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08 18:07
수정 : 2006.05.08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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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에 걸린 유명인들 왼쪽부터 배우 록 허드슨,철학자 미셸 푸코, 농구선수 매직 존슨,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 그룹 퀸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 존슨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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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희귀한 게이질병” 첫 보고…적의·오해·외면으로 재앙 키워
록 허드슨 사망에 ‘경각심’…미국 감염자 51%가 흑인 “사회적 질병”
“동성애자들이 자연과의 전쟁을 시작했고, 자연은 가공할 천벌을 내리기 시작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보수논객 팻 뷰캐넌은 지난 1983년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이렇게 묘사했다. 1981년 미국 질병관리센터 의사들이 “게이( 남성 동성애자)들이 감염되는 특이한 급성폐렴과 피부암 사례”로 보고하면서 세상에 존재를 알린 ‘현대의 흑사병’ 에이즈는 지금까지 25년간 2500여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학자들은 첫 발견으로부터 수 년 전에 에이즈가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에이즈 발견 25년을 맞아 ‘에이즈가 미국을 어떻게 바꿨나’ 등의 제목으로 특집기사들을 실었다. <뉴스위크>는 미국 사회가 마치 중세인들이 흑사병을 대하듯 무관심과 적의, 오해로 에이즈를 다루다 재앙을 키운 과정을 다뤘다.
에이즈에 대한 무관심은 미국에서만 에이즈로 1만2천여명이 이 질병으로 사라질 때까지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한 번도 이를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의 입에서 ‘에이즈’라는 말은 1987년에야 나왔다. ‘비정상인들’인 남성 동성애자들끼리의 성관계가 유일한 발병원인인 ‘게이 암’으로 에이즈를 이해한 ‘정상인들’은 이를 조소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첫 발견 이듬해 학자들이 붙인 ‘게이 관련 면역결핍증’이라는 이름이 이런 인식의 ‘과학적’ 근거가 됐다.
언론도 무관심했다. <뉴스위크>는 1983년 4월에야 에이즈를 처음 다뤘다. 남성 동성애자들만의 질병인 줄 알았던 에이즈가 전세계인들의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이성애자와 여성 가릴 것 없이 희생자들을 만들면서부터다. 직장, 병원, 학교, 식당에서 에이즈 감염자들은 철저히 격리됐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에이즈를 알게된 것은 1985년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숨지면서부터다. 1991년 프로농구 선수 매직 존슨의 에이즈 감염은 건장한 이도 에이즈의 마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감염자 근처에만 가도 병을 옮는 줄 알았던 당시 상황에서, 친구 허드슨의 손을 잡은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많은 친구들을 잃게” 됐다. 에이즈를 누르기 위한 정부의 본격적인 대책 마련과 예산 배정은 1990년대에야 이뤄졌다.
에이즈는 꾸준한 백신 개발과 예방법 전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4030만명의 감염자를 지니고 있고, 한 해 동안 310만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미국에서 13%를 차지하는 흑인인구가 신규 감염자의 51%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에이즈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본영 기자, 외신종합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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