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압박 회피 술책’ 일축
미국 정부는 8일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받았으나 이란 핵문제에 대 한 국제적 우려를 진지하게 다루는 내용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고 밝혔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보낸 18쪽 분량의 서한은 역사와 철학, 종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핵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결의 돌파구가 될만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일축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 편지는 핵문제를 다루는데 돌파구를 찾을만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라며 이 서한은 "우리가 구체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문제를 언급하지 않 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콧 매클렐런 대변인도 이날 기자들에게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서한을 받았 음을 확인했으나 `국제사회의 우려는 전혀 다루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매클렐런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편지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전했으나 이를 직접 봤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흐메디네자드 대통령은 서한에서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실패했으며 미국 정부가 온 세계에 증오심을 부추기고 있다고 개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핵문제에 대해서는 "중동지역에서 이뤄진 기술, 과학적 성취가 왜 시오니스트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되고 묘사돼야 하는가"라고 완곡하게 언급하는데 그쳤다. 그는 또 전세계 사람들은 그들의 권리를 옹호해주지 못하는 국제기구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전능한 신과 예언자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만이 인간 존엄성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종교적 주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영어로 쓰인 이 서한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으려는 것으로 이란 국민들의 의견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측이 발송 사실을 미리 공표한 이 편지는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을 통 해 외교관계가 없는 미국측에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실의 프레드 존스 대변인은 서한과는 관계없이 "우 리 입장과 국제사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란은 모든 농축 및 재처리 활동을 포기해 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 대사도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편지에 대해 "이란인들 은 늘 누군가 그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직전에 대화에 관심을 보이다가 압박이 좀 완 화되면 핵무기 추구로 되돌아간다"며 이는 놀랄 게 없는 술책이라고 일축했다. 존 니그로폰테 미 국가정보국장 역시 서한을 보지는 못했지만 유엔이 이란 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치려는 시점에 편지가 발송됐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는 "어떤 식 으로든 유엔 논의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계 전문가들도 이란의 편지 발송을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 표결을 저해하려는 전술로 보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란 내부 권력 투쟁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란 분석 도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한 전문가는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불과 2주 전 미국과 대화할 필요성이 없다고 공언하다 갑자기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이같은 조짐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앞서 골람-후세인 엘람 이란 정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수행 중인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 다고 밝혔다. 이란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낸 것은 27년 만의 일로 이 서한은 8 일 스위스 대사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이란 핵문제 관련 협상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합( EU) 3개국을 통해서 할 일이며 미국이 직접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미국 정부는 이란의 이라크 무장세력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잘메이 칼릴자드 이 라크 주재 미대사가 이란측과 협상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나 그 이외의 문제에 대해 서는 직접 협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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