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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3일 서울 종로 청진동의 꼬치집 ‘만복’에서 만난 임영희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맘상모)의 사무국장. 그는 자신이 가게를 얻어준 친구가 새 건물주에 의해 쫓겨난 것을 계기로 맘상모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상권 형성으로 만들어진 권리금은 임차상인의 영업으로 만든 가치인데도 프랜차이즈 대기업이나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빼앗아 간다”고 했다. 그의 티셔츠에 ‘재주는 곰이 부린다’라고 쓰여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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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임영희 맘상모 사무국장
비 오는 서울 종로 청진동 골목은 한산했다. 해장국집과 빈대떡집을 밀어내고 24층짜리 번듯한 고층건물이 들어선 피맛골의 뒷골목, 족발, 순대국집과 노래방, 결혼상담소 간판이 다닥다닥 늘어선 길목 끝자락에 ‘만복: 정종대포, 꼬치구이’라고 쓰인 허름한 술집이 있었다. 아직 술손님이 올 시간도 아닌데 열평 남짓한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여기서 임영희 국장을 만나기로 했는데요.”
“잠깐 식사하러 가셨어요. 불러드릴게요.”
누가 객이고 주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떤 이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어떤 이는 주섬주섬 짐들을 펼쳐놓았다. ‘법보다 양심이 우선입니다’, ‘강제집행, 해볼 테면 해봐라’ 같은 문구들이 적힌 분홍색 손팻말 뭉치였다. 잠시 뒤, 더벅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젊은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맘상모) 임영희(38) 사무국장이었다.
“사실 저보다 이분들을 인터뷰하셔야 되는데요. 이분은 여기 ‘만복’의 김선희 사장님이시고요….”
그는 가게에 모여 있던 이들을 차례차례 소개했다. 홍대 통닭집, 신촌 곱창집, 가로수길 이자카야, 수원 만두집, 상도동 감자탕집, 구로공단 숯불바비큐집, 종각역의 삼겹살집 사장님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이 저마다 절실한 사연을 담고 모여 있었다. 모두 맘상모 회원들이었다.
무조건 나가라? 왜?
-원래 맘상모 사무실은 신촌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오늘 여기서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오늘 열두시에 여기서 집회가 있었어요. 여기가 지금 ‘강제집행’이 들어올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어서 저희가 돌아가면서 이렇게 오는데. 오늘은 제가 여기 있기로 한 날이어서요.”
-‘강제집행’이라고 하면, 세입자에 대한 퇴거조치를 말씀하시나요?
“네. 명도소송(부동산 소유자가 점유자를 몰아내기 위한 소송)이 끝나고 3월15일자로 강제퇴거 명령이 떨어진 상태예요.”
-건물주하고 갈등이 생기게 된 이유가 뭐죠?
“법적으로 5년이 지나면 더 이상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가 없고 나가라면 나가야 되는 상황인 거예요. 만복은 여기 9년 전에 청진동 재개발한다고 먼지 풀풀 날릴 때 들어와서 힘들게 영업을 하셨어요. 월세 꼬박꼬박 내면서 착실히 가게를 키우셨는데 재작년에 위 가게에서 불이 났어요. 만복은 화재에 아무 책임이 없는데, 임대인(건물주인)이 나가라고 한 거죠.”
-만복 사장님이 입점할 때 권리금 같은 걸 내고 오셨나요?
“그럼요. 보증금, 월세 외에 권리금 2억원을 주고 들어오셨죠.”
-그 권리금을 다 날리게 된 거군요. 지난 5월에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는데.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가게 권리금을 다음 임차인한테서 회수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만복은 법률 개정 전에 벌어진 사태라 해당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일이 자주 있나 봐요.
“(옆 테이블 가리키며) 여기 계신 분은 상도동에서 감자탕집을 하시는데 거기 스타벅스 들어올 거니까 무조건 나가라고 한대요. 지금 건물 월세가 1·2·3층 다 합쳐서 700만원쯤 하는데, 스타벅스가 들어오면 통째로 월세 1300만원씩 낸다고 했다고 싹 비우라는 거죠.”
-스타벅스는 왜 그렇게 월세를 높여서 내겠대요?
“그 건물에 가게가 세 개 있는데 그 가게 권리금을 다 합치면 한 2~3억원 되거든요. 그 권리금을 스타벅스는 안 내고 들어오는 거죠. 권리금 안 내는 대신에 ‘내가 매달 1300만원 낼게’ 그러는 거예요. 그럼 임대인 입장에서는 완전 생큐죠. ‘그래도 될까? 가게 하던 사람들한테 좀 미안하지 않나?’ 하다가도 ‘기획 부동산’ 같은 데가 껴 가지곤 ‘이만큼 했으면 할 만큼 한 거예요. 5년 넘어 법적으로 문제될 것 없으니 싹 내보내시고 안 된다면 소송 걸면 됩니다’ 하고 부추기는 거죠.”
-스타벅스는 권리금을 안 준대요?
“일요신문에서 스타벅스 입장을 물었나 봐요. 근데 자기네는 한국에 700개 점포가 있는데 한번도 권리금을 준 적이 없다고 했대요.”
-허, 참!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들어올 때 늘 이런 문제가 생겨요. ‘월세 더 줄게 내보내!’ 하고. 가로수길 초창기의 개성 있는 가게들이 지금 하나도 없잖아요. 아무것도 없던 거리에 상권이 형성되고 사람들의 유입이 늘면서 권리금이 막 발생하는데, 그게 다 임차상인들이 영업해서 만든 재산가치인데 대기업이 싹 밀고 들어와서 빼앗는 거죠. 임대인은 지가 엄청 뛰고 임대료 올려 받으니 좋고. 연남동 같은 데는 최근 2~3년 전에 비해 지가가 4배 가까이 뛰었고요, 홍대앞·삼청동 다 그렇게 됐어요.”
임영희는 목이 타는지 맥주잔 가득히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가 입은 맘상모 티셔츠에는 ‘재주는 곰이 부린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열심히 장사하다가 쫓겨날 때의비참함, 그 공감대가 정말 진하죠
친자매·친구 이상으로 의지해요
어디서 집회 시위 한다고 하면
가게 문 닫고 달려오시곤 합니다” 알바로 구한 노들야학 운전기사
장애인 방 구하기 어려움 안 뒤
부동산 일 시작했는데 친구한테
얻어준 곱창가게가 쫓겨날 위기
팔 걷어붙인 게 맘상모의 시작 ‘영희네 부동산’ 임 사장의 파란만장 인생사 -임영희씨도 자영업자였나요? 어떻게 맘상모 창립 멤버가 되었죠? “아니, 전 부동산중개업자였는데 어떤 분 가게를 얻어드렸다가….” -아, 부동산 일을 하셨다고요? 얼마나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둔 게 있어서 2007년 말부터 시작을 했고, 본격적으로 삼성동에 사무실 얻어서 한 거는 2009년부턴데 2년 있다가 폐업을 하고….” -잠깐만요, 부동산 사장 시절 얘기부터 해주세요. 부동산 하면 임차인(상가세입자)보다 임대인(건물주)하고 가깝게 지내야 하는 거 아녜요? “임대인이랑 되게 친했어요. 상가나 사무실 소개해드리고 나면, 건물주들이 ‘임 사장! 밥 한번 먹어요’ 그래서 한 끼에 20만원짜리 밥도 사 주시고….” -돈도 많이 벌었나요? “부동산 일은 다 했죠. 아파트도 하고 사무실도 하고, 고급빌라랑 연예인 집 거래도 좀 해보려 하고. 중간에 잘 번 적도 있는데 고민이 많았어요.” -무슨 고민이요? “부동산을 시작한 계기가… ‘집은 인권입니다’ 이런 모토로 시작한 건데. 그걸 적어서 사무실에 딱 걸어놓고 명함에도 새겨 넣었는데.” -‘집이 인권이다’라고 주장하는 부동산 사무실은 첨 들어요. “원래 부동산 일을 시작한 게 장애인단체 일 때문이었거든요. 장애인을 위한 교육기관인 ‘노들야학’에서 운전기사로 일을 하다가 교사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서 지역사회에 살아야 한다고 ‘탈시설 주거지원 네트워크’가 꾸려졌었어요. 그런데 장애인들 방을 구하려면 되게 어려워요. 휠체어로 접근이 가능해야 하고 값이 싸야 하고 주인이 받아줘야 하고… 그런 방을 구해주려고 부동산 사무실을 낸 거였죠.” -그러니까 맘상모 일을 하기 전에는 부동산중개사였고, 부동산중개사가 된 건 장애인단체 일을 하기 위한 거였다고요. 노들야학 운전기사는 어떻게 하시게 되었어요? “‘알바몬’(알바 구인구직사이트)에서 보고요. ‘노들야학 운전기사를 모집합니다’ 광고.” -하하하… 정말 예측불허! 원래부터 장애인운동에 관심 있었던 건 아니고요? “전혀요. 대학 졸업하고 뭘 좀 해보려 하다가 잠시 쉴 때였어요. 알바를 해야겠다 하다가 광고를 봤어요. 그땐 노들장애인야학이 뭐 하는 덴지도 몰랐어요.” -대학에서도 사회복지나 장애인 쪽 활동을 한 적 없나요? 전공이 뭐예요? “러시아문학이요.” -정말 반전의 연속이군요!(웃음) 임영희는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드럼주자로 밴드활동을 했다. 장애인운동에 대해선 아는 게 전무했는데 노들야학에서 공부하고 싸우고 끈끈하게 얽혀 지내는 장애인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올봄까지 그는, 부동산중개업을 하기도 하고 맘상모 일을 하기도 했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로서 일하는 걸 본업으로 삼아왔다. 2011년 부동산 일을 접고 1년반가량 중남미 여행을 다녀와서도 맘상모 상근활동가가 될 계획은 없었다. -2012년 말에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뭘 할 생각이었어요? “그해 선거에서 박근혜님이 대통령이 되셨잖아요. 그게 좀… 궁금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뭐가요? “왜… 됐지?” -하하하.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예전부터 되게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거든요. 그걸 하기로 했죠.” -무슨 일인데요? “택시 운전이요. 택시를 하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왔다 갔다 하고… 그 일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2013년 1월에 시작했죠.” 택시 운전은 길게 하지 못했다. 장사가 진짜 잘되던, 어느 ‘운수 좋은 날’에 졸음운전으로 큰 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새 차를 박살내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그만둬야 했다. 다시 장애인 운동으로 복귀했다가, 맘상모 일이 많아지면서 올 3월부터 상근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한 인생이네요. 인생이 꼭 자기 맘먹은 대로 가는 건 아니지만, 우연치 않게 모르는 길로 들어서고, 또 우연찮게 다른 길로 들어서고…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기도 흔치 않잖아요? “근데 전, 제가 해온 일들이 별로 이질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 같아요. 노들야학도 그렇고, 부동산도 그렇고, 전장연 활동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다 너무 좋았어요. 재미있어요.” -임영희씨가 생각하는 재미는 뭐예요? 어떨 때가 재밌어요? “사람들이랑 같이 신나서 일도 하고… 그럼 재밌죠. 잘 모르겠다. 진짜 재밌었는데.(웃음)” 뭘 더 가지려고, 더 높은 데를 향해 기어오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겐 세상에 신기한 것, 재미있는 것이 더 많이 보이는 모양이다. 인터뷰하는 동안, 가게에 들어오고 나가는 맘상모 회원들에게 연신 인사를 건네면서 그는 내내 싱글거렸다. 두번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은
상인들의 피끓는 싸움 성과물
“주인 바뀌어도 5년 계약갱신,
권리금도 재산으로 인정받고
이젠 함부로 빼앗지 못해요” “모든 을들의 종착지가 치킨집?
거기 추가돼야 할 게 있어요
치킨집에서 화살표 긋고
(1)장사가 안된다→폐업
(2)장사가 잘된다→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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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희 맘상모 사무국장이 꼬치집 ‘만복’의 사장 김선희(58·오른쪽)씨와 함께 집회 때 썼던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맘상모는 지난 5월 권리금을 임차상인의 재산으로 인정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주된 구실을 했다. 탁기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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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희를 만든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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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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