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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4 20:55 수정 : 2006.03.04 21:00

인도와 핵협력으로 ‘강대국 논리’ 재확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나흘간에 걸친 인도와 파키스탄 방문을 마치고 4일 귀국길에 올랐다.

미국 정상으로는 2000년 3월 빌 클린턴에 이어 6년만에 이뤄진 부시 대통령의 이번 서남아 순방에서는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다극화 시대'로 나아가는 21세기의 국제질서 속에서도 여전히 강대국에 의한 `힘의 논리'가 강력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방문 기간 핵무기비확산조약(NPT) 미가입국인 인도에 예외적으로 핵기술과 연료를 제공키로 하는 핵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지난해 정상회담에서 `핵시설 분리'라는 조건부로 합의됐던 것이나 인도가 이번에 조건을 충족시킴에 따라 최종 합의에 이른 것이다.

이번 핵협력 합의는 냉전 시절에 반대편에 서 있었던 두 나라가 본격적인 `동맹과 `전략적 협력관계'의 틀을 구축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인도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된 이번 합의는 또한 미국이 기존의 핵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라크 상황 악화와 아랍업체의 미국 주요 항만운영권 인수 등으로 지지율이 바닥권을 헤매는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이 의회는 물론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핵협정을 밀어붙인 것은 엄청난 기세로 미국을 위협해 들어오는 중국의 `대항마'로 인도 만한 카드가 없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입장에서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거대시장 인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도 역시 경제성장에 불을 지피려면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3%에 불과한 원자력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막판까지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던 핵협력이 정상회담 당일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진 것은 양국 모두 이 시기를 놓치면 추후의 협상이 어려워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협정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합의안의 내용을 보면 더 다급한 쪽은 역시 미국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두 나라는 지난해의 잠정 합의안 도출 이후 핵사찰 범위를 놓고 7개월간 줄다리기 협상을 벌여 왔으나 인도는 끝내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고속 증식로 2기를 민간 핵시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공.사석에서 수시로 인도를 `강대국'이라 치켜세워 온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아니라도 인도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의 협상에서 사실상 `판정승'을 거두면서 강대국 진영에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둔 셈이다.

이번 합의로 부시는 `형평성' 시비와 함께 정치적 위기에 빠질 수 있고, 만모한 싱 총리 역시 좌파와의 `불안한 동거'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두 나라는 앞으로 핵과 우주, 첨단기술 등 모든 영역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국제사회에서 강한 유대를 과시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두 나라는 이번 정상회담 기간에 지난해 현재 268억달러였던 양자교역 규모를 향후 3년 내에 500억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인도 방문에 이어 4일에는 파키스탄으로 건너가 대 테러전의 공조를 재확인했다.

또 알-카에다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단속을 요구하고 지난해 10월 발생한 지진 구호사업에 미국이 지원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슬람 권에서의 미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도 주력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파키스탄이 대 테러전의 핵심 동맹임에도 불구, 인도와 같은 방식의 핵협정을 체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이런 입장은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인 칸 박사가 핵 기술을 이란과 북한에 팔아 넘기는 등 파키스탄이 핵확산의 `전과'가 있다는 점에서 진작부터 확고했다.

미국은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충성도'를 인정하면서도 파키스탄에 기지를 두고 있는 국제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무샤라프를 몰아내고 핵시설을 장악하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알-카에다 2인자를 겨냥해 민간인 18명의 사망으로 이어진 대대적 공습을 감행하면서 파키스탄 정부에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미국이 파키스탄을 100%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다만 성장 가도에서 인도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이 이란의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핵협력에 대한 파키스탄의 `상대적 빈곤감'을 달랬다.

수십년간 적성국으로 분류됐던 인도에서 사흘을 보내면서 비나토 동맹인 파키스탄에는 하루밖에 할애하지 않았던 부시 대통령의 이번 서남아 순방은 결국 국익을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냉엄한 외교의 격전장에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다는 지적이다.

정규득 특파원 wolf85@yna.co.kr (뉴델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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