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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7 19:12 수정 : 2006.02.07 19:35

남미 통합과 연대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4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연말 대선 캠페인 시작을 알리는 대중연설을 하고 있다. 카라카스/AFP 연합

좌파 바람 타고 정치·경제 통합 운동 활발
석유 자원 등에 업고 차베스 대통령이 주도
‘지역 공동방위군’도 거론…미국 입김이 변수

‘남미 독립의 영웅’ 볼리바르가 200여년 전 꿈꿨던 라틴아메리카연방이 현실화할 것인가?

남미에서 좌파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정치, 경제 분야에서의 연대와 통합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공동시장, 자유무역지대, 국가공동체에 이어 지역방위공동체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도 맞물려 있다.

가속화하는 통합 논의=남미자유무역지대(SAFTA), 남미국가연합(SCN) 등 지역통합의 틀을 모색해온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정상들은 지난달 20일 정상회담을 갖고 새 통합의 틀을 만들어내는 데 합의했다. 합의의 핵심은 협력의 범위를 군사·안보부문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들은 회담에서 지역 안보기구의 창설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과 비슷한 공동방위군도 만들기로 했다. 세 정상은 또 1만㎞에 달하는 3개국 연결 천연가스관 건설, 1천억달러 기금을 목표로 한 ‘중남미은행’ 설립도 논의했다. 이들은 다음달 10일 아르헨티나에서 세번째 정상회의를 열어 합의한 사항을 점검할 예정이다.

중남미 통합은 1960년 중남미자유무역연합(LAFTA)과 중미공동시장(MCCA) 출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시장의 미성숙, 자본의 부족 등으로 실패했고, 1991년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에 와서야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이번 합의는 그동안의 통합논의를 질적으로 한 단계 더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좌파 바람과 석유자원=대부분 스페인어를 쓰는 등 문화적 공통점이 많은 남미 통합의 추동력은 애초 브라질에서 나왔다. 1990년대 초 결성된 남미공동시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통합과 연대 움직임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주도한다. 그는 자신의 개혁정책을 ‘볼리바르 혁명’이라 이름 붙일 정도로 남미의 독자노선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그 힘의 원천은 풍부한 석유 자원이다. 그는 지난해 페트로카리브 석유동맹을 결성해 중미의 가난한 나라에 석유를 싼값에 공급하는 등 중남미 나라들을 결속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의 부채를 조기에 갚고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추구할 수 있었던 데는 차베스의 아르헨티나 국채 매입과 유리한 조건의 원유제공이 톡톡히 작용했다.


남미 제2의 천연가스 매장국인 볼리비아에서의 원주민 출신 좌파 대통령 탄생, 4월에 대선을 치르는 페루에서의 좌파 바람도 남미 국가들 사이에서 이념적인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청신호이다.

그러나 걸림돌도 많다. 무엇보다 나라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현실에서 미국의 입김이 큰 변수이다. 파라과이는 지난해 미국 군대 주둔을 허용했고, 나프타 가맹국인 멕시코도 남미보다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지원을 받는 나라들도 미국이 손을 내밀면 언제라도 대열에서 이탈할 소지가 크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

볼리바르 누구인가?

남미 해방영웅…차베스 대통령의 정치적 우상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남미 독립의 아버지로 불린다.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를 내걸고 남미 좌파 바람을 주도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노선을 볼리바르 정신에 비유한다.

그는 식민지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스페인인이었지만 남미의 스페인 독립운동을 이끌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5개국을 해방시켰다.

볼리바르가 태어났을 당시 남미에 대한 스페인의 착취는 극에 달하고 있었고, 착취에 시달리던 남미 사람들에게 북쪽에서 들려온 미국의 독립 쟁취는 희망의 싹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7살때 스페인 유학을 떠난 볼리바르는 유럽의 계몽주의와 시민혁명을 보고 배우면서 독립운동가로서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남미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통합 남미국가의 지도자를 꿈꿨다. 첫 성과는 콜롬비아 해방이었다. 그는 1819년 안데스 산맥을 넘어 누에바 그라나다를 해방시킨 뒤, 12월 콜롬비아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어 1822년 키토(현 에콰도르)를 해방시킨 뒤,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를 하나의 나라로 통합시켰다. 파죽지세로 이어진 그의 독립쟁취 행진은 1825년 페루 북부지역이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서 볼리비아로 독립함으로써 끝났다.

그는 남미가 분열될 경우 미국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1825년 남미 통일을 위한 ‘아메리카 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각 국가간의 대립, 미국과 영국의 분열책략으로 남미는 20여개 국가로 쪼개지고 말았다.

김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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