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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 입주를 앞둔 경기 화성시 봉담 휴먼시아 5블록의 전경. 5블록 당첨자들은 먼저 분양된 6블록보다 분양 시기가 10개월 차이밖에 안나는데도 분양값이 84㎡짜리의 경우 가구당 1800만원이나 더 비싸, 2005년 주택공사를 상대로 원가 공개 소송을 냈다. 화성봉담 5블록 입주자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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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결땐 “전면공개”라더니 “총액만” 발뺌
“지방·임대아파트는 오히려 손해본다” 강변만
시민단체 “인건비 등 SH공사 수준으로 공개를”
대한주택공사가 결국 분양원가를 공개하기로 확정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끌었다. 대법원 판결을 거쳐 겨우 공개가 됐지만, 공개 범위도 입주 예정자들이 요구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런 점 때문에 분양원가 전면 공개를 위한 주택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 주공 결국 공개키로=주공의 분양값 업무 담당자는 11일 “(분양 원가 소송을 걸어 승소했던) 화성 봉담지구와 고양 풍동지구의 입주 예정자들에게 분양 원가를 공개하기로 확정했다”며 “이번주라도 법원에서 간접강제 신청서나 간접강제 결정문이 도착하면 공개 자료를 입주 예정자들에게 송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화성 봉담 휴먼시아 5블록 아파트입주자협의회는 지난달 28일 “법원의 판결 취지대로 분양원가 정보를 7일 이내에 공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행될 때까지 하루에 10만원씩 지급하라”는 내용의 간접강제 신청서를 법원에 낸 바 있다. 간접강제 신청은 금전적 채권이 아니어서 압류 등 직접강제가 불가능할 경우, 제재금을 부과해 법원 판결의 강제력을 높이는 집행 방법이다. 주공의 한 팀장은 “그동안 주공이 사법부의 판결마저 무시한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간접강제까지 외면하게 되면 돈도 돈이지만 여론 문제 등 감당하기 힘들어진다”며 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경기 고양시 풍동지구 주공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주공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분양원가 공개는 영업상 비밀이 아니다”며 입주 예정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주공은 당시 같은 내용으로 소송이 걸려 있던 화성 봉담지구에 대해서도 항소심을 포기한 바 있다.
■ “전면 공개” 외치더니 ‘찔끔’ 공개=주공은 지난해 6월 대법원 판결 당시 “원가를 가급적 빨리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2002년부터 공급된 전국의 88개 단지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공개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공개 대상도 대법원 판결이 난 곳과 주공이 항소를 포기한 곳 등 두 곳으로 축소됐다. 그나마 입주 예정자들이 요구한 수준에 못 미칠 것 같다. 화성 봉담 입주자협의회 설민수 운영위원장은 “소송 서류를 통해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에스에이치(SH)공사가 공개한 원가 내역에 따라 공개하라’고 명시적으로 청구했다”며 “주공이 하도급을 주는 공종별로 세분한 ‘60개 항목’으로 구분해 원가를 공개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공 관계자는 “이윤 총액은 공개하지만 이를 60개 항목으로 쪼개서 비용과 이윤을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에스에이치공사와 주공은 회계관리 기법이 다르기 때문이며, 같은 이유로 인건비 내역도 단지별로 구분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공개 꺼린 명분과 속내=주공 내부에서는 억울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방, 특히 임대아파트의 경우 마진이 없거나 손해 보는 단지도 많은데, 분양으로 큰 차익을 거두는 곳만 공개되면 국민들이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공도 원가를 토대로 하지 않고 주변 시세에 따라 분양가를 책정해 온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당연히 많은 분양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주공은 그 돈으로 공익성이 큰 임대주택 등을 지어 왔다고 설명한다. 정부 재정에 의존하지 않고 분양이 잘되는 곳에서 이익을 남겨 공익사업을 해 왔다는 논리다.
주공은 또 그동안 공개를 미룬 이유로 “부당이득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이 잇따를 수 있으며, 민간 업체에 대한 분양 원가 공개 압박도 커지는 등 사회적으로 부정적 파장이 클 것”이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주공의 주택 공급 업무를 맡은 한 팀장은 “분양 차익은 집을 산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부당이득으로 볼 수 없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다”며 “소송이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에스에이치공사의 분양원가 공개 검증 작업에 참여했던 김남근 참여연대 변호사는 “주공이 수도권서 이득을 보고 지방에서 손해 봤다면 2개 단지 외에 다른 단지도 공개해서 보여 주면 될 텐데 왜 공개는 않고 ‘믿으라’고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주공은 애초 88개 단지를 공개하려다 보류한 상태다. 주공은 특히 “회계 관리 방식이 다르다”며 에스에이치공사가 사용하는 형태의 인건비 공개를 꺼리고 있다. 에스에이치공사는 본사의 인건비 등을 사업 단지별로 나눠서 회계 처리하고 있다. 주공이 인력 등 조직의 효율성 면에서 에스에이치공사와 비교되는 것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게 한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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