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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14:30 수정 : 2005.07.22 15:47

온도와 습도등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생육실에서 자라고 있는 새송이버섯. 두달 정도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나의 살던 고향은’ 전북 익산시 함열읍 와리다. ‘시’에 속해 있는 ‘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리’에서 자랐다고 다 농사일을 해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귀남이들’은 일을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의 과보호 때문이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얼핏 안다. 귀남이들의 비운을. 선택의 여지는 없다. “너는 우리 집안의 등불잉께!” 오로지 공부, 또 공부다. 큼지막한 새송이 버섯을 재배하는 농가로 농업인턴 체험을 떠나기 전날 밤 대학시절 농활 갔던 기억을 더듬어 봤다. 목표는 소박했다. “농활 만큼만 하자”

버섯종균실에서 버섯 종균의 배지(인공흙)작업을 하는 과정. 배지는 옥수수가루와 흙설탕와 무기염료를 섞어 만든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19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경기도 안성행 버스에 올랐다. 농업인턴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인턴기자가 농업인턴이 되어 하루를 보내러 가는 길이다. 우선 ‘프로그램’을 갈아끼워야 했다. 며칠 전부터 출근길에 ‘나는 기자다’를 속으로 외쳐왔다. 이젠 ‘나는 농업인턴이다, 농업인턴이다…’ 주문을 외웠다. 안성에 도착했다. 농장주인은 안성에 내려 택시를 타라고 했다. 농촌의 아침에 택시는 어울리지 않았다. 20여분 안성 시내를 헤맨 끝에 강덕리에 간다는 버스를 찾았다. “강덕리에 있는 뭐시하트 버섯농장 아세요?”라고 물었다. 거기는 농장이 아니라 공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상했다.


종균실과 배양실 등의 작업실에 들어가기위해서는 먼지와 각종 세균 유입을 막는 에어샤워기를 통과해야 한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왜요? 농촌에선 이렇게 일하면 안 되나요?”

농장을 생각하고 왔는데 공장이라니…. 만 평 정도의 땅에 큰 건물이 6동, 어딜 둘러봐도 농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공업단지에 가까웠다.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2층 작업실로 올라가 농업인턴 전선정(27)씨를 만났다.작업실인데 연구실, 실험실같은 분위기였다. 버섯농장 생활이 6개월째라고 했다. 전씨는 “오전 일이 사실상 농업인턴으로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지금은 배지(버섯이 자라기 위한 인공 흙)를 살균하던 중”이라고 말했다.

이십분 정도 살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곧 일이 주어질 것같은 분위기에 준비해 온 빨간 고무코팅 처리가 된 목장갑을 꼈다. 요란하게 신호가 울리고 찜통으로 보이는 기계에서 실험실에서 쓰는 삼각플라스크를 꺼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플라스크에는 노란 액체가 담겨져 있었다. 인공 흙을 나르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속았다 싶었다. 흙이 없었다.

의아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더니 전씨는 “농촌에서 이렇게 삼각플라스크로 인공배지를 만드는 것이 낯선 모습일 수도 있겠다”며 “농촌에서는 이렇게 일하면 안되냐”고 되물었다. 논밭에서 삽질하는 모습은 아니더라도 수건을 목에 두르고 흥건하게 땀을 흘릴 줄 알았는데 여긴 ‘무릉도원’이었다.


버섯종균실에 있는 종균배양탱크. 하루에 약 4탱크 정도가 배섯배양에 사용된다.


위생복을 입고 ‘텔레토비’가 된 버섯농사꾼

농업인턴은 기자의 편견이 깨져나가는 것을 눈치 챈 듯 했다. “걱정 마세요. 힘든 일은 널렸어요.” 전씨는 “제대로 힘든 일을 해보자”며 200여m 떨어진 다른 농장건물을 향해 앞장섰다.

그는 “이 곳이 버섯을 키우는 첫 번째 단계에요. 청결한 환경에서만 버섯이 예쁘게 자랄 수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하얀색 일체형 복장을 건넸다. 반도체 공장에서 입는 위생복과 같았다. 또 한번 머리 속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입고 일하니까 농사일 아닌 것 같죠? 왜요, 농사꾼은 이렇게 입으면 안되나요?” 또 한방 먹었다.


버섯배양실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종균. 한달정도 지나면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변한다.


빨리 이 곳 분위기에 적응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란히 샤워실에 들어섰다. 얼굴이 떨리도록 에어 샤워를 하고 기계들로 가득찬 버섯농장으로 들어섰다. 청결을 위한 최신식 시설이라고 했다. “버섯을 키우는 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위생이죠. 사실 버섯이 사람보다 깨끗해요.” 전씨는 신기해하는 기자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남자 키만한 큰 둥근 탱크들 속에서 버섯 종균이 숨쉬며 자라고 있다”고 했다. 전씨는 곧바로 탱크에서 이어져 나온 호스에 코를 갖다대고 종균의 상태를 점검했다. “냄새로 이상 유무를 쉽게 알 수 있죠. 이것도 노하우라면 노하우죠.” 버섯 종균의 날숨을 점검하는 것이다.

드디어 고대하던 땀 흘리는(?) 일을 지시받았다. 종균을 배양한 뒤 빈 탱크를 청소하는 일었다. 전씨는 매일같이 4~5개씩 혼자서 세척을 한다고 했다. 탱크를 눕히고 그 안을 물로 씻어내는 일은 벅차보였다. 좁고 깊은 탱크 안, 몸을 움직이기 힘든 상태에서 남아있는 찌꺼기들을 걷어내고 물로 씻어냈다.

“힘드시죠? 이게 농촌의 현실이에요.” 최신 기계설비가 보급돼도 여전히 손이 가는 작업이 많다고 했다. 실내 온도는 버섯이 잘자도록 15도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텔레토비’ 옷 안으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신이 났다. 그 신바람이 지나쳤던 탓일까. 혼자서 탱크를 눕히려다 아차하는 순간, 탱크 계기판이 앞니를 스쳤다. 버섯이 먹고 자라는 옥수수 가루마냥 아이보리색 앞니 조각들이 떨어져 나왔다. “안다쳤어요? 농사일은 단순 작업 같지만 굉장히 섬세하고 조심해야 하는 일이에요. 섣부르게 덤볐다가는 낭패를 보는 수가 많아요.” 일을 만만하게 본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밥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밥값’은 해야 했다.


버섯생육실에 온 새송이 버섯은 점차 모습을 드러내다 2달이 지나면 출하된다.


머슴이라고? 농업인턴은 준비된 프로 농군이다.

점심시간, 버섯요리가 별미였다. 깨진 이는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정작 농장 일꾼들은 버섯을 먹지 않았다. “맛있는데 왜 드시지 않느냐”고 묻자 “통닭집 아들이 통닭 먹는 것 봤냐“고 답했다.

인심 좋은 시골밥상을 받고나서는 버섯 종균의 ‘밥’을 만드는 작업에 투입됐다. “흑설탕 일정량에 콩가루 네 큰 술, 무기염료 종지 두 개…” 전씨는 배합을 하고 기자는 그것을 물과 함께 섞었다. 그는 가루가 섞이지 않고 알갱이가 남으면 버섯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못난이’가 나온다고 정성껏 저으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잔소리가 늘어난 것으로 미루어 이미 ‘귀남이’ 출신임을 눈치챈 듯했다. 다시 ‘텔레토비’ 안에서 김이 오르기 시작했다.


컨베이어벨트 작업장에서 새송이버섯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직원들.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미숫가루 타듯이 하면 될 것처럼 보였는데, 직접 해보니 버섯 종균의 밥이 균질하게 물에 녹지 않았다. 탱크 하나에 ‘책임자:한겨레 하어영 기자’라는 팻말이 붙었다. 농업인턴 전씨는 “농사일에서 자기가 키운 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열흘 뒤에 배지에 뿌려질텐데 버섯 상태가 좋지 못하면 꼭 연락드리겠다”며 놀렸다. 아마 10일 뒤 배지에 버섯이 뿌려지고 그리고 두 달 뒤에 ‘못난이’로 자라난 새송이 버섯이 한겨레신문사로 배달돼 온다면, ‘하어영 기자가 민폐를 끼친 일’을 안주 삼아 버섯구이잔치가 열릴지도 모른다. 버섯들아, 내가 만든 밥을 꼭꼭 씹어먹고 무럭무럭 자라다오. ‘삼순이’처럼 크고 알차고 예쁜 어른 버섯으로 자라다오. 기도했다.


출하된 버섯은 곧바로 트럭에 실려 서울 가락시장 등으로 향한다.


버섯 종균이 먹을 ‘밥’을 다 만들고 작업장 정리를 하는 동안 전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는 스스로 원해 농장에서 먹고 잔다고 했다. 버섯을 위해서다. “버섯이 예쁘게 자라는 것을 보면 뿌듯해요.” 농업이야말로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농업인턴 전씨는 “힘들고 어렵게만 봐서도 안되겠지만 만만하게 봐서도 안 된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애정”이라고 덧붙였다. 인턴기자와 농업인턴의 만남. 기자는 아직 인턴일 뿐인데 20대의 농업인턴에게선 농사꾼 냄새가 났다.

농림부는 지난 2월 부족한 농촌 일손 지원 대책으로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농업인턴을 모집했다. 농업인턴은 제주도 한라봉 농가, 안성 새송이버섯 농가 등에서 일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농가가 각각 절반씩을 내어 월급을 준다. 전씨는 100만원 가량 받는다. 농업인턴이 올해 처음 도입됐고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농업인턴이라고 하면 ‘21세기형 머슴’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직접 와서 편견이 깨지기 전까지는 기자도 대학시절 농촌활동 정도로 생각했다. 비닐하우스에서 버섯을 재배하고 둘러앉아 흙을 털고 다듬고 포장하고 그럴 줄 알았다. 아니었다. 버섯을 ‘전문적으로’ 키우는 전씨를 보니 든든했다. 농업인턴들은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구원투수’ 같았다.

하어영 인턴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ha5090@dreamwiz.com

■ [인터뷰] ‘준비된’ 농사꾼 전선정(27)씨

제1회 농업인턴인 전선정(27)씨는 ‘준비된’ 농사꾼이었다.
제1회 농업인턴인 전선정(27)씨는 ‘준비된’ 농사꾼이었다. 버섯 농가에서 자라 농업대학에 진학했고 ‘버섯 동아리’에서 미래를 준비했다. 현재는 버섯학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 ­농업인턴을 지원한 계기가 궁금하다.
=우리집에서 버섯농사를 지어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검은 비닐하우스에 쪼그리고 앉아서 키우는 곳이 바로 우리 집이죠.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것이 버섯이고요. 그래서인지 버섯이 좋더라고요.

­- 그럼 가업을 물려받으시겠네요.
=그런 셈이죠, 제 전공이 원예학이거든요. 좀더 발전된 모습으로 우리집 버섯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곳은 새송이 버섯이고 우리 집은 표고버섯이에요. 버섯이면 다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키우는 방식이 달라요.

- ­농업인턴이 끝난 뒤에 본격적으로 버섯 농사를 할 계획인가요.
=대학 다닐 때 버섯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이 곳 언니(농장주)는 동아리 선배였죠. 제 세부전공이 ‘버섯학’이고, 버섯으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어요. 학위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버섯기술들을 우리 실정에 맞게 재해석하고 버섯을 성공적으로 키워내기 위해서에요. 인턴이 끝난 뒤에는 언니가 ‘거둬주시면’ 같이 하고, 하하하, 아니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죠.

-부모님 반대는 없으셨나요.
=왜 없으셨겠어요. 기자님 ‘귀남이’셨다고요? 저도 나름대로 귀하게 컸어요.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고 농대에 가니 태도가 달라지셨죠. 어느 날인가, 제가 다른 친구들은 농고 나와서 뭐든 다 잘하는데 나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그만 다녀야겠다고 생떼를 쓰니까 엄마가 “삽질이나 배워 와라, 뒷마당 파게” 이러시는 거에요. 꾹 참고 삽질부터 배웠죠. 버섯동아리도 들어가고. 그 때 지금 언니(농장주)도 만났어요. 나는 삽질도 못하는 농대생, 언니는 동아리의 우상이자 조교언니였죠. 많이 혼나고, 많이 배우고. 저도 지금은 나름대로 전문가죠. 버섯에 관한 한.

-친구들 반응은 어떤가요.
=친구들과 만나면 일 얘기는 거의 안 해요. 그렇게 되네요. 친구들한테 농사짓는다고 자랑할 순 없죠. 그게 현실이잖아요. 다들 폼 나는 거 좋아하고, 농사일은 아무래도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것도 우습잖아요. 그래도 분명한 건 농촌에 젊은 사람이 귀한 만큼 기회도 많아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공기 마시면서 남 눈치 안보고 일할 수 있어요.

-그래도 힘든 점이 적지 않을텐데.
=농장 안에서는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친구들과 연락이 잘 안될 때가 많아요. 밤엔 피곤해서 ‘싸이질’도 안하는 편이라 사실은 좀 외롭죠. 말 나온 김에 남자친구 하나 소개시켜주세요, 꼭.

-농업인턴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해줄 말은.
=우선 농촌에 애정이 있어야 해요. 아무리 현대화됐다지만 힘들거든요. 선택을 해야하는 거죠. 내가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만 성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머슴이라는 시각이 있다고 하셨는데 충분히 가능해요.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얘기해주는 사람은 드물어요. 농가주인이 전문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대개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니까 내가 나서서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일인지 물어보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거죠. 또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게 먼저죠. 친해지고 나면 노하우도 배울 수 있거든요. 사람 만나는 것도 농사잖아요, 사람농사.

하어영 인턴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ha50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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