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05 19:06
수정 : 2006.05.05 19:06
미, 러시아 배제한 새 가스길 추진 공세
러·카스피해 연안국 숨가쁜 외교전 예고
지구상 최대의 미개발 에너지 보고로 알려진 카스피해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간 ‘거대한 게임’의 2막이 올랐다.
5일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중앙아시아의 자원부국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을 만났다. 이날 회담에선 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 천연가스를 아제르바이잔과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수출하도록 ‘압박’하는 미국의 계획이 주요 의제가 됐다고 <파이낸셜타임스>와 <모스크바타임스>가 보도했다.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좌우하는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에 타격을 주기 위해 러시아를 배제한 새로운 유럽행 가스관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현재 카자흐와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하는 통로는 러시아가 독점하고 있다. 가즈프롬은 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25%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은 카자흐가 가스 수출의 방향을 바꾸길 원한다. 카자흐의 카샤간 가스전에서 카스피해를 관통해 아제르바이잔의 샤 데니즈 가스전으로 연결한 다음, 그루지야와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에 합류시키려는 것이다. 싱크탱크 제임스타운파운데이션의 글렌 하워드 이사장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카자흐와 유럽을 잇는 석유·가스관이 건설되면 중앙아시아에 미국의 깃발을 꽂는 셈”이라고 말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부자세습 독재 등으로 비난받는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환대한 것도 그 일환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주요 산유국이자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배제하고 진행하는 가스·석유관의 출발점이다. 미·영 등은 지난해 5월 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터키를 잇는 BTC(바쿠-트빌리시-제이한) 송유관을 건설했고 올해 안에 나란히 가스관도 완공할 예정이다.
푸틴 대통령의 자원 국유화와 에너지 가격 급상승으로 몸집을 불린 가즈프롬은 중앙아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확보해 유럽에 비싼 값에 팔아왔고, 올해 1월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을 일시 중단했다. 영국의 가스회사 인수 계획을 유럽국가들이 반대하자 가스 공급을 제한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체니 부통령은 4일 리투아니아에서 “러시아가 유럽을 향해 가스 공급을 제한하겠다고 나선 것은 협박”이라고 맹비난했다. 매트 브리자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가즈프롬은 중앙아시아 천연가스를 1000㎥당 55달러에 산 뒤 터키에는 265달러에 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미국의 새 계획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모스크바타임스>는 아제르바이잔도 유럽 시장을 카자흐와 나눠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보도했다. 또 카자흐도 시장 다변화를 위해 유럽행 가스관 계획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미국과 러시아,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석가들은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강경한 에너지 정책이 전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을 절반을 차지하는 러시아와 이란의 ‘에너지 동맹’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지적한다. 카스피해를 둘러싼 연안국들의 각축전으로 국경선이 뚜렷하지 않은 것도 미국이 추진하는 카스피해 관통 가스관 건설에 장애물이다.
최근에는 중국도 가세해, 3파전 양상까지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카자흐스탄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석유기업 페트로카자흐스탄을 사들였고, 카자흐-중국 송유관도 완공했다. 지난달엔 2009년까지 투르크메니스탄-중국 가스관을 건설해 매년 30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받기로 계약도 맺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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