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1.23 14:11 수정 : 2005.11.23 14:38

공무원 결혼 정보회사 명함./필진네트워크 하얀도마뱀

김장 준비 하느라 바쁘신 어머니 옆에서, 큰 보탬이 되지 않는 두손 두발을 바쁘게 움직이며 현관문을 들락날락 하던 오후였다. 수시로 돌며 광고지를 수거해 가는, 청소 하시는 분의 손을 피해, 현관문 틈새에 용케도 자리잡은 광고 명함 하나를 발견했다.

파란 물고기 한마리가 그려진 '공무원 결혼 정보사' 명함.

다수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결혼 적령기의 처자가 사는 집이라는 걸 알고 찾아온 것 같긴 한데, 세부 자격요건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는 집으로 날아왔으니.

자세히 들여다 보니, 가입비ㆍ입회비ㆍ등록비가 없는데다 개인비밀도 존중된단다. 대부분의 결혼 정보 회사가 어떤 자격에 어떤 비용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 비용에 최대효과라는 자본주의적 측면에서 밑져야 본전인 솔깃한 광고다. 가입비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고 지금은 회원수를 확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20 대 젊은이들에게 이 명함 한장은, 그 어떤 리서치 회사의 통계자료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현실적인 지표가 아닐 수 없다. 대학 졸업생 태반이 실업자에, 재학생조차 대기 실업자임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 교육 공무원ㆍ행정 공무원 등 각종 공무원이 직업 선호도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고, 실제로 재학중인 후배들 열명 중 열명이 9급 고시에 매진하고 있다.

안정적인 경제력을 갖추고자 하는 여학생들을 필두로 남녀ㆍ졸업생ㆍ재학생을 불문하고 공무원 고시에 뛰어들어 레드오션(Red Ocean) 에서 헤엄치는 와중에, 이 결혼 정보 회사는 블루오션(Blue Ocean) 에 뛰어들었으니 그 사업적 발빠름에 놀랍기만 하다.

무너져 가는 한국 농업을 살리고자 목숨을 던진 농업인들의 소식보다, 모 대기업 소유주의 셋째 딸 사망소식이 더 크게 더 자세하게 보도되는 현실 앞에서. 공무원 고시에 합격하면 그 때 널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첫사랑과 수백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9급 고시에 합격하여, 결혼 잘하기'에 목을 매는 친구를 속물로 여기기에는 내가 초라해질 뿐이다.

부가 재분배되기는 커녕 부의 대물림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알싸한 고춧가루 냄새와 11월의 된바람에 어지러워지는 오후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