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건축·재개발 아파트의 조합원 입주권에 양도세를 물리겠다는 정부 발표에 따라 투기 목적의 아파트 입주권의 매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사진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 잠실아파트 재건축 현장.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
꿈쩍않던 ‘딱지’ 다량 보유자 중과세 피하려 매물 쏟아낼 듯 강남 은마·뉴타운 등 대형단지 모두 해당 “가격 조정되면 실수요자에겐 기회”
“단기적으로는 8·31대책을 모두 합쳐놓은 것보다 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 투기 수요가 많았던 재건축·재개발 시장에는 치명상이다.” 지난 7일 ‘소득세법’을 바꿔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아파트의 조합원 입주권을 주택으로 계산해 양도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한 뒤 나온 시장의 반응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입주권을 주택으로 간주한다는 정부 방침이 현실화하면 ‘정권이 바뀔때 까지 버텨보자’는 심리는 무너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현재 착공 직전(관리처분계획 통과 이전)의 재건축·재개발 입주권을 가진 다주택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동안 입주권은 말이 투자지 사실상 투기 목적으로 거래됐다. 그러나 높은 양도세를 피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이를 내다 팔아야 할 판이다. 1가구2주택 이상 소유자에 대해 양도소득세가 중과되는 2007년 이전에 이런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망세를 유지하던 서울 강남지역 주요 재건축 단지 입주권이 시세보다 싼 값에 나오고 있다는 말이 벌써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일반분양이 끝난 단지에서도 올해 안에 상당수 매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부터 거래되는 입주권은 관리처분계획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주택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는 입장에서도 입주권의 매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투기꾼 빠져나갈 구멍 막은 셈=재건축 대상 아파트나 재개발 지역의 주택은 철거되면 주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그동안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됐었다. 일반아파트와 재건축대상아파트를 각각 1채씩 가진 사람은 재건축아파트가 철거되면 1가구1주택 비과세 혜택을 받았고, 아파트 2채와 재건축아파트 1채를 가진 사람은 1가구3주택 양도세 중과(60%)를 피해갔다. 뉴타운 예정지 등 재개발 지역에서 이른바 ‘딱지(입주권)’를 수십개씩 사들이는 투기세력이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아무개(45·서울 서대문고 북가좌동)씨는 “가좌 뉴타운에는 한사람이 빌라 6가구를 사서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며 “뉴타운 지역은 입주권 투기가 판을 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버젓이 집값이 매겨져 있는 데도 입주권은 실체가 한동안 없다는 이유로 토지에 대한 보유세만 내는 등 세금 혜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조처로 재개발·재건축이 더는 투기세력에게 휘둘리지 않게 됐다. 1가구2주택 양도세 중과 방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건축아파트의 철거만 기다렸던 다주택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잃은 것이다.
|
재건축 추진 중인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
|
“재개발 중심으로 매물 늘 것”=부동산 시장에서는 “올해 안으로 재건축보다는 뉴타운 등 재개발 입주권 매물이 많이 쏟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재개발 입주권은 매매 자격에 대한 규제가 따로 없어 올해 안에 팔 수 있지만, 재건축의 경우 투기지구에선 2003년 12월31일 이후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단지는 분양권 전매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강남을 포함해 대부분의 대형 재건축 단지들이 투기지구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지금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과 재건축 입주권을 갖고 있는 2주택자가 양도세 부담을 피하려면, 지금 사는 집을 먼저 팔고 자신은 전세로 들어가는 ‘고육지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서울 강남 개포 주공 인근 ㅂ공인 관계자는 8일 “아직 매도 물량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값이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실수요자들도 관망세로 돌아서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의 상당수가 차익을 노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조만간 양도세를 피하려는 매물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락 시영아파트 인근 ㄷ공인 관계자도 “아직까지 매물이 나올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매도 방법을 문의하거나, 재건축 대책이 나온 뒤 분위기가 어떠냐는 전화는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천호동 뉴타운 지역 ㅇ공인 관계자는 “다주택자들을 중심으로 어쩔 수 없이 매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값이 내려가고 거래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거여동 뉴타운 지역 ㅈ공인 관계자는 “재건축·재개발 아파트는 대부분 입지 여건이 뛰어나고, 뉴타운으로 새롭게 개발되는 곳도 주변 기반시설 등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선호도가 높다”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정도까지 가격 조정이 이뤄지면 실수요자들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반면, 강남 개포동 주공아파트 등 이번 조처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 단지의 조합원들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파트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잠시 사업 추진을 중단하고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곳 조합 관계자는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실수요자 힘만으로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을 해 나가야 한다”며 “강남 재건축뿐만 아니라 이제 막 속도가 붙기 시작 한 강북 뉴타운 개발에도 악영향을 미칠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하기도 했다. 해당 단지 얼마나 되나= 현재 강남의 은마아파트나 개포주공, 강동의 고덕주공, 둔촌주공 등 대형단지들은 모두 이번 조처의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개발이 추진되는 강북 뉴타운 지역도 마찬가지다. 형식상 2006년 이후 관리처분 통과 아파트로 제한하긴 했지만, 내년부터 거래되는 입주권은 주택이 되기 때문에 사실상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모두 이번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 아직 분양가 등을 책정하는 관리처분을 마치지 못한 곳은 대략 14만9천여가구다. 올해 안에 관리처분이 가능한 가구는 대략 1만여가구 수준이며, 6만6천여가구는 아직 사업초기이거나 안전진단 정도만 받은 상태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08개 단지 9만1천여가구로 가장 많고, 경기도가 65개 단지 4만2천여가구, 인천이 8개 단지 6천여가구 순이다. 특히 강남 개포주공이나 서초 신동아1차, 강동구 고덕주공 2단지 등은 재건축 사업이 상당 부분 진행됐으나 아직 관리처분을 받지 못해, 올해 안으로 관리처분 통과를 위해 안간힘을 쓸 것으로 보인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