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22 18:52
수정 : 2006.02.22 18:52
갑작스런 대출액 감소·금리 인상에 서민들만 멍들어
“집이란 게 한 번 보고 사는 백화점 물건입니까? 이 대출만 믿고 계약까지 했는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대출을 안해주면 어쩌라는 겁니까?”
생애 처음으로 내집을 갖게 된다는 꿈에 부풀었던 서민들이 정부의 무책임한 오락가락 정책에 계속 ‘뒤통수’를 맞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대출을 시작한 지 세 달여 만에 대출조건을 세번이나 바꿨다. 주택구입의 특성상 서민들은 오랜 기간을 두고 자금 계획을 준비하는데 반해, 정부는 ‘돈이 떨어졌다’는 이유를 들어 갑자기 계획을 바꾸는 졸속행정을 되풀이하고 있다. 각종 포털의 재테크 사이트에는 “국민을 상대로 한 정부의 사기극”이라는 분노가 들끓고 있다. 대출액이 갑자기 줄어 막막한 이들도 있고, 이 대출의 최대 장점이었던 금리마저 올라 허탈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1. 회사원 박아무개(35)씨는 지난해 3월에 경기도 부천의 한 미분양 아파트를 1억7천만원에 계약했다. 계약금 1천만원을 내고 당시 건설회사의 보증으로 중도금 7천만원을 대출받았다. 중도금을 내는 중간에 정부가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대출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머지 9천만원을 대출 받기로 맘을 먹었다. 은행에서 “잔금 치를 때 신청하면 된다”는 답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모든게 순조로웠다. 그러다 정부가 지난 6일 중도금 대출이 있으면 대출을 안해준다는 방침을 내놨다. 당황한 박씨가 은행에 다시 문의하니, “중도금 7천만원을 갚고 오면 대출이 가능하다”는 답이 되돌아 왔다. 고민 끝에 박씨는 자신이 사는 집의 전세금을 빼서 갚기로 하고, 전셋집을 내놨다. 올해 6월 입주니까, 잠시 부모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박씨는 22일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대출자격을 연소득 3천만원 이하로 다시 낮춘 것이다. 박씨의 연봉과 아내 소득을 합치면 3천만원이 조금 넘는다. 정부는 “27일 전에 신청하면 된다”고 했지만, 아직 전셋집이 빠지지 않아 신청도 못한다. 박씨는 “애들 장난도 아니고, 너무 기가 막혀 머리속이 새카맣다”고 하소연했다.
##2. 조아무개(36)씨도 걱정이 많다. 지난달 말 은행에 가서 “아파트 계약을 하려는데 생애최초대출을 얼마나 받을 수 있냐”고 물었을 때는 분명 “9천만원”이라는 답을 들었다. 계약을 한 뒤 계약서를 들고 다시 은행에 갔더니 “6천만원 밖에 안된다”는 답을 들었다. 정부와 은행들이 재원 고갈을 우려해 지난 6일부터 집값의 70%로 대출 비율을 낮췄기 때문이다. 막막해하는 조씨에게 은행 대출직원은 “대출액이 부족하면, 차라리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이용하라”고 권했다. 조씨도 소유권 등기 이전까지는 매년 보증보험료를 내야하고, 담보설정비도 부담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생애최초대출이 꼭 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한참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정부가 제시한 5.2%의 싼 금리를 믿고 생애최초대출을 받았다. 나머지 3천만원은 신용대출(9.9%)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날 대출금리를 5.7%로 올렸다. 조씨는 “보증보험료에 신용대출 이자까지 합치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보다 나은 게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3. 집을 사지 않은 사람들도 정부에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1년동안 운용되는 생애최초대출로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 상시적으로 운용되는 근로자·서민주택구입자금대출의 입지가 좁아졌다. 벌이가 적은 서민들을 위해 4.7~5.2%의 금리로 대출되던 이 상품의 금리가 5.2%로 단일화 됐다. 더 큰 문제는 소득기준이 ‘세대주 3천만원 이하’→‘부부합산 3천만원 이하(1.31일 변경)’→‘부부합산 2천만원(2.22일 변경)’으로 까다로워진 것이다. 내년 쯤 주택공사의 분양아파트 구입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아무개씨는 “부부합산 소득 2천만원 이하인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면서 “작년 말에 연봉 4천~5천만원짜리 부자들에게 돈을 다 퍼주고, 이제는 돈없다고 우리같은 서민들 자격을 박탈하는 게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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