 문명의 이기인지 모른다.

그런데 댓글에 웃고 댓글에 우는 사례가 많다. 어떤 분은 글 쓰는 걸 보면 실력이 대단한데 그 분이 남의 글에 쓴 댓글을 보면 실망인 경우도 있다. 물론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은 좋은 일인데 무례하게 재판관처럼 정죄하고 훈계하고 명령하는 경우는 참으로 어이없다. 더욱이 자기보다 나이도 많은데 마치 아래 사람한테 명령하듯 무슨 큰 잘못이나 한 듯 단칼에 도려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

글재주가 미숙해서 표현이 매끄럽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인데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렇게까지 화끈하게 말해야만 직성이 풀리나 하고 그 분의 인격을 의심하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이렇게 표현하면 어떻겠느냐' '요 부분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게 더 낫다'는 식으로 지적해 주면 글 쓰는 이들이 오죽 잘 알아서 감사하게 수정하겠는가. 그걸 가지고 너무 전투적으로 달려드는 기세에 그저 죄인 된 심정으로 주눅 드는 나 같은 서툰 글쟁이들의 심사를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대로 남의 글을 보고 동감하여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좋은 글 감사하다'는 한 마디 말 달기는 또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가. 그래서 살짝 보고만 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꼬박꼬박 읽어주고 격려해주고 좋은 글 잘 읽었다고 한마디 써 놓는 것이 글쓴이로서는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런 댓글을 보면 힘이 나고 용기가 생긴다.

좀 더 열심히 하면 작품성 있는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힘을 주기도 하고 힘을 빼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치료해 주기도 한다.

댓글이 하나도 없으면 쓸쓸하기도 하다. 그래서 재치 있는 누리꾼들은 '무플방지위원회(?)'에서 나왔다며 댓글을 달아 주기도 한다. 남의 글을 읽고 간단히 평을 써주는 것도 훌륭한 네티켓이다.

인터넷에서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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