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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증권사들이 2000 돌파 다음날인 7월 26일 내놓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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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파괴력, 증권사 왜 놓쳤나
황소장세 도취해 잠재적 불안요인 애써 무시소신 펼쳤다간 회사·투자자에 ‘왕따’당해 불과 보름 남짓 전만해도 한국 증시의 앞날은 창창해 보였다. 코스피지수는 세계 주요 증시 가운데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상승률이 높았고 전대미문의 2000 고지마저 돌파했다. 게다가 기업 실적 개선 전망은 밝았고, 갈 곳을 못 찾아 헤메던 유동자금이 증시로 물밀듯이 들어왔다. 증권가에선 낙관론이 득세했다. 물론 ‘2000 고지 안착엔 시간이 필요하다’거나 ‘단기 급등이 부담스럽다’라는 신중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수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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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애널리스트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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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지수가 1900을 돌파했던 지난달 12일 국내 10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서브프라임과 엔 캐리 트레이드, 고유가 등을 잠재적 불안 요인으로 지목하면서도 상승 랠리를 중단시킬 정도의 변수로는 보지 않았다. 일부 센터장들은 1900 돌파 이후 일시 조정을 예상했지만, 그 이유도 단기 급등에 따른 부담이었지 서브프라임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일반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전문가들 역시 상승장에 도취돼 악재를 눈여겨보지 못한 셈이다. 증권사들이 서브프라임 문제를 집중 분석한 보고서들을 내놓은 때는 이미 주가가 고점 대비 150이나 내린 8월 초였다. ■ 설 자리 없는 비관론=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로 증권사에 몸이 메인 전문가들이 소신껏 비관론을 펴기에는 주변 환경이 척박하다는 점이다. 올 2분기 약세장을 전망했다가 틀려 ‘쪽집게 센터장’이란 명성에 타격을 입은 김영익 센터장은 “한국 시장에서는 비관론자가 설 자리가 없다. 2분기에 비관론을 폈다가 심한 고초를 겪었다. 비관론을 냈다가는 증권사 안에서도 입지가 좁아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특히 비관론을 전망으로 내놓았다가 틀리면 개인투자자로부터 거친 내용이 담긴 이메일이나 전화가 폭주한다. 또 일선 영업 지점으로부터 영업이 안된다는 항의가 쏟아진다”고 말했다. 박종현 센터장도 “비관론을 내면 투자자들의 반발이 심한 것이 사실”이라며 “분명할 땐 비관론을 낼 수도 있지만, 애매한 상황에선 (매수나 매도가 아닌) 중립 의견을 내는 게 보통이다”라고 밝혔다. 1987년 ‘블랙 먼데이’와 2005년 약세장을 정확히 예측해 월가에서 ‘닥터 둠’이란 별명을 얻은 마크 파버와 같이 선진국 시장에선 비관론자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국내 증권가에선 비관론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비관론은 여의도 증권가에서 금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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