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기간 강화된 수도권·지방 “매수문의도 없어”
고가주택도 잠잠…전문가들 “경제회복 안되면 백약이 무효”
정부의 9·1세제개편안 발표후 수도권과 지방 주택시장이 완전히 마비됐다.
가뜩이나 경제 위기로 매매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정부가 이르면 연말부터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대상에 2-3년의 거주요건을 추가하기로 하면서 가을 이사철에도 불구하고 매매거래가 사실상 올스톱됐다.
지난 8·21부동산 대책에서 안전진단 절차 등 규제 완화가 예정된 재건축 시장도 매수세는 여전히 침체돼 있고, 매도자 역시 양도세가 완화될 때까지 팔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어 거래가 안되긴 마찬가지다.
7일 부동산 업계는 "주택거래를 살리겠다던 정부 대책이 약발을 내기는 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며 "국내.외 경제여건마저 좋지 않아 추석 이후에도 당분간 주택시장이 살아나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도권·지방 매수문의 '뚝' 양도세 감면을 주축으로 한 9·1 세제개편안이 발표된 후 수도권 주택시장은 거래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소득세법 개정후 주택을 구입하거나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계약자들은 종전까지 3년 보유만 해도 1가구 1주택자면 양도세 비과세 혜택(고가주택 제외)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지역에 따라 2-3년은 거주해야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서울지역 거주자의 원정 투자가 많은 용인, 의정부, 양주, 파주, 김포, 남양주, 인천시 등 수도권 주요 아파트 시장은 매수세가 더욱 위축되며 거래침체가 장기화될 조짐이다.
의정부시 일대 아파트는 최근 팔아달라는 매물은 많은데 살 사람이 없어 물건이 쌓이고 있다. 이 곳은 지난해부터 서울 강북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자 불안감을 느낀 무주택자나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전세를 끼고 사둔 경우가 많았다.
의정부시 용현동 S공인 대표는 "직장 때문에 본인은 서울에 전세를 살면서 집만 사둔 사람들이 비과세 혜택을 못받을까봐 불안해하고 있다"며 "거주요건이 강화되면서 간간히 이어지던 매수문의마저 뚝 끊겼다"고 말했다. 양주시 일대도 마찬가지다. 최근 입주한 지 3년이 된 양주 자이는 양도세 비과세 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살 사람이 없다. 이 때문에 최근 매매가도 평균 1천만원 정도 하락세다. 삼숭동 H공인 사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물이 나오면 호가 수준에 팔렸는데 거주기간 강화 방침이 발표된 후에는 매수자들이 입질도 하지 않는다"며 "경기도는 실거주보다 서울 입성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는 투자수요가 많은데 거주기간 강화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시도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죽전지구의 K중개업소 관계자는 "다주택자는 물론, 집이 없는 사람도 집을 사기 힘들게 해놨으니 문제가 심각하다"며 "집을 팔아야 할 사람들이 매수자가 없어 이사를 가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포 한강신도시 '우남퍼스트빌'(1천193가구)'은 지난 3-5일 1-3순위 청약에서 모집 가구수의 40%가 미달되며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8·21대책에 따른 전매제한 단축의 최대 수혜단지로 꼽혔으나 청약 직전에 거주요건이 추가된다는 세제개편안이 발표되며 청약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지방시장은 고사 직전이다. 외지인 투자가 많았던 충남 천안·아산시와 당진군, 공주·연기군, 충북 충주, 전북 여수 등 지방 시장도 거주요건 강화의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충남 아산의 B중개업소 사장은 "행정중심복합도시나 신도시 개발, KTX개통 호재로 외지인이 많이 몰렸던 신규 분양 아파트 계약자들의 걱정이 많다"며 "미분양 판매에 악재가 터졌다"고 말했다. ◇재건축.고가주택 시장도 '잠잠' 지난 8.21 부동산 대책과 9·1 세제개편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재건축과 고가아파트 시장도 정부 정책에 '묵묵부답'이다.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노린 6억원 초과, 9억원 이하 아파트나 규제 완화를 기대한 재건축 보유자중 일부가 매물을 회수하거나 매도시점을 연기하는 등 기대감을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태다. 매수 예정자들도 대부분 "좀 더 지켜보겠다"며 관망하고 있다. 잠실 S공인 대표는 "세제 완화 기대감으로 매도시점을 늦추는 사람과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지금이라도 팔려는 사람이 혼재하고 있지만 매수자는 전혀 없다"며 "집이 몇 가구 팔리고 호가가 오르기 시작해야 거래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개포동 N공인 사장도 "양도세 중과대상이 많아서 그런지 매물에 큰 변화가 없고, 거래도 아예 안된다"며 "다들 버틸때까지 버텨보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고 전했다. 도곡동 E공인 대표는 "타워팰리스 등 고가주택은 거래가 침체된 지 오래됐다"며 "양도세 완화 혜택을 받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매수, 매도자의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등 문제…추석 후에도 침체 지속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 불안을 꼽는다. 미국 등 글로벌 금융위기와 신용경색, 환율 등 외환시장 불안, 금리 인상, 주가 폭락 등 악재 속에 불안감이 커져 있어 어떤 정책을 써도 '백약이 무효'라는 것이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과거같으면 이 정도 대책에 시장이 어느 정도 움직였겠지만 지금은 각종 악재에 쌓여 있어 정책변수가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서민들이 부동산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선덕 소장도 "거시경제 등 외생변수에 대한 불안감이 주택시장에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세계 경제가 바닥을 찍어야 국내 주택시장도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활성화 대책이 '시장 떠보기식'으로 찔끔찔끔 나오는 것도 문제다. 한 건설회사 관계자는 "미분양 대책처럼 시장이 안움직이면 추가로 규제를 완화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큰데 누가 지금 집을 사고 분양을 받겠느냐"며 "'안되면 또 푼다'는 식의 정책은 시장의 내성만 키울 뿐"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건설회사 관계자는 "8.21대책에서 전매제한 완화로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겠다면서 9.1세제개편안에서는 거주기간을 강화하는 등 부처간 '엇박자' 정책이 문제"라며 "이런 모습은 시장에 불신감을 갖게 해 거래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햇다. 전문가들은 추석 이후에도 이와 같은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수요창출을 위해 대출 규제 등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전문가들도 일부는 "경제회복, 금리인하 등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출 규제를 풀어도 매수세가 쉽게 살아나긴 힘들다"는 시각으로 돌아섰다. 박원갑 소장은 "경제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거주요건 강화 등으로 추석 이후에도 주택시장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며 "연말까지 보합 내지 약보합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미숙 기자 sms@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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