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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6 20:59 수정 : 2005.06.06 20:59


전상호 광양제철소 제강부 부관리직

110m 높이의 용광로에서 시뻘건 쇳물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쇳물을 담은 280t의 쇳물통(래들)이 공장 안에 천천히 들어오면,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강부의 전상호(57) 부관리직과 직원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묻어난다. 제강부는 용광로에서 갓 나온 불순물 많은 쇳물에 산소를 넣어 불순물을 없애고 탄소 등을 넣어 다시 끓이는 곳이다.

30여년 용광로 불꽃지켜온 ‘연금술사’
모양·색깔 보고 온도·탄소함량 척척

전로에서 17분 정도 쇳물을 끓이자 뚜껑이 열리며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탄소는 0.2% 정도고, 온도는 1730도네요.” 전씨는 불꽃의 모양과 색만 보고 쇳물 온도와 탄소의 함량을 짚어냈다. “어떻게 아냐고요? 불꽃이 네모난 모양이면 탄소가 0.2%입니다. 사다리꼴 모양이면 0.08%, 삼각형 모양이면 0.04%죠.” 불꽃은 황색과 흰색으로 나뉘며 흰색을 띌수록 온도가 높다고 했다. “쇳물 온도는 대략 1650도에서 1730도 사이라고 보면 돼요.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쇳물을 굳힌 원자재(슬라브)를 만드는 공정에서 설비가 녹아버리거나 중간에 굳기 때문에 온도 맞추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순수한 쇳물은 흰색…재는 황색입니다”

순간적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색이나 모양을 가늠하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30여년 불꽃 앞을 지켜온 전씨만의 ‘노하우’가 빛나는 순간이다. 쇳물이 타면서 나온 재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일도 전씨의 몫이다. “순수한 쇳물은 흰색이고, 재는 황색입니다. 쇳물이 빠져나온 다음에 재가 나오려는 순간을 정확히 잡아내 막아야 해요.” 이 작업은 1~2초 안에 판가름나기 때문에 눈도 깜빡여선 안된다. 재가 많이 들어가면 제값을 받지 못한다.

“쇳물 떠보는 일 웬만한 인내없이 못해”


제철소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됐지만, 품질을 좌우하는 제강은 여전히 사람의 ‘손맛’이 필요한 곳이다. 제강을 ‘제철소의 꽃’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일한 지 10년이 지나야만 선배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지만,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전씨의 손에는 군데군데 화상 자국이 남아 있다. 지금은 거의 자동화돼있어 예전만큼 전로 근처에 갈 일이 적어졌다. 10여년 전만 해도 일일이 전로 앞에 가서 다 끓인 쇳물을 수저로 떠 색깔을 점검하고 화학분석실에 보냈다고 했다. “엄청난 소음과 온 몸이 데일 것 같은 뜨거움을 무릅쓰고 쇳물을 떠보는 일은 웬만한 인내가 없으면 못하는 일이에요. 가난하게 태어나서 고생한 경험이 있으니까 이 악물고 했죠.” 지금은 4조3교대 근무지만, 예전에는 3조3교대였다. 고로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쇳물을 받아낼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공휴일, 주말도 없이 매일 쉬지않고 일했다.

전문대 졸업 뒤 서울 세운상가에서 한달 만원을 받으며 근근히 살았던 청년 전상호에게 월급 2만4000원의 포항종합제철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73년 입사한 뒤, 기능직 인원의 0.05%를 ‘기성’(기술의 성인)으로 뽑아 정년을 연장해준다는 회사의 말에 솔깃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내친 김에 우수제안 14건에 실용신안·특허 9건을 받았고, 95년에는 노동부가 선정하는 명장으로 뽑혔다. 기능장과 기술사 등 국가자격증도 5개에 이르고, 후배들을 위한 사내교본도 여러권 펴냈다.

30여년 동안 쇳물과 살다 보니 자동차, 다리, 육교, 가전제품, 음료수 캔까지 모든 것이 ‘자식’같다고 한다. “모임이 있을 때면 그 자리에 있는 철강제품을 보면서 ‘이건 탄소가 몇 %, 이건 무슨무슨 합금’이라고 얘기하면서 웃어요. 이 숟가락이요? 숟가락은 주석 합금강입니다. 이 의자 다리는 일반강이고요.”

“철강제품 보면 자식같은 느낌 들어요”

“남들은 불꽃이 무섭다고 하는데, 난 불꽃을 보면 포근하고 친근해요. 저 불꽃 덕에 밥을 먹었고 애들을 키웠으니까요.” ‘신체나이 39살, 정신나이 25살’을 지켜내겠다는 전씨는 외국의 새 기술을 익히고 자신의 노하우를 정리해 단행본을 내겠다고 한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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